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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충호 Oct 10. 2023

사랑을 기다리는 시간, 시간을 견뎌야 하는 사랑

 When I dream / The Rose

시간차를 두고 세상에 나온 노래 ‘The Rose(1977)’와 ‘When I dream(1985)’을 (순서는 상관없지만) 꼭 이어서 들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여자가 있습니다. 와인이나 카푸치노 향이 있고, 경건한 자세로 귀를 기울이는 사람에게는 속마음을 스스럼없이 털어놓는 그런 여자입니다. 다음은 어느 가을 날 그녀가 나에게 들려준 이야기입니다.  

   



When I dream - Carol Kidd


아름드리나무보다 더 높은 집을 지을 수 있는데 사랑하는 이가 없어 짓지 않았어. 원하는 선물이 있을 땐 남에게 부탁하지 않고 바로 살 수도 있고, 마음만 먹으면 오늘 밤 당장 파리행 비행기를 탈 수도 있어. 그런데 내가 왜 혼자 살아야 해?     


갑작스러운 그녀의 신세 한탄에 내가 어리숙한 대답이라도 찾아볼까 하고 시선을 돌리며 불편한 몸짓을 이어가려는 찰나 고맙게도 그녀의 한결 차분해진 목소리가 이어졌습니다.

    

내 삶을 지탱해 주는 건 꿈이야. 꿈을 꿀 때 난 사랑을 꿈꾸거든. 언젠가는 꿈속에서 만난 사랑이 내 앞에 나타날지도 모르잖아. 그 사랑이 나타난다면 나는 못하는 노래도 마다하지 않을 거야, 심지어 우스꽝스러운 역할도 마다하지 않는 광대 노릇도 할 수 있다고.      


가벼운 술기운이 우리의 모세혈관을 뜨겁게 점령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고백은 맑은 가을 하늘 달빛처럼 차갑게, 슬프게만 들렸습니다.     


난 나를 달까지 데려다 줄 누군가를 불러낼 수 있고, 짙은 화장을 해서 뭇 사내들을 호릴 수도 있어. 하지만 난 매일 홀로 잠자리에 들어, 이름조차 모르는 내 사랑과 함께. 난 꿈을 꿀 때마다 사랑을 꿈꾼다고. 언젠가는 그 사랑이 내 앞에 실제로 나타날지도 모르......    

 

말을 채 끝내지 못한 그녀가 잠 속으로, 꿈속으로 빠져드는 모습을 보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 또한 잠 속으로, 꿈속으로 끌려 들어가고 말았습니다.     


     



다음날 아침 브런치 시간. 밤새도록 울음에 재워둔 듯한 목소리가 분명해 보였지만 그녀는 조금은 밝은 표정을 지으며 지난밤 못다 한 이야기를 이어갔습니다.   

   

The Rose - Bette Midler


사람들이 사랑은 강물이래. 연약한 갈대를 잠기게 하는. 영혼을 붉은 피로 물들이는 면도날이라고도 하고. 뭐, 굶주림 혹은 끝없이 고통을 주는 결핍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어. 하지만 단연코 내게 사랑은 꽃이야. 그리고 그 꽃의 유일한 씨앗은, 당신..., 이고.      


예정에 없던 고백이 준비되지 않은 마음에 부딪는 소리에 어색함이 묻어나자 그녀가 수습을 서둘렀습니다.     

상처받을 것이 두려워 춤추는 것을 배우려 하지 않는 사람도 있대. 깨어날 것이 두려워 모험하려 하지 않는 꿈도 있고. 뭐, 받아들여지지 않는 사랑과 주려고 하지 않는 사랑도 세상에는 널려 있지. 죽는 것이 두려워 사는 법을 배우려 하지 않는 인생과 뭐가 다를까, 싶기도 해. 당신의 밤은 어때? 외로워? 길어? 하지만 잊지 말고 꼭 기억해야 할 게 있어.      


잠기다 못해 탁한 목소리로 주절거리던 그녀가 갑자기 일어서더니 무대 위 가수처럼 노래의 마지막 소절을 목청껏 불러 젖혔습니다.      


    



                

     




          

사진: Freepi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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