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자이지만 개발 못해요.

돈 많이 못 벌어요. 네카라쿠배당토 이직 못합니다.

by 연윤

혹시, 이공계 기피현상이라는 말을 기억하는가?


고등학교 1학년이 끝날 무렵, 나의 진로에 대해서 큰 결정을 해야 하는 시기가 있었다.

바로 문과로 갈지, 이과로 갈지 선택을 하는 것이다.

당시에 문과, 이과라는 말 대신 인문계, 자연계라는 단어를 쓰는 걸로 바뀌었는데 지금은 다시 문과, 이과로 불리는 듯하다.


학생들이 선택한 인원에 따라 반의 숫자가 결정이 되었고, 우리 학교는 그나마 선택이 딱 50:50이었다.

여자반은 문과반이 3반, 이과반이 3반이었다.(남자반은 문과가 3반, 이과가 4반)

이게 왜?라고 생각한다면, 옆의 여고의 경우 문과가 10반, 이과가 2반이었던 시절이었다.


요즘 수능은 다시 사회, 과학과목이 모두 통합이 되었지만, 라떼는 7차 교육과정이라는 큰 교육의 틀이 변화되면서 이과는 사회 과목은 수능을 보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영어와 사회라는 최악을 피해 수학과 과학이라는 차선을 선택했다.

과학은 한 과목 이상 심화 교과를 선택해서 수능을 봤는데 나는 지구과학2를 선택했다.

물리는 도통 이해가 안 가고 화학, 생물은 외울게 많아서.





20년이 지나니 마치 공대가 미래의 희망이 된 것 같다. 그중에서도 IT라고 불리는 것들이.

갑자기 블록체인이니 클라우드니 AI니 하면서 사람들 사이로 스며들어온지도 벌써 몇 년이 지났다.


직업이 개발자라고 하면 '그게 뭐예요?' 혹은 '그거 힘들지 않아요?' 라던 사람들이

이제는 '어머, 개발자세요? 돈 많이 버시겠다.'라는 반응으로 바뀌다니.

20년 만에 세상이 도대체 얼마나 바뀐 건지. 세상에 이런 일이다.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개발자라고 하면 모두가 스티브 잡스고 마크 저커버그인 줄 아는 것 같다.

이름만 들으면 모두가 아는 그 회사에 내가 원하면 이직하면 되는 줄 안다.


네카라쿠배당토


이거 들어보신 분?

풀이하자면 네이버, 카카오, 라인, 쿠팡, 배달의민족, 당근마켓, 토스.

IT 기업 중 개발자들이 선호하는 회사의 나열이다. 돈을 많이 주는 플랫폼 기업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만큼 개발자들이 많이 지원하는 회사기 때문에 여기 다니신다면 능력 있는 개발자라고 할 수 있겠다.


워킹맘으로 일하며 편도 한 시간의 출퇴근이 힘들다고 주변 엄마들에게 조금 투덜 했더니

"요즘 개발자들은 다 재택 하던데? 카카오나 네이버 같은 곳으로 이직해요~"

라는 반응을 들었다.


개발자라고 다 같은 개발자인가?

그럴 리가.


세상에 같은 직업을 가지고 있다고 능력이 같은 건 아니지 않은가.

작가라고 모두 노벨 문학상을 받을 수 없고,

수학자라고 모든 세상의 난제를 증명해 낼 수 없고,

올림픽에 나가서 모든 선수들이 금메달을 딸 수는 없다.



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정말 나는 개발자이긴 한데 개발에 소질이 없다.

대학교부터 시작한 개발 인생 20년이 흘렀지만 늘 IT는 어렵고 난해하고 이해가 잘 안 된다.

나도 참 그게 속상하고, 전공을 잘못 선택했다는 생각을 20년 동안하고 있다.


대학교를 다니던 시절부터 재능이 넘치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의 소질 없음을 깨닫긴 했으나,

취업은 해야겠고 전공은 컴퓨터공학이고 다행히 IT분야는 모든 회사에서 필요한 직종이었다.

그리고 나는 외국계 금융권이라는 이름이 그럴싸한 회사로 입사를 하게 되었다.


요즘의 금융권은 시대에 발맞춰 디지털을 화두로 하여 많은 변화를 시도하고 있지만,

내가 취업했을 당시만 하더라도 학교에서 배운 기본적인 지식으로도 시스템의 개발 업무를 해나가는 것에는 거의 어려움이 없었다. 회사에서 시스템을 처음부터 만들어가는 기회는 전혀 없다시피 했고, 기존에 운영 중인 시스템을 빠르게 파악하고 꼼꼼하게 업무를 처리하는 능력이 더 중요했기에 나는 살아남을 수 있었다.

경력과 직급이 올라갈수록 직접 개발을 하는 일보다는 현업부서와 업무나 일정을 조율하고, 프로젝트를 리드하는 PM(Project Manager)의 역할과 중간 관리자의 역할이 늘어나면서 개발과는 점점 멀어지고 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사실 개발자라고 하긴 애매한 포지션이 되어가고 있다.




개발자들의 사회적 인식과 위치가 올라가고 더불어 몸 값도 같이 상승하고 있는 것은 분명 좋은 일이다. 내가 사회초년생일 시절만 해도 3D 직종이라고 불리는 분야였는데 말이다.


2023년 희망 직업 고등학생 4위, 중학생 5위에 올라간 개발자라니.

다시 한번, 세상에 이런 일이.


2023 희망직업.jpg 2023년 학생 희망 직업 순위 - 출처) 교육부 공식 블로그



만약 내 아이가 개발자가 하고 싶다고 한다면?


반대를 하지는 않을 것 같다. 좋은 직업이고 로봇으로 대체되어 가는 세상 속 비전도 충분히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능력이 좋은 개발자여야 희망이 있지 않을까 싶다.

나처럼 Ctrl+C, Ctrl+V만 반복하는 개발자는 AI가 충분히 대신할 수 있으니까.


나중에 따로 한 편의 글로 쓰고 싶은 주제이긴 한데, 그럼 내 아이에게 코딩을 가르치실 건가요?

흥미가 있다면 해보는 것은 의미가 있겠지만, 학원을 보내서 코딩을 배우는 것은? 글쎄.


챗GPT를 만들 생각보단, 이걸 잘 쓸 줄 아는 사람이 더 미래에 잘 나갈 수 있는 세상이다.

토니 스타크가 아이언맨 슈트를 최초 개발했지만, 이후에는 인공지능 자비스가 만드는 것처럼.

멀지 않은 미래에는 모두가 그렇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아무래도 챗GPT와 친해져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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