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한 번째 편지
얼마 전 1950년 대의 클래식 협주곡 연주 영상을 우연히 보게 되었습니다.
지휘자와 연주자 모두 남성이었고, 새로운 시선으로 그 시대의 음악과 사회적 구조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여성이 음악가로서 공적 무대에 서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던 걸까요.
일주일 전, 스포티파이에서 우연히 찾은 ‘파니 멘델스존’의 연주 앨범에 매료되었고, 그녀가 제 일주일을 완전히 장악해 버렸습니다.
저는 처음 단순히 멘델스존이라는 이름만 보고 앨범을 클릭했습니다.
첫 곡을 듣자마자, 제가 아는 멘델스존의 선율보다 조금 더 섬세한 감정이 느껴졌습니다.
살펴보니, 펠릭스 멘델스존이 아니라 파니 멘델스존의 작품이었습니다.
파니 멘델스존이 누군지 찾아보니 우리가 아는 펠릭스 멘델스존의 누나였습니다.
파니 멘델스존(1805–1847)은 독일 낭만주의 시대의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로, 동시대에 활동한 남성 작곡가들과 비교해도 손색없는 뛰어난 음악성을 가진 인물이었다고 합니다.
당시 사회적 한계, 특히 여성과 음악가로서의 제약 때문에 충분한 인정과 출판 기회를 얻지 못했다고 하지요.
어린 시절 이미 J.S. 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어곡집」 전체를 암기할 정도로 놀라운 실력을 보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남동생인 펠릭스 멘델스존과 음악적 동반자였다고 하지요.
그녀는 공적 음악 무대에서 자유롭지 못했고, 가족과 사교 모임 중심의 연주를 주로 했다고 합니다.
Heather Schmidt의 연주를 통해 200년 전, 낯선 시대 속에서 음악을 향한 그녀의 열정과 투지가 제 귀와 심장으로 전해지는 듯한 경험을 했습니다.
특히 앨범 첫 곡인 Allegro molto agitato in C minor의 치밀함에 흠뻑 빠져버렸습니다.
곡을 듣는 순간 매료되어 하루 종일 들어도 성에 차지 않았습니다.
빠르고 날카로운 음표 하나하나, 강약의 섬세한 대비, 리듬 속 긴장과 해소의 흐름 모든 게 정교하게 짜여진 선율이 제 안의 무언가를 건드린 겁니다.
앨범 안의 모든 곡이 내면의 단단한 의지와 은밀한 불안이 느껴지기도 하고,
격정과 슬픔 속에서도 꿋꿋하게 견디는 결의를 저에게 전해주는 것 같았습니다.
음악 속에서 자기 목소리를 지키고 삶의 무게를 담아내는 강인함과 아름다움을 보여준 그녀를 향한 존경심과 함께,
클릭 한 번으로 그녀의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지금의 순간에 살고 있는 사실에 감사함을 느낍니다.
사회적 억압 속에서도 460개가 넘는 작품을 남기며 감정과 의지를 그대로 전해준 파니 멘델스존의 음악을 들으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당신께서도 조용하고 굳건하게 타오르는 내면의 불빛을 바라보는 하루가 되시길 바랍니다.
추신> 파니 멘델스존의 피아노 선율에 어떤 분노가 느껴져 제 마음대로 해석해 시를 끄적여 보았습니다.
<그때가 오면> -윰세
고개를 숙였다고 이겼다고 생각하지 마.
무릎을 꿇었다고 굴종시켰다고 오해하지 마.
겉만 볼 줄 아는 당신은
아무것도 모르지.
깊은 심연을 헤매고 다니는
사냥꾼의 눈을 본 적 있어?
그들은 아무 때나 진심을 내보이지 않아.
당신이 가진 걸 부러워하지 않아.
슬퍼도 울지 않아.
지나가는 바람 같은 웃음만 흘려보내지.
시간이 자기 편이 되기를 기다려.
계속 계속 그렇게.
그때가 오면
발치에 엎드린 당신을 내려다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