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하는 당신께

스물두 번째 편지

by 윰세

최근의 제 편지들로 느끼셨겠지만, 저는 요즘 ‘다시 읽기’를 하고 있습니다.

예전에 읽었던 책을 새로운 시선으로 다시 펼치니, 과거의 저는 그 내용을 온전히 감당하기에도 벅찼던 사람이었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글 속에 드러나는 작가의 생각이 조금씩 읽히기 시작하면서, 제 생각도 그만큼 깊어졌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래서인지 독서가 전보다 훨씬 즐거워졌습니다.


어제 다시 꺼내든 책은 로맹 가리의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입니다.

16개의 단편으로 이뤄진 소설은 세상을 바라보는 작가의 관조적인 시선이 담겨 있습니다.

다양한 삶을 살아가는 캐릭터를 바라보는 시선은 분노도 경멸도 아닌 애도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 표제작인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를 읽고 충격에 빠져 다음 에피소드를 읽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던 게 생각납니다.

이야기는 바다에 빠지려는 여성을 구하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행위로써 위로를 건넨 여성이 사육제 축제에서 낯선 남자들에게 억지로 끌려와 폭행을 당한 피해자가 아니라

특이한 성적 취향을 가진 여자라는 사실에 놀라서 ‘아홉 번째 희망의 파도’라는 문장은 제대로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습니다.


다시 읽은 지금은 과거와 현재의 여성이라는 틀에 소비되어 신음하는 한 인간을 바라보는 작가의 애처로운 시선이 보였습니다.

그리고 아홉 번째 희망의 파도는 씁쓸함만 남긴 채 쓸려 가버렸지요.


「몰락」이라는 단편은 그때의 제게 아무런 감흥을 주지 못했습니다.

미국 노조의 신화라고 불리는 마이크가 이탈리아에서 괴상망측한 시멘트 덩어리를 만드는 예술가로서 활동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이탈리아로 망명한 그를 노조의 영웅으로서 다시 추대하려고 찾아온 사람에 의해 결국 죽음을 맞습니다.


「몰락」이라는 단편을 읽으며 한국을 유쾌한 시선으로 그린 애니메이션에 대해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마음의 불편함을 느껴 애니메이션을 끝까지 보지 못했습니다.

한국인 피가 섞인 캐나다 감독의 시선으로 한국 문화에 대한 깊은 존중과 달콤한 애정을 담아 만든 작품의 어떤 면이 절 불편하게 했는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제가 느낀 불편함은 「몰락」에서 살아 있는 사람을 시멘트에 넣어 굳힌 조각을 바라보는 걸 좋아하던 마이크를 향한 불쾌함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애니메이션 작품을 볼 때 살아 있는 사람이 어떤 자세로 굳어버린 조각처럼, 움직일 수 없는 상태로 남겨진 우스꽝스러운 형상을 바라보는 기분이었던 겁니다.


마이크는 한 남자를 시멘트로 죽인 뒤 벽난로 위에 올려놓고 오랜 시간 즐겨보았고 박물관에까지 전시됩니다.

작가는 충분한 반성과 애도 없이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방패를 삼아 숨는 사람들에 대한 불편함을 말하고 있는 듯했습니다.


불편함을 곱씹어 보니, 애니메이션 작품 자체가 불편한 게 아니라 애니메이션이 소비되는 방식이 불편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제작된 작품이 성인문화 속에서도 그대로 소비되고,

고통이 제거된 한국의 이미지가 세계 속에 박제되는 느낌이 싫었던 것 같습니다.


재미있으면 받아들이고, 무거워지면 밀어내는 대중문화의 소비 방식 속에서

깊은 한이 서려 해학으로 승화된 한국 문화가 인스턴트처럼 소모되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겠지요.


제가 느낀 불편함의 진짜 감정은,

고통을 숨기고 무엇이든 웃어넘기는 긍정이 옳다고 믿었던 과거의 저를 향한 반항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충분히 울지 않은 이야기가 먼저 이해되고 해석되어 소비되는 게 싫다는 제 안의 목소리를 이제야 겨우 듣게 된 겁니다.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는다>에서 작가가 저에게 묻는 듯합니다.

웃음이 끝난 자리에서 억지로 또 다른 웃음을 찾지 않고,

설명이 멈춘 자리에서 성급히 정의를 요구하지 않고,

서로의 침묵을 헤아리고,

이해 가능한 단어로 규정하기 전에 충분한 애도가 가능할 때,

비로소 세계를 이해하는 인간이 되는 게 아니겠냐고.


깊은 질문을 던져준 로맹 가리에게 감사를 표하며 오늘도 제가 간직한 책들을 훑어보고 있습니다.

다 읽은 책을 처분하지 못한 이유는 작가가 제게 던진 질문에 대한 답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제 안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답을 찾아보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당신께서는 떠오르는 질문에 어떤 답을 찾았는지 궁금합니다.

각자가 다른 듯, 질문의 답 또한 다르겠지요.

그러니 당신께서 저만의 답을 찾을 수 있게 질문을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추신> 소설 속에서 파도에 휩쓸리는 죽은 새를 떠올리다가 시를 써보았습니다.


<죽은 새> -윰세


절망은 투명한 벽으로 날아들어

머리를 부딪치고 피를 흘리는 연약한 새가 된다.


너는 발치에서 죽어가는 새를

무감한 눈으로 바라보고,

나는 축 늘어진 그 몸을 주워 든다.


작고 보드라운 온기가

얼어붙은 손을 녹인다.


날카로운 부리가

내 살을 파고들고


숨을 거둔 새의 피가

내 상처로 스며든다.


그리하여 나는

잠시,

죽은 새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