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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플리 Apr 08. 2019

나는 지금 헬싱키에 있다 2

2nd of '33 journal



추위에 떨던 내가 별안간 헬싱키 앞바다에 뛰어든 이유는.





한겨울보다 더 춥게 느껴지는 헬싱키의 3월. 거리를 쏘다니다 안 되겠다 싶어 들어간 곳이 카페 에스플라나드였다. 연어 수프 맛있는 로컬 레스토랑이라는 곳. 예전 아일랜드에 있을 때 씨푸드 챠우더를 참 맛있게 먹었었는데. 늘 떠올리면 군침이 돌던 차에 이런 방앗간을 그냥 지나칠 수 없지.


유럽의 카페에서는 높은 연령대의 방문객을 많이 볼 수 있다. 모든 세대가 어울려 웃고 떠들고, 여유를 즐기는 장소. 쇼케이스엔 커피나 홍차 없이는 반 이상 먹지 못할 달달한 디저트가 그득하고, 신선한 샐러드와 샌드위치, 따뜻한 디쉬도 내놓는다. 거기다 실내는 후끈후끈 아늑하기까지. 춥고 배고프고 배낭이 무거운 여행자에게는 오아시스로구나. 큼지막하게 썬 연어와 감자, 양파가 들어간 연어 수프가 한국의 국 요리처럼 뜨끈하고 묽어서 술술 넘어간다. 빵과 함께 먹으니 금방 배가 든든. 조금 짜다고 느끼면서도 한 그릇을 뚝딱 비운 뒤 구석 테이블에 숨은 듯 앉아 사람들을 구경한다.


토요일 오후, 구식 디자인의 테이블, 바, 조명이 지난 세월을 말해주는 헬싱키의 오래된 카페. 여행객보단 현지 사람들의 주된 약속 장소 같다. 간단한 요기나 디저트를 즐기는 모습들이 하나같이 여유로워 보고 있으니 바깥 추위가 잠시 잊힐 만큼 편안하다. 자칫 여기서 오늘의 일과를 마치고 싶어 지기 전에 다시 배낭을 맸다. 어스름이 내리면 더 추워질 테니까.







역시 바람은 더 매서워져 있었다. 원래는 시내 곳곳을 조금 더 걸어볼 요량이었지만, 아직 남아있는 긴 여정에 무리하지 않기 위해 이제 헬싱키에서의 마지막 일정을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24시간이 채 안 되는 짧은 레이오버에 뭘 해야 좋을지 고민하다 찾은 핀란드 사우나 '뢰일리(Löyly)'가 그곳이다. 여러 사우나 중 현지 사람들이 주로 이용하는 점, 장작을 태워 열을 내는 정통 방식, 깔끔한 라커와 샤워시설로 비교적 높은 가격도 기꺼이 지불하게 됐다.


그리고 특별한 점 하나 더! 헬싱키 앞바다와 연결돼 있는 뢰일리에선 사우나로 몸을 달군 후에 바닷물에 몸을 식힐 수 있다. 처음엔 도무지 상상이 안됐고, 밤 시간에 이용하는 나는 아마 못하리라 생각했다. 게다가, 영하의 날씨 아닌가. 정말이지 그랬는데 말이다.


어느새 나는 줄지어 선 무리에 동참해 바닷물에 빠지길 기다리고 있었다. 깊이를 알 수 없는 시커먼 바다, 입에서는 김이 펄펄 새고 아이러니하게도 몸은 얼어붙은 냉수를 원하고 있다. 한국도 어디에 뒤지지 않는 사우나 문화. 핀란드는 수영복을 입고 성별에 관계없이 한 공간에서 맥주 등을 곁들여 즐기는 게 한국과는 조금 다르지만, 이질감은 없다. 뜨끈한 방에 걸터앉아 자유롭게 떠들다가 너무 더우면 바닷물에 한번 빠지고, 샤워 후 또다시 몸을 데우는 일의 반복. 영하의 날씨에도 수영복 차림으로 해변 테라스를 점거한 모습들이 그저 즐거워만 보인다.


그렇게 허용된 두 시간 중 1시간은 사우나, 30분 샤워로 보내고 나왔다. 장거리 비행, 시차, 여행의 긴장으로 채워진 피로가 멀리 달아난 듯 상쾌하고, 호스텔 방향 버스를 기다리자니 부슬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수돗물 걱정 없이 먹는 이 나라, 당연히 비 맞는 일도 대수롭지 않다.

노곤한 기분에  멀리 보이는 야경이 벌써 낯설지가 않다.





한국에서 열 시간. 헬싱키에 내린 지 다시 열 시간. 각성의 밤이 깊어간다.

최종 목적지까지는 두 시간을 더 가야 했지만, 이름만으로 더 멀게 느껴지는 이곳 '북유럽'에서 잠시 멈춰 간다. 오고 나서 보니 정말 여긴 먼 곳이었을까 싶다.

이따금 우린 왜 먼 곳으로 떠나고 싶어 지는가. 최대한 멀리, 그리고 오래.

그토록 도망치고 싶은 일상에서 어떻게 매일을 살고 있었을까.

낯선 버스에 앉아 낯선 얼굴, 풍경을 스쳐 보낼 때, 오히려 두고 온 일상이 더없이 멀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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