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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충호 Oct 09. 2018

나를 작가로 만들어준 것은  피카소였다

- 도피를 꿈꾸는 당신에게

 당신도 나처럼 도피를 꿈꾸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사사로이 털어놓는 나의 도피를 가슴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지난 4월 “hip한 영어로 배우는 인생 tip을 컨셉으로 신문과 브런치에 연재했던 글들이 오늘 『지금, 멋진 영어 한 줄의 타이밍 1』이라는 제목의 책이 되어 내 책상 위로 돌아왔다.


나는 “hip한 영어로 옮겨놓은 인생 tip”을 영혼의 일용할 양식(daily bread)처럼 매일 아침마다 독자들의 밥상 위에 올리고 싶었다. 라이프 스타일에 맞춰 일주일에 5일, 한 달 4주, 일 년 12 달, 총 240개의 메뉴를 완벽하게 올릴 수 있도록, 그리고 출간 계약이 이루어지면 출판사 편집자가 자유로이 재량할 수 있는 추가 메뉴를 포함해서 260개를 준비했다. 원고 쓰기를 다 끝내고 한 달 정도 숙성 기간을 두면서 호흡을 가다듬고 있었다. 기분전환이 필요한 순간 충동적으로 투고하며 데뷔해서 그런지 이번에도 나는 내 마음이 심하게 흐트졌던 8월의 첫 토요일  엔터키를 누르고 잠자리에 들었다. 주말을 보내고 이어진 수요일, 동료들과 점심 먹고 커피 마시러 이동하던 시끌벅적한 차 안에서 출간 계약과 관련해서 미팅을 제안하는 젊은 편집팀장의 전화를 받았고 그날 이후 출판사 세 곳에서는 이메일을 보내왔다.  




 나를 작가의 길로 이끈 것은 피카소였다. 그것도 우연히. 하지만 존 어빙의 말을 빌리면 거기엔 내 정신이, 내 욕망이, 내 꿈이, 내 고독이 함께했다.


시간이 정말로 멈춰서는 순간이 있다.
우리는 그런 순간을 알아챌 수 있을 만큼 정신에 민감해야 한다.
There are moments when time does stop.
We must be alert enough to notice such moments.
- John Irving(1942- )

 책 쓰기와 관련해서 내게 영감을 준 것은 피카소의 “Bull's head란 작품이다. 별처럼 빛나는 수많은 그의 걸작들에 비하면 이 작품은 은은한 달맞이꽃에 더 어울릴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꽃잎에 시간이 멈춰 선 것을 보았 글을 쓰겠노라고, 작가가 되겠노라고 결심다.


Pablo Picasso. Bull's Head. 1942


나는 이 작품을 보자마자 내 기억 속에 있던 그의 말을 이해했다.


Good artists copy, great artists steal.  
훌륭한 예술가는 모방하고, 위대한 예술가는 훔친다.

스티브 잡스(Steve Jobs) 피카소의 화신은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그가 휴대폰과 PC를 모방하고 훔쳐서 스마트폰을 창조한 과정에는 피카소의 공식이 기여했음이 틀림없고, 그의 자신감이 소크라테스까지 불러내고 있는 걸 알기 때문이다.


I would trade all of my technology for an afternoon with Socrates.
소크라테스와 한나절을 보낼 수 있다면 나(애플)의 모든 기술을 주겠다.

나는 한 문장을 보태는 것으로 피카소에게 경의를 표했다.

The greatest artist creates.
가장 위대한 예술가는 창조한다.


 어차피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하나도 없다. 모든 운명은 변용이나 변주뿐이다. 모방하고 훔쳐서 창조하는 수밖에 없다. 오늘날의 소설과 영화는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오뒤세이아』라는 태양 아래 있는 그림자에 불과하다. 모방하거나 훔치는 단계에서 멈추면 스티브 잡스가 삼성에게 했던 copycat(흉내쟁이)이라는 조롱을 들어야 한다. 창조자의 권위란 그런 것이다. 모방하고 훔친 것으로 그 몇 배의 고유한 가치를 창조한 자의 눈에 자신을 모방한 자는 얼마나 보잘것없었을까. 소크라테스와 마당을 거닐며 철학을 논하는 상상을 매일 같이 했을 그에게 따라쟁이 삼성은 또 얼마나 한심하게 비쳤을까.

 모방과 훔치는 건 순간의 영감으로 족하다. 그리고는 창조의 세계로 들어가 영원에 머물러야 한다. 모방과 훔침을 수단으로만 사용하고 온전히 자기만의 시각을 창조할 때 세상은 기꺼이 그 리름에 맞춰 춤을 추려 무대 위로 올라온다.




 내가 첫 책『시민의 품격, 국가의 품격』을 쓸 때의 상황도 그랬다.  내 오른손에는 그리스로마 신화에 관한 책이, 왼손에는 책 쓰기에 관한 책이 들려 있었다. 난 궁금했다. 그리스로마 신화를 바탕으로 쓴 책은 이렇게 많은데, 왜 읽고 난 후 내 마음에서 떠나지 않는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의 변주곡은 없을까. 온갖 삶의 지혜로 가득한 책인데, 오늘 우리의 삶에서 그 지혜들이 절실히 필요한데 그 지혜들을 언급한 책이 없다는 게 난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자전거의 안장과 핸들을 가지고 황소 대가리를 창조해 낸 피카소처럼 난 그리스로마 신화와 책 쓰기에 관한 책을 보다가 마치 열병에 걸린 듯이 원고를 쓰기 시작했고 두 달만에 완성했다. 그리고 문제의 그날 밤 9시 어떤 충동에 사로잡힌 것처럼 여러 출판사에 스팸메일 뿌리듯 투고를 했다. 아는 출판사도, 도움을 청할 사람도 알지 못했기에 나로서는 그 방법뿐이었다. 한 달 정도 느긋하게 기다릴 요량이었다. 하지만 바로 다음날 아침 9시부터 전화가 걸려오기 시작했다. 총 다섯 군데의 출판사와 출간 이야기가 오갔다. 그리스로마 신화를 삶에 적용한 책을 모방하고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을 훔쳐서 나의 생각 곁들이기를 창조한 것에 출판사들이 반응한 것이다. 이런 과정을 지켜본 지인들은 내가 작가로 데뷔하는 것도 날로 먹었다고 말한다. 그 말도 맞다. 작가 칭호를 얻기까지 그 흔해빠진 눈물겨운 사연도 없었으니 날로 먹은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지금, 멋진 영어 한 줄의 타이밍 1』 어떻게 세상에 나올 수 있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책 역시 모방과 훔침 그리고 창조라는 피카소의 공식을 거친 것밖에 없다.  여러 인물의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그래서 ‘교훈적인’ 인용문을 모아놓은 원고를 출판사에 들이밀었다면 그 어느 곳도 반응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미 그런 영어책들은 세상에 널리고 널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그들의 말을 빌려 내 인생의 자서전을 만들었고 출판사는  이야기가 독자들의 보편적인 정서와 맞닿아 있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내가 지나온 쓸쓸함과 도피, 그리고 앞으로 내가 살아갈 외로움과 욕망은 세상 사람들이 제대로 숨기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대놓고 드러내지도 못하는 보편적인 감정의 속살이다. 영어책을 모방하고 인문학을 훔쳤지만 내 감정 나만의 방법으로 그려낸 방식에서 출판사는 보편성을 보았을 것이다. 책 한 권의 원고를 놓고 마주한 미팅에서, 아직 내 머릿속에 들어있는 구상을 듣자마자 그것도 함께 묶어 시리즈로 내자며 출판사가 3권을 계약한 이다.




 나는 내가 죽을 때까지 함께할 수밖에 없는 내 꿈과 고독과 욕망에 솔직하고 싶은 마음에서 ‘인문 영어’ 책을 썼을 뿐이다. 출판사는 그 독특한 착상에 귀가 솔깃한 것이다. 나는 내가 영어교사로서 즐겁게 가르치고 싶은 교재를, 독자들이 따분하지 않고 영어를 배우면서 자신의 마음과 삶을 돌아볼 수 있는 영혼의 양식을 담고 싶었다. 관심을 보인 출판사들은 여태껏 본 적이 없는, 어쩌면 ‘가장 감각적이고 도발적인’ 영어책에 눈이 휘둥그레졌는지 모른다.

 출간 계약과 함께 원고를 출판사에 넘기면서 책임 편집자한테는 한 가지만 빼고 마음대로 편집하라고 했다. 그 한 가지는 바로 첫 글과 마지막 글이었다. 반드시 1월의 첫 글은 앙리 라보리(Henri Laborit)의 ‘도피’ 여야 하고, 12월의 마지막 글은 니체(Nietzsche)의 ‘위험하게 살라’ 여야 한다고. 이쯤 되면 내 인생이 보이지 않는가? 여전히 내 인생이 위태위태해 보이는가, 아니면 당신도 그런 오솔길을 걷고 싶었는가?




 한 칼에 베인 삶이라면 그건 견딜만하다. 적어도 승부를 했다는 뜻이니까. 내가 결단코 참을 수 없는 건 ‘야금야금 갉아먹히는’ 삶, 그리고 환경에 ‘질질 끌려가는’ 삶이다. 그건 경기장에 입장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통보받은 패배와 같다. 책을 읽고 쓸 때 나의 일관된 관점은 나에게, 그리고 사람들에게 그런 삶을 살지 말라는 것이다. 내가 그런 삶을 거부할 때마다 세상은 “대의명분을 위해 희생할 줄 모른다”, 혹은 “이기적이다”라는 딱지를 붙여주었다. 하지만 나는 내 삶을, 내 정신을 갉아먹는 부당함을 거절했을 뿐이다. 권력의 생리는 한 마디로 ‘손대어서는 안 되는(untouchable)’ 그런 좌대에 앉아 있다는 착각을 공통분모처럼 갖고 있다. 요구의 부당함은 생각하지 않고 거절의 주제넘음을 지적한다. 약자가 취할 수 있는 최소한의 보복 전략(tit-for-tat strategy)이 거절이라는 걸 인정할 생각이 조금도 없는 것이다. 나는 안다, 저들의 그 오만과 편견을, 그리고 나의 저항과 그 즐거움을. 궁극적으로 저들이 내걸고 있는 것이 대의명분도 아닐 뿐만 아니라 나의 수용이 희생도 아니라는 걸 나는 잘 안다. 잘 알고 있다.


 그런 사회와 나 사이에 쓸쓸함과 공허함, 욕망과 도피가 안개처럼 덮인다. 그것도 매일. 나는 내가 어쩔 수 없는 욕망을 따르고, 꿈꾸기 위해 도피했기 때문에 책을 쓸 수 있었다. 내가 외롭지 않았다면, 도피하지 않았다면 나는 그 자리에서 분명 파멸하고 말았을 것이다. 현재의 내 욕망은 나의 지나온 날들이 만들어 준 것이다. 현재의 욕망은 또한 나의 미래를 만들어 갈 것이다. 나는 오늘도 여전히 그 사이에 갇혀 헤매고 있지만 난 내 욕망의 가치를 알기에, 나의 욕망을, 사랑한다.

 나는 내 삶이 어떻게 펼쳐질지 대충 느낌으로 알고 있다. 평탄하지는 않겠지만 결국 이겨낼 것이다. 바다를 모르는 사람은 파도가 두렵다. 하지만 난 바다를 알고, 작은 파도 정도라면 기꺼이 즐기면서 탈 줄도 안다.

 나는 언제나 열 받은 팝콘으로 살고 싶다. 튈만한 가치가 있는 자극만 받으면 언제라도 터뜨릴 수 있는 응축된 에너지로 나를 항상 뜨겁게 달궈놓고 사는 이유이기도 하다.

 


 나는 현재  『지금, 멋진 영어 한 줄의 타이밍』시리즈 2의 원고를 쓰고 있다. 출판사의 아이디어에 따라 4편 이상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인문 영어 시리즈를 끝내면 이미 방향을 잡아놓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의 창의적인 변주곡이자 앙코르라 할 수 있는 고대 그리스로마의 역사물과,  줄기를 세워놓은 ‘인문 소설’ 쓰기로 넘어갈 생각이다. 프리드리히 니체가 주문한 대로 “베수비오 화산 비탈에 나의 도시를 세우면서 더 무책임하게, 더 무질서하게 덤비며 내 남은 생을 태우고 싶다. 매운 연기 다 사라질 때까지 온전히 타들어가 곱게 재로 남는 것, 그뿐이다.

 내 목표는 삶으로 시를 쓰는 것이다. 시를 쓰는 삶이 아니라 “시를 사는 것이다.  『지금, 멋진 영어 한 줄의 타이밍 1』은 그동안 나 혼자만 알고 몰래 즐겼던 오솔길과도 같은 책이다. 오늘, 도피를 꿈꾸는 당신에게 자신 있게 권한다.


교보문고  『지금, 멋진 영어 한 줄의 타이밍 1』


YES 24  『지금, 멋진 영어 한 줄의 타이밍 1』


인터파크  『지금, 멋진 영어 한 줄의 타이밍 1』


알라딘  『지금, 멋진 영어 한 줄의 타이밍 1』


반디앤루니스  『지금, 멋진 영어 한 줄의 타이밍 1』


영풍문고  『지금, 멋진 영어 한 줄의 타이밍 1』


11번가 도서  『지금, 멋진 영어 한 줄의 타이밍 1』


Daum 책  『지금, 멋진 영어 한 줄의 타이밍 1』


NAVER 책  『지금, 멋진 영어 한 줄의 타이밍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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