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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nby Nov 25. 2018

괜찮지 않은 것들

2018, 익숙해지는 것에 대하여




나날이 익숙해지는 것들이 있다. 웬만해선 전처럼 펄쩍 뛰며 전전긍긍하거나 달뜬 마음으로 잠을 설치지 않는다. 별다르지 않은 오늘을 지키기 위해 오르막이든 내리막이든 걷고 걷는다. 하루살이일수록 내일을 더 걱정해야 하는 아이러니한 생리도 익숙해진 일 중 하나다. 세상이 변한 게 아니라 거기 있는 내가 나이를 먹었다. 굳이 왜냐고 묻는 대신 평행선을 따라간다. 그렇게 오늘과 내일은 곧 어제가 되지만, 아직도 부단히 앞서가려는 마음은 붙들어 둔다. 마음의 속도 때문이다. 마음은 언제나 재빨라서 생각과 행동보다 섣불리 나서고 쉽게 사그라진다. 그것을 깨닫고서 나이 먹었음을 느낀다. 호기롭게 마음을 앞세우고 걸었던 날들을 뒤로한 채 평정심의 씨름을 벌인 지 꽤 되었다.


반면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는 것들도 있다. 이들은 익숙함의 방 근처엔 온 적이 없으며 멀리서 무리를 이룬다. 세상은 마찬가지로 변할 생각이 없으니 나는 그 냉랭한 구석을 알아 두고 가끔 본다. 언제 닥칠지 모르는 사다리 타기의 악운. 어차피 겪어야 할 굴곡이라면 조금이라도 낮게 떨어지기를, 머리보단 타격이 적은 단단한 부분으로 부딪히기를 바라면서 나름대로의 낙법을 마련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떨어지는 일은 한결같은 두려움이다. 평생 꿔도 잠을 깨우는 낙하의 꿈처럼. 그럴 때면 공들여 잡아둔 마음은 일찌감치 가출해버리고 고삐를 푼 망아지처럼 굴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매번 알면서도 다치고 어쩔 도리 없이 후퇴한다. 위험한 누군가 내 방의 불을 끄는 순간 온통 불안과 어둠에 사로 잡혀 스스로 다치고 할퀴어진다.


방법은 수일에서 수개월 그저 쪼그려 있는 것뿐이다. 낙법에 희망을 걸고 다시 일어나 불을 켤 수 있는 날이 오기를 지겹게 기다린다. 다행히 이 날들이 익숙함의 방 안에 있다는 것을 위안 삼으며. 언제부터인가 비극의 시간은 알 수 없는 형태로 익숙함의 방에 들어섰다. 나이 듦의 결과일까, 익숙해지지 않음조차 익숙하게 만드는 낙법일까. 기쁨에 무던해진 것을 인정하면서 느낀 쓸쓸함의 대가로 어느 구석은 실패에 의연해진다. 


그러나 아직 많은 것이 남아 있다. 가령, 느끼는 대로 느끼고, 믿기는 대로 믿을 수 있는 세상이 조금씩 줄어드는 느낌. 갈 수 있는 곳과 할 수 있는 일은 많아지는데 정작 하고 싶은 것들은 먼 느낌. 뒤통수를 당기며 또렷해지는 현실 뒤로 바라보는 곳은 아득해지는 느낌. 꿈이었으면 싶지만 꿈이 아닌 것들. 누군가는 어른이 되는 일이라고 말하는 삶. 막 내리지 않길 바라는 연극. 모두가 웃고 있지만, 전혀 괜찮지 않은 것들. 이 모든 것이 참 익숙해지지 않는다. 꿈은 다시 떨어뜨리기 위해서라도 또, 위로 올려놓을 테니 오늘 영영 이대로 일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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