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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플리 Sep 09. 2018

뉴욕, 런던 아닌 여수에도 '소호'가 있다.

여수를 여행하는 이를 위한 안내서 3


여수 여행 후기도 막바지를 향해가고 있다.
다녀온 지 3주 남짓인데, 벌써 아득히 먼 날의 느낌...
그만큼 좋았기 때문이고, 또 그만큼 일상으로 돌아왔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 여행은 평소와 달리 많이 보고 많이 다니려는 욕심을 버렸더니,
오히려 더 꽉 찬 시간을 보낸 듯하다.

소소하지만 좋은 생각, 좋은 장소, 좋은 느낌을
문득문득 만났으며, 이 글에는 그중 하나를 떠올려 적어보려 한다.






뉴욕, 런던 아닌 여수의 '소호'










'소호'라는 이름




South of Houston의 약자로 SOHO라 불리는 뉴욕의 어느 거리. 같은 이름을 런던, 홍콩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가난한 예술가들이 모여 살면서 창작의 터전이 된 뉴욕과 세계 각국의 요리, 다양한 상점들로 가득 찬 런던의 그것은 각각 사뭇 다른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름은 같아도 다른 이유와 다른 모습으로 존재하는 곳. 모두 많은 이들이 사랑하는 장소라는 점에서는 같다.

여기 다시 또 다른 '소호'가 있다.
여수시 소호동.
일제강점기 소제리와 항호리를 합쳐 소호리라 부르게 된 데서 유래했다.
비록 좋은 동기로 태어난 지명은 아니지만, 
소호라는 이름은 어딘가 모르게 아늑하다. 
짧고 간단한 두 음절 속에 숨어들 곳이 있을 것 같다.














여수의 시작과 끝은 바다일까.





소호동은 여수 관광명소가 모인 중심에서 조금 떨어져 있다. 버스로는 40분 정도 걸렸다.
누군가에게 소호동동다리에 대해 물었을 때, 그걸 보러 거기까지 가기엔... 싶은 기색이었지만,
남는 게 시간인 여행이라 버스에 올랐다.

소호동으로 가는 버스는 여수 사람들이 시가지에서 집으로 돌아갈 때 타는 버스이다.
아파트, 주택이 들어찬 동네 동네를 지나,
시외버스터미널과 대형마트, 여느 사람 사는 곳과 다를 바 없는 시시콜콜한 가게들과 공원, 시청을 지나
오르락내리락이 끝나면 다시 바다다. 거기 소호동이 있다.

















소호동에 있는 카페 '소호'





야경이 예쁘다는 소호동동다리에 불이 켜지기까지 아직 족히 2시간은 남았고,
땀 식히며 가져온 책도 읽을 겸 카페를 찾았다. 바다를 마주한 오르막길을 따라가니 카페 '소호'가 나온다.

마침 손님이 나뿐이었던 카페 '소호'에는 어머니와 딸처럼 보이는 두 여자분이 운영 중이었다.
테이블마다 꽂힌 꽃병부터 작은 구석까지 신경 쓴 흔적이 역력했고, 오션뷰는 아니라도 답답하지 않은 공간.

커피를 여러 잔 마신 터라, 당근 케이크 한 조각을 주문했다.
뜨거울 대로 뜨거워진 늦여름 햇살에 지친 것도 잊고, 금세 리프레시 모드.
달지 않고 촉촉한 케이크가 정말 맛있어서 놀랐다. 그래서 레모네이드를 또 시킬 수밖에 없었다는 이야기.
손수 만드는 케이크와 음료, 인테리어 하나하나가 정성과 애정으로 가득하다고 느꼈다.

 

















물드는 소호동





카페 소호에서 재충전 완료. 그리고 노을 진 바닷가로 나가본다.
소호동동다리 끝에는 요트경기장이 있어 탁 트인 전망에서 바다 노을을 감상할 수 있다.
일몰은 안 보이나, 노랗게 붉게 푸르게 물드는 하늘만 보아도 예쁘다.

해가 조금씩 넘어가면 다리 산책로에 조명이 켜지고 야경이 시작된다.
다리 위를 걸으면 정작 다리의 야경을 볼 수는 없어도, 바다와 달, 멀리 여수 시내의 불빛을 감상하는 것도 재미있다.
그래도 산책로 막바지에는 지나온 길을 꼭 돌아보길 바란다.











소호동은 관광지보다는 여수 사람들의 바다라 할 수 있겠다.
원래 바닷가에 살면 딱히 바다 보러 나가지 않는다고 하는데,
이들에게는 너무나 삶 자체인 바다, 마음속 한 조각의 풍경이 왜 없겠는가.
그곳이 아마 소호동이 아닐까.
그런 곳에도 나 같은 여행객들이 속속 들어 차고 있으니 왠지 미안한 마음도 든다.

뉴욕, 런던도 아닌 여수의 소호에서,
조용히, 그리고 없는 듯 풍경에 섞여 이방인이 아니고 싶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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