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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럼에도 불구하고 Jan 02. 2022

우리는 책이 아니라 공연을 읽는다

'모국어는 차라리 침묵', 목정원

<모국어는 차라리 침묵>, 목정원 산문

몇 번이나 남은 페이지를 확인하며 읽었다. 같은 문장을 몇 번씩 곱씹어가며 읽은 탓인지, 책을 붙든지 한참이 지났는데도 남은 페이지들이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 것을 기이하게 여기면서, 한편으로는 이처럼 아름다운 글이 머지않아 끝이 날 것에 전전긍긍하면서. 한 문장 한 문장이 모두 소중했다.


“공연예술은 시간예술”이다. “발생하는 동시에 소멸하는 예술”이다. 작가는 공연의 소멸성과 텍스트의 지속성을 비교하며 “당신은 내가 그것을 결코 보지 못할 것이다. 그것을 묘사하는 나의 문장은 당신에게 기어코 낯설 것이다. 나의 흥분은 기이할 것이다. 어쩌면 당신은 독서를 계속할 인내를 품기가 어려울 것이다.(06)”라며 걱정을 품는다. 그러나 그 걱정은 기우에 지나지 않는다. 아직 한국어로 번역되지 않은 텍스트를, 혹은 독자가 단 한 번도 읽어보지 못한 텍스트를 끌어와 전개하는 글에서도 독자는 기꺼이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단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우주를 상상하고 마법을 꿈꾸는 것이 가능한 것처럼, 독자는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공연을 묘사하고 음미하는 글 속에서도 기꺼이 새로운 아름다움을 길어낼 수 있다. 


사람들은 같은 책을 읽고 같은 풍경을 보고도 전혀 다른 말을 한다. 어쩌면 내가 작가와 같은 공연을 바로 옆자리에서 보았더라도 우리는 서로 다른 이야기를 했을 것이다. 공연예술이 발생하는 동시에 소멸하는 것처럼, 하나의 예술이 그것을 목격하고 체험한 사람들의 수만큼 각기 다른 심상으로 남는 것은 예술이 가진 비극적 아름다움이다. 공연의 내용과 연출가의 의도를, 안무가의 의도를 완전히 이해했다고 자신하더라도 그 완전한 이해야말로 오해에 가장 가까울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그러나 내 감상이 오해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을지라도 우리는 예술을 목격한 경이와 기쁨을, 슬픔과 실망을 글로, 사진으로, 영상으로 남긴다. 어쩌면 오해일지도 모르는 내 생각을 세상에 널리 퍼뜨리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내가 목격한 것을 아무도 똑같이 보지 못할 테지만 그럼에도 내가 목도한 순간의 아름다움을 마음속에 혼자 품고만 있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예술이 촉발한 불꽃으로 한껏 팽창하기 시작한 마음을 한 글자 한 글자 꾹꾹 눌러 적어 발산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을 것 같은 때가 있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지금도 그렇다. 예술을, 공연을, 상상을, 꿈속의 풍경을, 아름다움을 증언하려 노력해본 사람이라면 저자의 글에 공명하듯 마음이 떨릴 수밖에 없다. 


아주 먼 곳에서, 미처 보지 못한 무대 위에서 촉발된 떨림이 저자의 마음과 손끝과 활자를 경유하여 다시 독자의 마음을 울린다. 가지런하게 정제된 활자에서 무형의 에너지가 솟구친다, 꼭 아주 오랜 시간 단련된 연주자의 손끝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이 그러하듯이, 무용수의 가벼운 뜀박질이 관객의 세상에 거대한 지진을 가져오듯이. 그러므로 “발생하는 동시에 소멸하는 예술”을 붙잡는 대신 예술이 소멸한 자리를 부드럽게 덧그려 보려한 저자의 시도는 공연예술로부터 촉발한 그의 마음 떨림을 독자에게 전이시킨다는 점에서 성공적이며, 그의 결과물은 소멸하지 않고 활자를 통해 지속된다는 점에서 그의 글이 출발한 최초의 공연예술과는 다른 지점에 안착하여 별개의 예술로 거듭난다. 


“사람들은 문학 비평이나 영화 비평을 읽는 것처럼 공연 비평을 읽지 않는다.” 그러나 <모국어는 차라리 침묵>은 계속해서 읽힐 것이다. 이것은 공연 비평인 동시에 종이 위에 활자로 시연되는, 영원히 계속되는 공연이기 때문이다. 책이 독자로 하여금 겪지 못한 일을 겪게 하고 만나보지 못한 이를 그리워하게 하는 것처럼, <모국어>는 본 적 없는 공연의 감상에 젖게 만든다. 우리는 책이 아니라 공연을 읽는다. 연주와 노래와 춤이 만들어내는 떨림에 공명하는 공연장의 공기를, 책의 활자와 여백을 통해 고스란히 흡수한다. 목정원의 글은 우리를 그렇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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