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충호 Sep 09. 2017

Remember Me

Sacrifice · Gregorian

  어느 날, 의사는 나의 뇌가 더 이상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모든 실질적 의미에서 나의 생명이 정지됐다고 결정을 내릴 것입니다. 그때,  기계를 이용해서 나의 생명을 연장하려 하지 말아 주십시오. 대신, 다른 사람들이 더욱 충실한 삶을 사는데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나의 몸을 나눠주십시오.

나의 눈은, 어린아이의 미소 띤 얼굴이나 아름다운 일몰의 장면을 한 번도 보지 못한 사람에게 주십시오. 나의 심장은, 자신의 심장으로 날마다 끊임없는 고통을 겪어온 사람에게 주십시오. 나의 피는, 교통사고로 부서진 차 속에서 구출된 십 대 청소년에게 주시어, 그의 손자들이 노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을 때까지 살게 하여 주십시오. 나의 신장은, 기계에 의존하여 나날을 연명하고 있는 사람에게 주십시오. 내 몸속의 뼈와 모든 근육과 세포와 신경은, 절름발이의 어린이에게 주시어, 그 아이가 걸을 수 있는 길을 찾게 해 주십시오. 그리고 내게 남은 것은 태워서 나온 재는 바람에 뿌려 주시어 꽃들이 자라도록 하여 주십시오. 굳이 무언가를 꼭 묻어야만 한다면, 나의 결점과 연약함을 묻어 주십시오.

혹시라도 나를 기억하고자 한다면, 친절한 행위와 말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그것을 건네줌으로써 나를 기억해 주십시오. 내가 부탁한 이 모든 걸 해주신다면 나는 영원히 살게 될 것입니다.


  로버트 테스트Robert N. Test의  "Remember Me"입니다. 코팅 처리되어 내 지갑 속에도 들어있는 이 글은, 자신의 죽음을 통하여 아름다운 향기를 내고자 하는 사람들의 공통된 유언이기도 합니다. 1981년, UN에서 정한 '세계 장애인의 해'에 발맞춰 시작된 안구기증운동은 내가 ‘죽음과 삶’의 관계를 처음으로 생각해보게 된 계기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당시 고향 제주에는 안구기증 센터가 없었습니다. 2년 후 군입대를 하고 첫 외출을 받아 가게 된 곳이 바로 대구에 있다는 안구은행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병원은 그때까지도 국가에서 안구은행으로 지정된 사실을 모르고 있었고, 기증자의 방문을 받아본 적도 없었다고 했습니다. 첫 방문자를 받고서야 이리저리 알아보다가, 수명이 한 달도 못 넘길 게 분명한 '종이 쪼가리'로 급조된 등록증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로부터 한참의 세월이 지난 후, 이 초라했던 출발은 어엿한 운동으로 발전하였고, 나는 각막 이외에도 뇌사시 장기, 시신과 조직에 대한 기증을 추가할 수 있었습니다. 이는 내게 뿌리를 알 수 없는 자유로움을 느끼게 했으며, 육체를 더 소중히 간직하게끔 인도하였습니다. 물론, 나의 죽음이 내지 못할 아름다운 향기를 다른 사람의 몸을 빌려서 내고 싶은 욕심이 그 바탕이라는 걸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2016년 질병관리본부의 장기기증 인식조사에 따르면 장기기증을 희망하는 사람과 실제 장기기증을 등록한 사람의 비율은 현격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고 합니다. 성인 1,000명 중 413명이 장기기증 의향이 있다고 답하고 있지만, 실제 장기기증 희망 등록자는 17명에 그쳤다고 합니다.  그 마음과 실천의 차이는 안타까움으로 이어집니다. 장기를 이식받아야만 생명을 건질 수 있는 사람은 3만 3천 명을 넘는데 제때 장기를 이식받지 못해 하루 평균 3명 이상이 숨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별다른 비용이나 노력을 들이지 않고 장기기증 희망 등록자의 비율을 높일 수 있도록 우리도 미국이나 영국에서처럼 운전면허 응시자에게 장기기증 희망 여부를 묻는 건 어떨까요.  그 단순한 제도의 도입을 통하여 미국은 전체 인구의 48%, 영국은 31%가 장기기증 희망 등록에 참여하고 있다고 합니다.

 9월 9일은 장기기증의 날입니다.  뇌사자 한 명의 장기기증으로 9명의 생명을 9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장례 방식에서 화장(火葬)을 선택하는 비율이 80%를 넘어선 지 이미 오랜 나라에서 1.7%의 장기기증 비율은 좀 부끄럽다는 생각입니다.



Sacrifice · Gregorian





작가의 이전글 이웃한 무관심과 우리의 비겁함에 관하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