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st of '33 journal
헬싱키에서 하룻밤.
장신의 나라에 도착한 것을 환영한다.
열차에서 내리자마자 길쭉길쭉한 인파 속에 섞였다. 흡사 숲 속에 있는 것처럼, 낯설다.
이 도시는 모든 것이 높고 큼지막하다.
비행기에서는 짐칸이 더 높이 붙어 있어서 까치발을 들어야 했고, 헬싱키 중앙역에서 나오니 광장을 둘러싼 건물들의 스케일이 압도적이다. 간판도, 창문도 크고 사람들도 크고.
그래서인지 혹은 차가운 공기 때문인지 머릿속에 답답함이 뻥 뚫린다. 4월이 코앞이지만 북유럽의 기온은 영하를 오갔고, 바닷바람도 만만치 않다. 현지 사람들은 눈에 띄게 얇은 옷차림에도 마치 봄을 즐기듯 하는 반면에, 나는 가져간 옷을 모두 껴입었는데도 덜덜 떨어야 했다. 어쩔 수없지, 열 내려면 열심히 뛰어다니는 수밖에.
그러다 암석교회(Tempeliaukio church)를 찾아 손도 녹이고 다리를 쉬였다. 거대한 바위로 건축한 이 교회는 규모는 작지만, 독특한 형태, 분위기로 대표적인 헬싱키의 명소인 동시에 현지 사람들이 예배와 결혼식을 올리는 곳이기도 하다. 세월을 그대로 입은 파이프오르간이 아름다웠다.
마리메꼬, 이딸라, 아라비아... 세계적인 디자인 브랜드가 이 도시와 꼭 닮아 있다. 발길 닿는 대로 거리와 거리를 가로질러 걸으며 풍경에 조금씩 익숙해지니 더 많은 것이 눈에 들어온다. 왜 디자인의 도시라고 하는지도 짐작이 간다. 화려한 장식 없이 무심한 듯 하지만, 작은 곳까지 신경 쓴 흔적이 느껴진다. 춥고 흐린 날씨와 대비되는 상큼한 컬러와 큼직한 패턴. 섬세한 감정선과 디테일이 살아 있는 일러스트, 포스터까지. 건물에도 핑크, 블루, 레드 등 컬러를 넣은 벽, 조명, 네온사인을 조화롭게 썼다. 이게 그 유명한 '북유럽 감성'이려나.
세계에서 가장 인구밀도가 낮다는 핀란드의 수도.
헬싱키의 첫인상은 웅장한 스케일과 추위였다.
하지만, 추위 속 모닥불을 피운 것처럼 곳곳에 자리 잡은 감각과 일상이 결코 여기가 건조한 도시가 아님을 말하고 있었다. 그래서 따뜻했다.
점차 낯섦과 마음의 풍요를 동시에 느끼며 여행의 시작을 실감한다.
그러는 사이 점차 해가 떨어진다. 분명히 감성이 따뜻한 도시임엔 틀림없는데 그래도 추위는 말 그대로 추위..! 해 질 녘은 역시 어디나 똑같다.
나는 어디라도 들어가야 했다.
-2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