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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유경 Jul 13. 2023

길벗이 많은 인생이모작, 나도 하고프다

[김유경의 책씻이] 내 노년기 롤 모델을 안긴 <언어의 무게>

“선생님, 귀국을 환영합니다.”     


장편소설 <언어의 무게>를 여닫는 첫 문장이자 마지막 문장이다. 두 문장 사이 두께는 주인공 사이먼 커티스 레이랜드가 번역자에서 작가로 변화하는 통과의례를 선보이느라 꽤 두껍다. 수개월 후 오진으로 밝혀진 ‘다형성 교모세포종’ 진단 이후 삶의 태깔을 바꾸는 노년기 인생이모작이다. 자기 목소리를 캐려 언어의 낯선 맥을 더듬는 간절함이 날 끌어당긴다.     

 

레이랜드는 지중해 주변의 언어들을 거의 다 듣고 말하고 쓸 수 있는 다언어기능보유자로서 번역을 들락날락하며 타인의 목소리 전달에 열중하던 성공한 번역자다. 그는 발작적 발화 장애와 시한부 인생 체험 후 새롭게 삶을 응시하다가 자기 자신에게 더 가깝게 머무르는 현재적 순간, 즉 “시정詩情” 또는 “시적 경험”이 아쉬웠음을 깨닫는다.   

  

“시정”을 위한 그의 “사고 실험”은 자기만의 “원래 언어”로 이야기를 짓는, 달리 말하면, 자기 확인용 인물 창조로 이어진다. 죽은 아내 리비아를 향한 편지글에 자신의 현재성을 낱낱이 기록하기를 병행하면서. 그중 언어 소통 장애의 순간을 묘사한 대목에서 나는 눈시울을 적셨다. 치매로 인해 일상 언어 능력을 거의 잃은 엄마의 “난 바보야” 속내가 얼추 짚어졌으니까.

           


“특정한 단어가 기억나지 않는 게 아니라 모든 단어를 잃어버린 것이고, 기억의 실패가 아니라 사고와 정신이 전체적으로 고장난 거니까. 나는 포괄적인 의미에서 생각하는 존재로서의 발판을 상실한 거야. 그래도 어쩌면 질식하지 않으려고 말을 계속할 지도 모르지. 아마 내가 말도 안 되는 소리에 휩쓸려 가는 걸 내 귀로 들을 지도 모르고, 그걸 제지하지는 못하면서 그 상황을 인식할 만큼 정신은 깨어 있을 수도 있어. 아니 더 깊이 추락할 지도 몰라. 텅 빈 헛소리를 하면서 의미와 이해의 상실을 더는 느끼지 못하는 경우야.” 103쪽

      

“내가 어떻게 오늘날의 내가 됐는지 알고 싶어. 표면이나 외부 상황에 따른 게 아니라 내면에서 말이야. 어떤 도로를 걸었는지가 아니라 어떤 생각과 감정을 따랐는지가 중요해. 어떤 경험이 어떻게 다른 경험이 되고, 또 다른 하나의 경험이 됐는지 느끼고 싶어. 우리는 자신이 어떻게 변하는지 제대로 느끼지 못하지만 나중에 되돌아보면 다른 사람이 되어 있기도 하고 또 그렇지 않기도 하지.” 269쪽   


       

레이랜드가 일구는 새 삶은, 낯선 경험을 향해 열린 자기 확장성을 지니면서 타인에 대한 배려를 중시하는, 자리이타적 목소리로 꾸려진다. 레이먼드가 길벗으로 삼은 친구들의 특성과 그들이 나누는 도움들이 좋은 예다. 자기 밖 세계에 치중하던 청장년기를 겪은 후에야 지닐 법한 흔들림이 거의 없는 노년기 내면세계의 미덕을 엿볼 수 있다. 

    

우발적으로 연적을 죽여 죄수였던 러시아 번역자 안드레이 쿠츠민, 불법체류자 등 사회적 약자를 위해 처방전을 내주어 약사 면허증을 잃은 케네스 버크, 예의를 모르는 고객에게 음식을 쏟은 식당 종업원 패트 킬로이, 출판업자 숀 등 친구들의 고유한 목소리를 존중하면서 쌓는 우정과 신뢰로써 레이랜드는 사회적 통념에서 자유로운 인간적 삶을 다진다.

      

작가 파스칼 메르시어는 법을 전공한 아들 시드니의 “법률가들의 검은 카스트” 비판과 의사 면허 시험을 본 딸 소피아가 내던진 “의사들의 하얀 카스트” 등을 통해 해결해야 할 사회적 난제들에 관한 인간주의적 관점도 제시한다. 그는 영화로도 널리 알려진 2004년 장편 <리스본행 야간열차>에서도 사회 참여적 시선을 드러낸 바 있다. 

     

레이랜드는 자기 이야기의 주인공 루이 퐁텐과 함께 죽은 삼촌 워런이 유산으로 남긴 영국 런던의 집과 아내와의 추억이 깃든 이탈리아 트리에스테의 집을 오가는 삶에 안착한다. 언제든 만나고픈 길벗들이 두 곳에 있어서다. 두 곳 모두 심리적 귀국길로 만든 길벗들과 삶을 확충하며 정신적 물질적 자산을 소신껏 아낌없이 나누는 레이랜드를 내 노년기 롤 모델로 삼고 싶다.     

  

늦었지만, 지난달 27일 별세한 작가(본명 페터 비에리)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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