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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플리 Sep 30. 2018

제3의 계절

2018, 지나간 것에 대하여





단정한 얼굴을 보니 더 까마득했다. 좋은 날씨에 계란 한 판을 들고 가다 무참히 엎어버린 것 같았지. 하늘은 지독히도 새파래서 약이 오를 지경이고. 하지만, 다행히 나는 더 이상 풋내기가 아니었다. 더위가 가시지 않은 시점에도 눈 깜짝할 새면 푹푹 눈 내릴 날, 가지마다 꽃송이 달릴 날이 올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무심히 돌고 도는 거대한 행성의 품 안에서도 삶이란 작은 나침반 하나에 고심할 수밖에 없는 것. 오직 내게만 더디 가는 이 계절을 어쩌지 못하고 나는 내내 울었다. 알아줄 이 없는 잔인한 계절을 보내며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그사이에도 달은 차고 기울기를 부지런히 거듭했다.


여전히 가랑가랑 소리를 내며 계절은 기운을 펼친다. 아마 하루가 다르게 서늘해지는 공기의 흐름과는 결을 달리할 모양이다. 자리를 비켜설 때가 언제일지 알 수 없으니 두고 볼 뿐이다. 이따금 싱겁게 자문해보지만, 역시 나는 괜찮지 않다. 온전한 때를 부단히 기다려야 한다.


손을 꼭 쥐어봐도 이내 흩어지는 날들. 오로지 우리의 계절이라 할 수 있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계절은 반복되지만, 돌아오지 않는다. 이 계절이 다시 오지 않을 것을 알아서 긴 허공을 꼬박 지샌다.

다음 계절은 이렇게 오지 않을 것이다. 나는 괜찮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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