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전기차를 사면 손해다.” 내년부터 전기차 구매 보조금이 대폭 확대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소비자들 사이에선 구매를 서두르지 말라는 경고음이 커지고 있다. 특히 내연기관차를 전기차로 바꿀 경우 받을 수 있는 ‘내연차 전환 지원금’까지 포함되면 보조금 총액은 평균 400만 원 수준까지 오를 전망이다.
환경부 김성환 장관은 20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내년에는 보조금과 내연차 전환 지원금을 합해 대략 400만 원으로 늘어날 수 있도록 부처 간 협의 중”이라고 밝혔다. 이는 올해 300만 원 수준에 그친 보조금보다 100만 원 이상 더 지원되는 셈이다. 소비자 입장에선 연말 이전에 성급히 전기차를 구매할 경우 오히려 불리한 선택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 같은 정책 변화는 전기차 보급이 예상보다 더딘 현실을 반영한 결과다. 전기차 화재 논란과 배터리 안정성 우려가 겹치면서 수요가 정체된 상황에서, 정부가 다시 보조금 확대 카드를 꺼낸 셈이다.
전기차 보조금은 당초 단계적으로 줄이는 것이 정부 방침이었다. 전기차가 시장에서 자체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논리였다. 실제로 2021년 700만 원이던 전기승용차 보조금은 2022년 600만 원, 2023년 500만 원, 2024년 300만 원으로 급격히 줄어왔다. 그러나 문제는 보조금 감소와 함께 전기차 판매도 동시에 꺾였다는 점이다. 환경부에 따르면 지난해 전기·수소차 신규 보급 대수는 15만 1천 대로, 전년 대비 오히려 줄어드는 ‘역성장’을 기록했다.
여기에 화재 위험성 논란까지 겹치며 전기차에 대한 소비자 불신이 커졌다. 이른바 ‘캐즘(Chasm)’ 현상이 심화된 것이다. 캐즘은 혁신 제품이 대중 시장에 안착하기 전, 일시적으로 수요가 급격히 꺾이는 현상을 말한다. 정부가 보조금을 줄여가던 시기에 바로 이 현상이 현실화되면서, 오히려 정책 기조를 수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결국 내년부터는 내연차 전환 지원금까지 얹어 보조금 총액을 끌어올리는 방향으로 선회한 것이다.
특히 내연기관차를 폐차하고 전기차로 바꾸는 경우 추가 지원이 붙을 가능성이 크다. 단순히 차량 구매를 독려하는 수준을 넘어, 노후 내연차 퇴출과 친환경차 확대라는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달성하려는 계산이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사실상 전기차 수요를 인위적으로 부양하지 않으면 시장이 버티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분석한다.
보조금 증액이 확정될 경우 시장에는 즉각적인 파급력이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전기차 구매를 미뤄온 대기 수요가 한꺼번에 몰리면서 내년 초 전기차 판매량이 급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올해 남은 기간 전기차 판매는 급격히 위축될 가능성이 크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불과 몇 달만 기다리면 최대 100만 원 이상을 절약할 수 있는 만큼, 지금 당장 전기차를 구매할 유인이 크게 줄어들기 때문이다.
전기차 보조금 확대 가능성은 단순히 소비자 선택뿐 아니라 시장 판도에도 변화를 불러올 전망이다. 테슬라, 현대차, 기아 등 주요 제조사들은 연말 프로모션을 강화하지 않으면 판매 부진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일종의 ‘보조금 공백기’가 발생하면서, 업체들이 할인 마케팅으로 대응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소비자들도 점차 ‘대기 전략’을 선택하고 있다. 온라인 자동차 커뮤니티에서는 “올해는 절대 사지 말라”, “내년까지 무조건 버텨야 한다”는 글이 잇따라 올라오고 있다. 실제로 전기차 구매를 앞둔 예비 소비자들이 보조금 정책 변화를 예의주시하면서 계약을 늦추는 분위기다. 전기차 보급 확대를 목표로 한 정부 정책이, 아이러니하게도 당분간 시장을 얼어붙게 만드는 역효과를 낳고 있는 셈이다.
향후 관건은 정부가 보조금 확대를 어느 수준에서 확정하느냐, 그리고 내연차 전환 지원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설계되느냐에 달려 있다. 보조금이 400만 원 선에서 결정된다면 내년 상반기 전기차 시장은 다시 활기를 되찾을 가능성이 크다. 반대로 지원 규모가 줄거나 시행 시기가 늦어질 경우, 소비자들의 신뢰는 다시 흔들릴 수 있다. 지금으로서는 확실한 것 한 가지, “당장 전기차를 사는 건 불리하다”는 사실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