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경의 책씻이] 여성 자영업자의 목표, <마은의 가게>
이서수 장편소설 <마은의 가게>에는 목소리 셋이 있다. 마은과 보영과 삼색이. 자영업자 마은과 회사원 보영은 30대 여성 노동자이고, 삼색이는 길고양이다. 삼색이 목소리는 에필로그에만 나타나기에, 이야기는 두 여성 노동자 나름으로 앵글을 맞춘 세상살이를 번갈아 보여주며 이어진다. 둘에게 닥친 사회적 찝쩍거림이나 불이익이 주요 사건들인데, 마은과 보영의 목소리가 크게 높아지거나 튀지 않게 하면서 내게 뜻밖의 읽을 맛을 안긴다.
작가는 주변에 여전히 잔재하는 가부장적 사회 현상들을 들추며 통념에 익숙한 반사 반응과 하소연을 품은 두 자아의 거세지는 않더라도 쉽게 순응하거나 포기하지 않는 고집스런 행태를 줄거리에 고명처럼 얹어 소설세계를 확충한다. 최근 트렌드 중 하나인 ‘아보하’(아주 보통의 하루)를 움켜쥐려는 듯한 마은과 보영이, 서로에게서 공감과 위로를 받으면서도 따로국밥처럼 각자도생의 해법을 찾게 하면서.
“하는 일은 달라도 노동을 하는 우리의 마음엔 비슷한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221쪽)
안팎으로 끈끈한 연대의식으로까지 발전하지 못하는 그 유사성은 ‘원포인트업’(자기지향성의 느린 진화)에 해당할 수 있다. 그것은 마은 모녀 사이에서도, 마은 엄마와 마은 이모 사이에서도, 마은과 주변 여성자영업자들 사이에서도, 그리고 마은 엄마와 주변 자영업자들 사이에서도 발견된다. 상대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있고 동병상련을 느끼지만, 서로를 속속들이 잘 알고 있어서 결코 함께 할 수는 없다거나, 저마다의 사정 때문에 해법이 다르다는 이유에서다.
“거기도 있지? 여자 혼자 장사한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이야. 근데 나는 이런 말 정말 하기 싫어. 여자든 남자든 장사는 다 힘들거든. 그래도…… 여자라서 당하는 일이 있지. 혼자 있으면 괜히 도와주겠다고 접근하는 놈이 있어. 그런 놈을 제일 조심해야 돼.”(230쪽)
그렇게 상호작용을 방해하는 까칠한 공감은 때로 상대방이 어떻게 생각할까를 따지기에 앞서 자기중심적으로 일을 저지르는 가해성으로 작용한다. 마은의 이모가 마은 모르게 마은을 딥페이크한 학원생들을 찾아가 응징했듯, 그리고 마은 엄마가 마은 모르게 마은의 남자 친구를 만나 줄행랑치게 했듯이. 또 그것은 마은이 물과 먹이를 준다는 명분으로 삼색이에게 일방적으로 다가가 만지려 해서 삼색이를 도망치게 한 행위와 같다
“그는 자유롭게 이 거리를 걷고 싶을 뿐이다. 그 누구의 손에도 붙잡히지 않고. 그 누구에게도 기대를 심어주지 않고서. 그저 자유롭게 걷고 내달리고 잠들고 싶을 뿐이다. 저 공마은처럼. 바로 당신처럼.” (270쪽, 에필로그 마지막 문단)
걸리적거릴 게 없을 것 같은 길고양이마저 사실상 자유롭지 않다는 저 삼색이의 바람은, 인간과 마찬가지로 일체의 관계에서 놓여나야 가능하다. ‘아보하’의 넘사벽(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인 셈이다. 그렇게 볼 때, <마은의 가게>는, ‘마은 할머니의 가게’가 될 때까지 가게를 지키고픈 여성 자영업자 마은의 목표를 부각시키면서도, 그와 관련된 성차별이나 짧은 자영업 평균 수명을 위한 사랑과 연대의 육수 만들기에는 아쉬움을 남긴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