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디가 전기 고성능 왜건 RS6 E-트론 프로젝트를 전격 취소했다. 차세대 A6 E-트론을 기반으로 한 이 모델은 ‘전기차 시대’의 상징처럼 기대를 모았지만, 정작 시장에서는 수요가 없었다.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이 하이브리드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로 전략을 선회하는 이유가 다시 한번 드러난 셈이다.
최근 전세계 자동차 업계는 전기차 판매 둔화라는 공통된 위기를 맞고 있다. 정부 보조금 축소, 충전 인프라 문제, 고비용 배터리 교체 우려 등으로 소비자들이 전기차 구매를 주저하면서, 하이브리드와 EREV(주행거리 연장형 전기차)가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아우디 내부 소식통에 따르면 RS6 E-트론은 시장성 부족을 이유로 프로젝트가 중단됐다. <토프기어>는 “고성능 전기차에 대한 소비자 관심이 기대보다 훨씬 낮았다”고 보도했다. RS6 E-트론은 최대 670km의 주행거리, 강력한 이중 모터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지만 결국 상품화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로써 라인업에서 가장 강력한 전기차는 S6 E-트론으로 남게 되었고, 차세대 RS6는 플러그인 하이브리드로 출시될 예정이다.
이 같은 결정은 단순히 아우디만의 문제가 아니다. 글로벌 EV 수요 자체가 둔화하고 있다. 캐나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5년 2분기 전기차 신규 등록은 전년 대비 무려 39.2% 급감했다.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역시 2.2% 줄었지만, 일반 하이브리드 등록은 60.7% 급증했다. 충전 걱정 없이 내연기관과 전기를 동시에 활용할 수 있는 ‘안전한 선택지’가 소비자에게 매력적으로 다가가고 있는 것이다.
특히 캐나다의 퀘벡주, 브리티시컬럼비아주는 전기차 보조금을 축소하거나 중단하면서 시장이 급격히 위축됐다. 이는 EV 시장이 정부 지원에 크게 의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전기차를 ‘미래의 주력’으로만 밀어붙였던 전략이 흔들리는 순간이다.
현대차그룹의 고급 브랜드 제네시스도 방향을 바꾸고 있다. 2023년부터 미국에서 생산하던 GV70 전동화 모델은 2년 4개월 만에 현지 생산이 중단됐다. 대신 제네시스는 2.5L 가솔린 터보 엔진과 대용량 배터리를 결합한 GV70 EREV를 준비 중이다. 이 모델은 배터리 소진 후 가솔린 엔진이 발전기 역할을 해 최대 900km 이상 주행할 수 있다.
GV70 EREV는 북미 시장을 겨냥한 전략 모델로, EV 세액공제를 받지 못하는 현실을 고려해 하이브리드 혹은 EREV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다. 디자인은 기존 GV70과 유사하지만, 배기구가 삭제된 새로운 범퍼 디자인과 액티브 에어 플랩 등 전동화 전용 요소들이 적용된다. OTA 업데이트와 스트리밍을 지원하는 차세대 소프트웨어 플랫폼 ‘플레오스 OS’도 탑재될 가능성이 높아, 단순한 파워트레인 전환을 넘어 본격적으로 SDV 시대로의 전환을 준비하는 모습이다.
이 전략은 토요타 RAV4 프라임, BMW X3 PHEV 등과의 직접 경쟁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전기차만으로는 시장 대응이 어렵다는 판단 아래, 하이브리드와 EREV의 조합으로 ‘현실적 미래’를 제시하는 셈이다.
전기차 시장이 둔화되고 있다고 해서 EV의 시대가 끝났다고 단정하기는 이르다. 전문가들은 “현재는 숨 고르기 단계”라고 분석한다. 다만 제조사들이 하이브리드나 EREV 같은 과도기적 모델을 강화하는 것은 분명한 흐름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소비자가 원하는 ‘편의성과 비용 효율성’이다. 충전 인프라 확충, 배터리 가격 안정, 보조금 정책의 일관성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EV 보급 속도는 계속 둔화될 것이다. 그 사이 하이브리드가 시장의 공백을 메우며 재조명받는 상황이다.
아우디의 RS6 E-트론 취소, 캐나다의 EV 판매 급감, 제네시스의 GV70 EREV 출시 준비까지 모두 같은 메시지를 던진다. 전기차 시대는 끝난 것이 아니라, 소비자에게 ‘진짜 필요하고 편리한 친환경 차량은 무엇인지’ 다시 질문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