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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군기자가 달려든 내전, 그곳에는 응원봉 광장이 없다

[김유경의 영화만평] 살려달라는 대통령, <시빌 워: 분열의 시대>

by 김유경

역사적 순간에 순발력을 발휘한 시민DNA가 지금 대한민국에는 있다. 계엄령 선포를 넘겨짚는 야당의 경고가 있었지만, 막상 12·3 계엄을 듣게 된 시민들 대부분은 어리둥절했다. 그러나 상식이 일상의 토대가 되길 바라는 시민DNA는 5·18 등 과거 역사를 떠올리며 국회의사당으로 내달렸다. 조건이나 약속 없는 그 움직임이 있었기에 신속한 계엄해제 의결이 가능했다. K팝이 울려 퍼지는 응원봉 광장을 세계에 선보인 것도 그때다. 영화 <시빌 워; 분열의 시대>의 내란을 이 땅의 탄핵 정국에 오버랩할 수 없는 이유다.


워싱턴dc로 향하는 종군기자.jpg


영화는 대통령 인터뷰를 위해 워싱턴D.C.로 향하는 종군기자 네 명의 동선을 따른다. 그 바닥에서 유명한 ‘리(커스틴 던스트)’와 동행자 ‘조엘(와그너 모라)’, 그리고 도중에 두 사람과 합류한 노땅 ‘새미(스티븐 핸더슨)’와 초짜 ‘제시(케일리 스페니)’가 그들이다. 그 여정에 그로테스크한 국가 분열 장면들을 몇 에피소드로 다채롭게 연출한 감독은 제시의 경악스런 현타와 새미의 죽음을 통과의례 삼은 저널리즘에 대해서도 앵글을 맞춘다. 리의 주검을 뒤로 하고, 대통령 사살을 기념하는 병사들을 찍은 제시의 사진을 엔딩 장면으로 하면서.


저널리즘은 사실 전달로써 역사를 기록할 때 빛이 난다. 1차 체포영장의 불발로 인해 ‘내란성 불면증’이 심해지고, 포털 사이트 검색 충동이 잦아졌다. 그나마 영화에서는 현장에 충실한 사진을 찍으려는 종군기자들이라도 있었지만, 현실에서는 낚시성 제목과 교묘하게 편집된 사진이나 영상을 덧댄 레거시 미디어들의 기사가 여전히 많다. 다스려야 할 구조적 문제다. 응원봉 광장의 발언들은 그 문제를 폭넓게 성찰한다는 점에서 이전의 촛불 광장보다 업그레이드된 민주화 지향이다.


2차 체포영장이 발부된 2025년 1월 현재 대한민국의 탄핵 정국은 합법적 주장과 불법적 가짜뉴스가 기세 싸움하는 중이다. 예를 들면, 한쪽은 한파를 무릅쓰고 탄핵과 체포를 외치는 ‘한남동의 키세스 시위대’이고, 다른 쪽은 ‘Stop the Steal’(부정선거 중단)을 외치며 성조기를 든 ‘태극기 부대’다. 특히 ‘Stop the Steal’은 미국에 곧 들어설 트럼프 정부에 친숙한 구호라는 점에서 국격을 낮추는 외세 의존성이다. 극렬하게 다투다가도 국외 정치 문제에는 보수와 진보 모두 자국의 이익을 우선하는 선진국의 정치 태세가 아쉽다.


영화에서 “어느 쪽 미국인?”을 묻는 극단적 분열 장면은, 암암리에 ‘내 편이 아니면 적’이라는 폭력성에 노출된 대한민국의 응원봉 광장을 떠올리게 한다. 중국인의 응원봉이라는 가짜뉴스 출현과 그 뒤를 잇는 내란 쿠데타를 옹호하는 듯한 여론조사 결과 발표 등이 그것이다. 마치 내전 선동 신호 같다. 그러나 대다수 깨어 있는 시민들은 얍삽한 정치 엘리트들에게 농락당하는 개나 돼지가 아니다. 자발적·창의적·평화적으로 연대했다가 깔끔한 뒤처리까지 마치고 흩어지는 응원봉 시위대는 <시빌 워> 같은 내전에 휘말리지 않는다.


리와 제시.jpg


지금 나를 압도하는 것은, 세계에 만연한 극우적 분열을 연출한 영화보다, 2차 체포영장 집행을 앞둔 대한민국의 긴장감이다. 최근 한남동 관저를 촬영해 주목 받은 1인 PD의 ‘고양이뉴스’ 개 산책과 ‘오마이TV’가 포착한 ‘윤석열 추정’ 남성 등의 보도는, 레거시 미디어들이 손 놓고 있는, 영화 속 열혈 제시와 관록 붙은 리의 역할이라 여긴다. 나는 비폭력을 선호한다. 영화 장면처럼 대통령이 사살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러나 체포되는 대통령에게 달려가 인터뷰하려는 기자가 있기를 기대한다. 그의 첫말이 “살려주세요”는 아니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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