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 여섯번째 편지
당신께서는 늘 남은 것을 맡는 자리에 계셨지요.
누군가는 지나가며 흘린 일을,
누군가는 미루다 남긴 몫을,
누군가는 애초에 자신의 몫이 아니라고 여긴 책임을
말없이 정리해 오셨습니다.
그 일들은 대개 이름이 붙지 않았습니다.
하지 않으면 이상한 사람이 되지만,
해도 고맙다는 말은 남지 않는 일들이었습니다.
"왜 내가 해야 하지?"
라는 질문조차 마음에 오래 남아 있지 않았던 건
포기하는 편이 덜 아팠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릅니다.
당신이 잠시 자리를 비웠을 때,
그 자리에 남은 것은 공백이 아니라 혼란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혼란조차 오래 가지는 않았지요.
곧 새로운 누군가가
아주 자연스럽게 그 자리를 맡았습니다.
마치 처음부터 비어 있었던 것처럼요.
역할을 떠맡는 사람들은
대개 스스로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법부터 배웁니다.
갈등을 줄이기 위해,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무언가가 잘 굴러가기 위해,
자신의 피로와 감정을 뒤로 미룹니다.
그렇게 오래 살다 보면
버티는 상태가 성격처럼 굳어버리기도 합니다.
문득 한 소설 속 인물이 떠오릅니다.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에 나오는 '뫼르소'입니다.
그는 어떤 역할도 자청하지 않습니다.
슬픔을 증명하지도, 관계를 설명하지도 않습니다.
그저 그 자리에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그는 종종 차갑고 비인간적이라 오해받지만,
어쩌면 그는 아무것도 떠안지 않은 채 존재하는 사람이었는지도 모릅니다.
또 다른 인물이 떠오릅니다.
윌리엄 포크너의 <내가 죽어 누워 있을 때> 속의 '애디 번드런'입니다.
그녀는 죽어가며 아무것도 정리해주지 않습니다.
남은 사람들을 배려하지도, 감정을 설명하지도 않습니다.
그 침묵은 감내가 아니라 거부에 가깝습니다.
그녀는 끝내 말하지 않음으로써 ‘어머니’라는 역할에서 벗어납니다.
당신께서는 뫼르소처럼 물러나지도 않았고,
애디처럼 거부하지도 않으셨습니다.
그 대신
누군가 해야 했던 일들을
묵묵히 맡아 오셨지요.
오늘만큼은
정리하지 않아도 되고,
채우지 않아도 되는 하루.
뫼르소처럼 그저 존재해도 괜찮은 날,
애디 번드런처럼 아무것도 남기지 않아도 되는 날이
당신께 허락되기를 바랍니다.
추신> 아이를 키우며 느꼈던 감정을 시로 써놓은 걸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제 시를 읽으며 한 번 웃으셨으면 합니다.
<떠나보내야 하는 것들> -윰세
내 시간 뚝뚝 떼어
너에게 주었지
꿀꺽꿀꺽 삼키던 너는
방글방글 웃네
내 꿈 탁탁 썰어
너에게 비췄지
오독오독 씹던 너는
옹알옹알 하네
내 마음 쿵쿵 다져
너에게 뿌렸지
꼬물꼬물 줍던 너는
폴짝폴짝 안기네
내 시선이 점점
위로 향했지
데면데면 바라보던 너는
꾸물꾸물 멀어지네
내 슬픔 꽉꽉 뭉쳐
손에 쥐었지
더듬더듬 대던 나는
너털너털 손을 휘젓네
내 미련 꾹꾹 접어
발로 밟았지
들썩들썩 흔들리던 나는
휘청휘청 중심 잡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