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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플리 Sep 29. 2018

헤어지려고 사랑하는 사람은 없다.

2018. 순간의 사랑에 대하여




너와 내가 왜 헤어졌는지 의문을 가지는 것은 더이상 무의미하다.

벗어던진 티셔츠를 멍청히 바라보는 대신 다른 색깔의 마음에 드는 옷을 찾는 편이 현명하다고 내 안의 목소리는 명령하고 있다.

그러나 이제 나는 꼭 옷을 입어야 하는 게 맞는지 원론적이고 부질없는 의문이 들곤 하는 것이다.

우리가 언제부터 옷이라는 것을 입지 않으면 안 되는 상태로 살아왔는지 궁금해졌다.

옷을 벗고 있는 것이 부자연스럽다는 게 얼마나 부자연스러운 것인지 과연 나만 그렇게 느끼는 건지.

순간의 사랑, 사랑의 순간이 거듭된다.

너는 떠났고, 나는 언제나처럼 다시 혼자다.

나의 너는 여러 번 바뀌었다.

너의 너도 또 다른 너의 너도 그러할 것이다.

사랑은 영원한가.

영원하지 않은 것은 사랑인가.

영원하지 않은 것은 사랑이 아닌가.

혼란 속에서도 여전히 사랑은 영원하다는 게 나의 지론이다.

다만, 그 사랑이 하나라고는 이제 단정할 수 없구나.

누가 알 것인가.

단 한 사람을 사랑한 한 평생의 사랑이야말로 진정하다고.


영원이라는 것은 사랑의 지속성 아닌, 사랑의 고유함이었을까.

누구나 고유한 사랑의 씨앗을 가지고 태어나는구나.

그것이 사랑이구나.

하나의 열매가 꽃피고 지고 열매 맺고 영글고 떨어지고 썩어 사라지고

다른 열매가 다른 곳에서 꽃피고 지고 또 사라지고.

그러나 나의 사랑이란 것은 여전히 이 자리에 있는 것이구나.


나의 슬픔은 이 자리에 붙박여 무수히 꽃피고 사라지고 다시 열매 맺고 웃고 떠들고 울고 아파하며 지속되는 세월의 굴레와 섭리의 흐름을 지켜봐야 하는 까닭이로구나.

시지프스의 삶은 거기서 끝이 나지 않았구나.

우리는 그것을 모른 채로 그저 선택이란 것에 고심하며 그것이 뭔가 대단히 다른 삶을 가져다줄 것이라고 여기고 있었구나.

그러나 종내에는 그 선택에 대해 해도 될 후회와 하면 안 될 후회를 알아채며 그렇게 바보 같은 과정을 거듭한다.


순간의 사랑 사랑의 순간이 휘몰아친다.

무언가에 매달려 사랑하는 순간, 그때가 아름다움을 부정할 수 없다.

많은 것이 빛나고, 빛나지 않는 것도 빛나고

별은 말할 것도 없이 아름다워 모두 내 것 같고

굳이 내 것이 아니라 해도 상관이 없는

그것만 있다면 아무렴 괜찮은 그때가

사랑이 아름다움은 이렇게 사소한 이유만으로도 쉽게 설명되는 것이다.


아무것도 아닌 이유로 그 사랑을 깨운다 한들

평생을 지킬 각오로 출발한들

우리가 기대할 것이라곤 겨우 손바닥에 쥘 수 있을 정도의 알량한 현실과 사랑이란 두 글자에 담긴 너의 의리와 내 믿음의 영속성일 뿐이다.

망하려고 시작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헤어지려고 사랑하는 사람도 없다.

아무도 자신에게 뒷면이 없는 동전이 주어질 줄 모르는 것과 같이.

애석하게도 그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선택권 밖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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