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리플리 Jul 20. 2018

What a wonderful world

2018, 아름다운 세상에 대하여


제목만으로 이미 기분이 좋아지는 이 음악은 참으로 달콤하다. 전주가 시작되고 모서리라곤 느낄 수 없는 루이 암스트롱의 음성이 흘러내리면 모든 따뜻한 온기가 모여드는 대기의 아래로 나도 함께 녹아내린다. 녹진하게 풀린 종이풀처럼 부드럽고 모나지 않은 모습을 누구든 쓰다듬어 줬으면 좋겠다.


 

그러다가도 이내 정신이 들곤 한다. 연둣빛 잎사귀와 붉은 장미, 하늘을 따라 오가는 낮과 밤. 사랑해 마지않는 모든 것이 숨 쉬는 이 세상에서 사는 삶이 왜 이리도 원더풀하지 못한가. 어김없이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이 노래 한 소절처럼 이 얼마나 멋진 세상인가를 떠올리면 가슴 언저리와 눈가가 뜨거워지던 때가 있었다. 한두 번 넘어져도 다시 또다시, 패기 넘치던 때도. 이젠 살아남는 방법을 터득해버린 걸까. 넘어져도 예전만큼 놀라지도, 울지도 않는다. 아이러니하게도 세상이 노래 가사처럼 마냥 아름답지만은 않다는 것을 뼈저리게 겪을수록 삶은 더 살기 수월해졌다.


 

그러나 여전히 세상의 어딘가, 이 원더풀하지 못한 삶의 언저리에도 아름다운 찰나가 존재한다는 사실에 기대한다. 잠시 떴다 사라지는 무지개처럼, 가슴에 머물다 떠나는 사랑한다는 말처럼 찰나에 빛나는 그것은 야속하게도 이 세상을 자꾸만 아름답다고, 아 살만한 곳이라고 최면을 걸어 오늘을 기꺼이 살아가도록 하기에. 수월한 하루의 끝에 차라리 어리숙했던 그날이 그리워지기도 한다.


 

넘어지면 아픈 건 여전하다. 눈물도 참으면 어디선가는 꼭 터진다. 아름다운 세상이라는 말 따위 이제 더 이상 믿지 않는다고 치부하지만,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왠지 세상은 속살을 다 보여주지 않는 것 같다. 그래서 이 음악이 재생되는 짧은 시간처럼 나를 이끄는 달콤한, 극히 일부인 그것에 기대 세상은 아름다운 것이라고 덜컥 다시 믿게 될지도.



루이 암스트롱은 믿었을까. 마지막에 뭐가 있을지는 아무도 알 수 없지만. 그러고 보면 이 곡 역시 영원히 변하지 않을 하나. What a wonderful world, 세상의 극히 일부인 그 아름다움, 어쩌면 그것만으로도 살만한 세상의 충분한 이유가 되는 건 아닐까, 문득,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환절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