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7월부터 개정된 <도로교통법>이 시행되면서 교차로에서의 ‘우회전 일시 정지’가 법적 의무로 강화됐다. 전방 신호가 적색일 경우, 보행자 유무와 관계없이 반드시 일시 정지 후 서행해야 하며, 건널목에 사람이 있으면 통과할 수 없다. 이 개정안은 보행자 사고를 줄이기 위한 정부의 적극적인 조치로 평가받았다.
하지만 의도와 달리, 제도 시행 후 우회전 교통사고는 오히려 증가했다. 경찰청에 따르면 2023년에는 우회전 중 중상해 사고가 1,439건, 사망자는 63명에 달했다. 이는 제도 시행 이전보다 오히려 소폭 증가하였다. 2024년에도 추세는 이어졌고, 1,470건의 중상해, 65명의 사망자가 발생하였다.
교차로에서 길 잃은 운전자들
현장의 가장 큰 문제는 혼란이다. 우회전 시 정지해야 할 타이밍, 어떤 신호를 기준으로 삼아야 하는지 여전히 불분명하다는 목소리가 크다. 우회전 신호등이 없는 대부분의 교차로에서는 운전자가 직진 신호, 횡단보도 신호, 보행자의 위치까지 한꺼번에 판단해야 한다. 멈춰야 하는 순간이 명확하지 않아, “정지선을 지나쳤다”라거나 “멈춘 시간이 짧았다”라는 이유로 신고되기도 한다.
운전자들의 가장 큰 불만은 “이전과 달라진 점을 모르겠다”라는 데 있다. 실제로 대부분의 우회전 사고는 신호 위반이 아닌 보행자 보호 의무 위반으로 판단되는데, 기존에는 이를 인식하지 못한 채 통과하는 경우가 많다. 경찰청과 도로교통공단은 지속적으로 홍보하고 있지만, 운전자 교육의 공백과 현실의 복잡한 신호체계는 여전히 틈이 크다.
일부 지자체는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우회전 전용 신호등’ 도입을 확대하고 있지만, 아직 전국 교차로의 소수에만 설치된 상태다. 이에 따라 운전자는 교차로마다 다른 판단 기준에 노출되고, 자칫 우회전 하나 잘못해서 벌금 또는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 법의 취지는 이해하지만, 현실은 어렵다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법 취지는 명확해도, 현장은 혼란
기존 습관을 버리기는 쉽지 않다. 버리려고 해도 무의식적으로 다시 반복되기 때문이다. 특히 ‘매일 가던 길’, ‘익숙한 교차로’에서 사고가 자주 발생한다는 점은 이를 방증한다. 전문가들은 “보행자가 없겠지, 신호가 아직 파란불이겠지. 여기를 내가 몇 번을 왔다 갔다 해봤는데”라는 무의식적인 통행이 가장 위험하다고 경고한다.
전방 차량이 우회전하자 따라가는 ‘꼬리물기’도 종종 사고로 이어진다. 또한 내비게이션만 보고 운전하는 운전자들 습관도 위험하다. 우회전 규정은 실시간으로 주변 신호를 확인하고 판단해야 하는데, 자동 안내 음성에는 실시간으로 밖에서 일어나는 정보가 포함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를 줄이기 위해 ‘지능형 교차로’나 ‘AI 기반 보행자 인식 시스템’ 도입 필요성도 대두되고 있다. 실제 한 대학 연구팀은 초음파 센서와 카메라를 활용한 ‘우회전 사고 방지 시스템’을 개발 중이며, 신호등과 차량 간 실시간 연동을 통해 보행자 접근을 경고하는 방식도 연구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기술이 전국적으로 적용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며, 현시점에서는 운전자 자신의 자각과 훈련이 유일한 방패가 된다.
이제는 적응해야 할 때
운전자는 법의 변경을 이해하고, 당연히 준수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처럼 현실과 괴리가 큰 상태에선 법의 변경은 불안 속 통행으로 이어질 뿐이다. 사고는 높은 확률로 차량이 아닌 사람의 판단에서 발생한다. 사람의 판단을 혼란스럽게 만들면 더더욱 사고 발생률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제도가 현장에 안착하려면 운전자와 도로 모두의 준비가 필요하다. 일방적인 단속이나 탁상 규정만으로는 실질적인 교통안전을 담보할 수 없다. 지금이야말로 "이 정도 조심하면 됐겠지"라는 익숙함을 버리고, "여기서 더 조심하자"라는 새로운 습관이 필요한 시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