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을 하다 보면 교차로에서 좌회전 신호가 따로 없는 상황을 종종 마주한다. 직진 신호가 켜져 있는데, 좌회전은 할 수 있는 걸까? 많은 운전자들이 헷갈려 하는 부분이다. 특히 해외 운전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더 혼란스럽다. 미국이나 유럽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녹색 신호에서 좌회전이 일반적으로 허용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은 원칙적으로 그렇지 않다.
한국 운전 환경 및 경제적 이유 등으로 인해 생겨난 비보호 좌회전은 특정한 상황에서만 허용되며, 그에 따른 규칙과 위험 요소도 많다. 이를 잘 이해하지 못하면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해외는 허용, 한국은 제한적 허용
미국, 캐나다, 독일 등 대부분의 해외 국가에서는 녹색 신호에서 좌회전이 가능하다. 물론 조건은 있다. 반대편에서 오는 차량이나 횡단하는 보행자가 없을 때라는 전제다. 이는 교통 흐름을 자연스럽게 이어가기 위한 합리적 방식으로 평가된다. 좌회전 전용 신호를 별도로 두지 않아도 통행이 원활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한국은 이런 방식을 채택하지 않을까? 이유는 교통 환경의 차이다. 한국은 도로 폭이 좁고 교차로 밀집도가 높아 좌회전 중 사고 가능성이 크다. 특히 보행자와 이륜차 통행이 많아 위험 요소가 많기 때문에, 좌회전 전용 신호가 기본으로 설정돼 있다. 그러나 교차로마다 좌회전 신호를 따로 만드는 것이 경제적 부담이 되어, 비보호 좌회전이라는, 해외에서는 기본으로 인식되지만 한국에서는 특수한 상황을 만든 것이다. 보통 통행량이 적은 소규모 교차로에서, 직진 신호에 ‘비보호 좌회전’ 표지판이 설치된 경우 비보호 좌회전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신호가 없으니 자유롭게 좌회전해도 된다’는 의미가 아니다.
비보호 좌회전의 핵심은 ‘모든 위험을 감수하고 좌회전한다’는 원칙이다. 반대편 직진 차량, 우회전 차량, 심지어 횡단보도 보행자까지 모두 우선권을 갖는다. 좌회전을 시도하는 운전자가 반드시 그들을 피해야 한다.
사고 시 책임, 왜 이렇게 무거운가?
비보호 좌회전에서 사고가 나면 책임 비율이 매우 무겁다. 통상적으로 9:1에서 시작한다. 즉, 좌회전을 시도한 운전자가 90%의 과실을 부담한다는 뜻이다. 그 이유는 명확하다. 비보호 좌회전은 어디까지나 운전자의 판단과 주의에 의존하기 때문에, 위험을 감수한 쪽이 절대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더 무서운 건 보행자 사고다.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람을 치면, 비보호 좌회전 차량은 단순 과실이 아니라 12대 중과실로 분류된다. 이는 형사처벌 대상이 되며, 보험 처리로도 형사 책임을 피할 수 없다. 벌금이나 징역형까지 이어질 수 있는 심각한 사안이다.
결국 비보호 좌회전 구간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은 두 가지다. 첫째, 맞은편 차량의 움직임을 충분히 살펴야 한다. 반대편에서 오는 차가 직진 신호를 받았을 때는 좌회전 차량보다 절대적으로 우선이다. 속도가 빠른 차량이 예상보다 빨리 다가올 수 있으므로, 조금이라도 위험하다고 느껴지면 좌회전을 시도하지 않는 것이 최선이다. 둘째, 횡단보도에 집중해야 한다. 보행자가 보이지 않더라도 잠시 멈추고 주변을 살펴야 한다. 어린이나 노약자는 예상치 못한 움직임을 보일 수 있어, 완전히 안전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필요하다.
편리함보다 안전이 우선이다
비보호 좌회전은 교통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장치지만, 그만큼 큰 위험이 따른다. 특히 한국처럼 보행자와 차량이 복잡하게 뒤섞이는 환경에서는 더욱 그렇다. 해외에서 흔히 보던 방식이라고 해서 그대로 적용해선 안 된다.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먼저’가 아니라 ‘내가 더 조심’이라는 생각이다. 잠깐의 기다림이 큰 사고를 막는다. 비보호 좌회전 표지를 본다면, 자유가 아닌 책임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작은 방심이 큰 불행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