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 Libro Dell' Amore · 2 CELLOS
가히 호모 비블리오쿠스(Homo Bibliocus)의 시대라 할 만하다. 책을 읽고, 책을 나누고, 책을 쓰는 일이 이렇게 우리의 일상에 가까이 와 본 적이 없을 정도로 이제 사람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책으로 대신한다. 그렇다, 오늘은 책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얼마 전 어느 지인과 나눴던 대화가 문득 떠오른 참에 그간 내 생각이 거쳐온 변화를 글로 정리를 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친구와의 대화는 내가 우연찮게 책을 출간하고 난 이후의 시점이었다. 그는 듣는 사람마다 혀를 내두를 정도로 책을 많이 읽는, 아니 탐독자 내지 탐서가라 할 만큼 거의 책을 끼고 사는 편이다. 내 부러움 섞인 추측을 하자면, 일 년에 족히 200권 이상 읽고 있을 것이다. 당연히 웬만한 독서모임에도 그는 빠지지 않는다.
나는 책을 읽는 것으로 만족한다. 나는 앞으로도 책을 쓰지는 않겠다.
그의 말이 떠올려 준 자동 연관 검색 어구가 있었다.
Das ganze Leben besteht aus Wollen und Nichtvollbringen, Vollbringen und Nichtwollen.
- Johan Wolfgang von Goethe
우리의 인생은 다음 두 가지로 성립된다: 원하지만 달성할 수 없다. 달성하고 싶지만 원하지 않는다.
내가 괴테를 떠올리게 된 이유는 두 가지 의미에서다. 하나는 나도 전에는 그 친구처럼 생각했다는 뜻이고, 다른 하나는 이제 나는 더 이상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내 생각을 솔직히 풀어쓰면 이렇다.
나는 책을 쓰고 싶다.
하지만 책 한 권을 채울 정도로 글을 쓸 재능이 나에겐 없다.
책을 5백 권 정도 읽고 나면 책을 쓸 용기가 생길까?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그리고 좀 더 솔직히 말하자면, 이 고백은 내가 책을 좋아하던 고등학교 시절부터 얼마 전까지 끊임없이 이어져 왔던 마음이기도 하다. 그동안 나는 어떤 점에서는 시간낭비를 했는지 모른다. 바로 글쓰기에 대한 두려움은 볼테르의 표현대로 공포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To hold a pen is to be at war. - Voltaire
펜을 든다는 것은 전쟁에 임하는 것이다.
사랑은 결혼으로 이어질 수 있고, 사랑의 열매로 자녀와 동행하는 삶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즉, 결혼은 선택에 따라 둘 만의 결합, 혹은 둘 이상의 세계를 만들기도 한다. 그 어느 것이 나은지는 각자의 가치관에 달렸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경험의 유무다. 자녀를 키우면서 동반하게 되는 오욕칠정의 감정 체험 여부다. 자녀를 갖는다는 것은 그들과 함께 하는 시간 동안 겪는 감정의 미묘한 색조를 말할 수 있는 재료를 갖는다는 뚯이다. 나중에 책을 쓰겠다는 소망을 갖고 있어서 그런지 나는 책을 읽고 나면 나도 모르게 둘 중 하나의 독백을 내뱉곤 했다.
이 작가는 어쩜 이리 글을 잘 쓰지? 그러니 나 같은 사람이 엄두를 못 내지!
아니, 이런 걸 책이라고 내는 거야? 이런 책은 나도 쓰겠다!
하지만 그 어떤 경우에도 나는 1년 전까지 책을 쓰지 못했고, 글쓰기에 대한 두려움에 눌려 있었다.
작년 한 해, 나는 자의반 타의반 일을 놓(치)고 쉬고 있었다. 이참에 고전을 체계적으로 읽어보자고 작정하고는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부터 읽기 시작했다. ≪일리아스≫는 전혀 생각하지도 않았던 하인리히 슐리만의 트로이 유적 발굴 이야기로 이어졌다. 독서 목록은 계획한 대로 되는 게 아니라 읽은 책이 다음 읽을 책을 안내한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이기도 했다. 그렇게 굽이굽이 이어진 책 읽기가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에 와서는 급격한 감정의 세를 불리더니 내 마음의 강어귀에 삼각주를 형성하고 말았다. 보통 읽고 난 책은 다음 책을 읽으면서 서서히 잊히기 마련인데,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은 이상할 정도로 내 머릿속에서 좀처럼 떠나지 않은 채 어떤 점에서는 나를 붙들고 있었다.
2천 년 전에 쓰여진 책인데도 어쩜 지금의 우리 모습과 닮은 점이 많은지, 그리고 우리가 지금이라도 배웠으면 좋겠다 싶은, 지혜로 가득했다. 당연히 우리의 현실과 비교한 책을 누군가 썼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없었다. 순간, 세상에 없는 책이니 내가 쓸 수도 있겠다 싶은 용기가 비로소 마음속에서 태어났다.
Opportunity dances with those already on the dance floor.
- H. Jackson Brown, Jr.
꾸준히 책을 읽고 있는 사람은 이미 글을 쓸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다. 기회란 녀석은 이미 무도회장에 있는 자와 춤을 추기 때문이다. 나는 이제 남이 추는 춤을 구경하기 위해 무도회장에 가는 사람은 제정신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책 한 권을 쓰려면 마음속에 도서관이 있거나 자신만의 색인목록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실제로 내가 쓴 ≪시민의 품격, 국가의 품격≫만 해도 100여권 이상의 책이 이런 저런 방식으로 연결되어 있다. 즉, 책 쓰기는 자연스럽게 더 많은, 더 다양한 책 읽기와 맺어지는 선순환을 이루면서 그동안 자신이 읽었던 내용을 차분히 정리해주는 과정을 거치게 만든다. 쓰기를 통하여 읽기가 원숙해진다고 할 수 있다. 말하자면, 배우는 것과 가르치는 것의 차이라 할 수 있다. 자신이 배운 게 열 개라도 초보 교사일 때는 열 개 모두를 학생들의 눈높이에 맞춰 설명해주지 못하는 경우와 같다.
막상 글을 쓰기 시작하려 하니 이미 괴물같이 몸집을 키운 두려움이 내 앞에 골리앗처럼 커다란 그림자를 내리며 내 앞에 서 있었다. 작다 못해 쪼그라든 나의 결심을 보호할 튼튼한 갑옷이 필요했다. 이때 도움이 된 것은 그동안 다양하게 읽은 책에서 미리 맞아 놓은 독감예방 백신이었다.
처음 쓴 것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쓰레기다.
- 헤밍웨이
소설이든 아니든 1천 매 짜리 원고를 책 쓰는 심정으로 먼저 써보라.
- 표정훈
300쪽 안팎의 책 한 권 분량인 원고지 1천 매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한번 써보라는 출판 평론가의 조언은 내게 가장 현실적으로 들렸고, 노벨 문학상 수상작가가 말한 ‘모든 초고는 쓰레기다’는 내게 큰 격려가 되었다. 우리가 극복해야 하는 것은 낙심하는 일이라고 말했을 때 나는 그의 ‘초고 쓰레기론’을 금과옥조로 마음에 새겼고 이는 절대 바래지 않는 나의 신념이 되어 주었다. 그 결과 나는 두 달만에 원고지 1,500매 분량의 초고를 탈고할 수 있었고 이는 ≪시민의 품격, 국가의 품격≫이라는 이름을 달고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두렵고 부끄러운 마음으로 책을 쓰겠다는 의중을 드러냈을 때 나는 그 어느 누구로부터도 내가 원하는 만큼의 진실된 응원을 받지 못했다. 심지어 가족한테서도. 글이야 쓰겠지만 출간으로 이어질 가망이 안 보였기 때문일 것이다. 책을 쓰겠다는 나 자신도 긴가민가한 상황일진대 누군들 믿을 수 있었겠는가. 하지만 내게 배짱 하나는 있었다. 백수로 빈둥빈둥 책이나 읽다가 가족들에게 자격미달로 내쫒김을 당한다면 그 과정을 책으로 쓰겠다는 말도 안 되는, 응큼하기 짝이 없는 배짱이었다.
진심을 담아 하는 이야기지만, 나이가 들수록 나는 먹고 산다는 문제가 점점 시시하게 느껴진다. 이렇게도 먹고 살 수 있고 저렇게도 먹고 살 수 있다. 그렇게 굳어지는 생각이 배짱과 오기라는 검(劍)으로 내 손에 들어온 것이다.
거짓말 같이 들리겠지만 나는 무명작가가 책을 내기 어렵다는 건 책을 낸 후에 알게 되었다. 행운아 중에 행운아인 셈이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이 맞다. 나는 어느 정도 교정을 마친 밤 9시, 1백여 군데 출판사에 동시 투고를 감행했다. 내 생애 처음으로 뿌린 스팸메일이었다. 아는 출판사도 없었거니와 부탁할 만한 사람도 알지 못했기 때문에 나로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엔터를 누르면서 한 달 정도 기다려보면 답이 나올 거라고 생각하니 마음도 느긋했다. 그런데 웬걸, 바로 다음날 아침 9시부터 연락이 왔다. 그 후 약 한 달간 6군데의 출판사에서 긍정적인 연락을 받게 되었다.
원고를 탈고한 후 몇몇 지인들에게 조언을 부탁하고 교정을 봐달라고 했는데, 그때 책 내용에 대한 소문이 좀 돌면서 많은 분들이 응원을 해줬다. 그중 한 분은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독서 감상문 대회를 열자면서 장학금을 주간신문인 <춘천사람들>에 기탁하며 저자도 모르게 진행을 하여 나를 감동하게 하기도 했다. 책이 아직 나오지도 않은, 출간이 임박한 상태에서 신문사로부터 그 사실을 처음 전달받았을 때는 농담하는 줄 알았다. 책이 나오자마자 청소년 인문독서 감상문 공고가 나갔고, 그들은 북콘서트도 열어 주었다. 그 후에 펼쳐진 일련의 진행 과정은 그야말로 일사천리였다.
다시 처음에 언급했던 두려움으로 돌아가 보자. 나도 글쓰기 서비스 플랫폼인 브런치의 존재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지만 감히 작가 신청은 하지 못하고 있었다. 두려웠기 때문이다. 속을 들여다보지 못한 브런치는 궁금하기도 했지만 두려움이 더 컸고, 내가 브런치에 올릴 글을 그럴듯하게 쓸 수 있을까, 생각하니 두려움은 배가 되었다. 아니, 이보다 더 두려웠던 것은 과연 내가 브런치에 글을 쓸 수 있는 작가 신청과정에서 자격이나 얻을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흘려보낸 시간이 1년 하고도 반이었다.
책이 출간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은 지난 8월 4일 새벽 4시쯤이었다. 잠도 안 오길래 다분히 충동적으로 '에라 모르겠다!' 하고 브런치에 작가 신청을 해버렸다. 며칠 후 메시지가 도착했다.
브런치 작가가 되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작가님의 소중한 글을 기대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글을 올릴 수 있는 자격을 받았지만 정작 두려움은 그 후로도 2주 정도 더 나를 떠나지 않았다. 모든 시작은 어렵기 마련인지라 나는 브런치를 조심조심 쓰고, 저장하기를 반복하면서 낯선 길을 익히고 있었는데, 아뿔싸! 실수로 발행을 눌러버렸다. 하지만 당시 나는 발행 취소 방법을 알지 못했다. 여기저기를 뒤져봐도 ‘삭제’는 보이는데 ‘취소’는 찾을 수가 없었다. 이것도 이 글의 운명이려니 생각하고 내버려 둔 게 브런치에 올린 나의 첫 글이 되고 말았다. 그 후 브런치 매니저도 알게 되었고, 모르는 것을 묻고 도움 받으면서 점차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그렇게 브런치를 익힐 겸 에세이를 틈틈이 써서 올렸더니 오늘 또 하나의 알림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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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리 매거진 연재 신청 방법 안내에 따르면 출판사를 통한 출간 경험은 브런치 구독자 1,000명 이상의 작가에 준하는 대우를 하고 있다. 이제 겨우 한 달, 스무 편 정도의 에세이를 쓴 나의 경우, 구독자는 14명인데 이를 무시하고 무려 1,000명에 준하는 대우를 한다는 것이다. 출간 도전이 없었더라면 언감생심 꿈도 못 꿀 일이다. 그게 바로 책 쓰기의 힘이구나, 하고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지금도 내가 두드리는 노크소리는 똑같을 것이다. 하지만 출간자의 노크하는 소리를 듣는 이는 예전보다 적어도 열 배 이상 더 크게 듣고 있는 게 분명하다.
어디에서나 경쟁을 피할 수는 없다. 하지만 경쟁에도 질은 있다. 적어도 호모 비블리오쿠스라면 이 바닥에서의 경쟁은 승자가 되지 못한다 할지라도 비참함을 안기지 않는다는 것쯤은 알 것이다. 더욱이 집필부터 출간까지 저 혼자 알아서 다 해본 사람은 자기가 가고자 했던 길을 끝까지 가본 사람이어서 그다음부터는 지도가 없어도, 가이드가 없어도, 능히 혼자서 즐기면서 길을 갈 줄 아는 사람이다. 이보다 더 행복한 여행이 어디 있을까, 나는 알지 못한다.
나는 이제 에세이를 쓰고,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을 가지고 또 다른 변주곡(變奏曲)도 쓸 생각이다. 직장인을 위한 감각적인 영어책을 쓰고, 이미 뼈대를 세워놓은 소설도 쓸 것이다. 우선은 각각의 욕망이 내 가슴속에서 충돌하게 내버려 두고 하나씩 하나씩 내게로 손길을 건네는 행운의 여신(Fortuna)과 춤을 추고 싶다, 우아하게!
Grazios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