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경의 영화만평] 오나가나 주인 정신이 필요하다, <검은 수녀들>
지난 2월4일 내란혐의 국조특위 청문회에 여성 무속인이 출석했다. 이런 판국에 악령에 점령당한 부마자를 다룬 오컬트 영화 <검은 수녀들>이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킬 수는 없다. 배우 송혜교의 유니아 수녀 캐릭터가 궁금해서 객석에 앉은 나는, 사실 신비함에 대해 관심 많은 오컬트적 인간이랄 수도 있다. 그리스·로마 신화를 외우다시피 했고, 연금술과 점성술을 탐색했고, 가끔 타로카드로 운세를 보고, 전생과 환생이란 단어 사용이 어색하지 않으니까.
낡은 인용이지만, 공자는 ‘귀신을 공경하되 멀리하라(敬鬼神而遠之)’고 했다. 일부러 귀신을 멀리하지도 말고, 귀신에게 미혹되지도 말고 제 삶의 주인이 되어야 지혜롭다는 얘기다. 관람 중에 희준(문우진 분)의 발광을 대낮에 공중파를 타고 난무하는 상식 밖 위헌적 언행들에다 오버랩하며 저 공자 말씀을 곱씹었다. 귀신을 어떻게 대하는가의 주인(맑은) 정신 여부가 대통령 선출에 따르는 민주공화국의 운명을 결정한다는 걸 절감해서다.
지금 여기에서 굼뜨게 행해지듯 영화에서도 절차적 정당성(공정성이 아니다)을 밟는다. 희준이 부마자라고 주장하는 유니아 수녀와 병증이니까 치료하면 낫는다는 정신의학과 전문의 바오로 신부(이진욱 분)의 대결을 부각시키면서. 그러나 아무리 애써도 유니아 수녀는 구마 사제가 될 수 없다. 교회법 제1204조의 ‘세례 받은 남자만이 서품을 유효하게 받는다.’에 걸려서다. 뚜렷한 남녀차별이지만, 영화 속에서 그걸 문제 삼는 캐릭터는 없다.
그러나 ‘무조건 살린다’에 목숨 건 유니아 수녀는 미카엘라 수녀(전여빈 분)의 조력으로 금지된 길을 걸어간다. 바오로 신부의 수제자인 미카엘라 수녀는 희준이 자신처럼 염소 형상의 귀태(鬼胎)임을 알게 된 후 유니아 수녀와 끝까지 동행한다. 그 길에 자의 반 타의 반 합류하는 무당 효원(김국희 분)과 효원의 제자 애동(신재휘 분)은 구마의식이 카톨릭 교회만의 전유물이 아님을 암시한다. 한국의 오컬트가 잡식성임을 드러내면서.
솔직히 영화의 감칠맛은 강하지 않다. 특히, 인과를 위해 끼워 맞춘 듯한 연출이 거슬려서다. 예를 들면, 유니아 수녀의 예고된 죽음을 암시하는 병원 장면과 무당의 말이 그렇고, 바오로 신부가 유니아 수녀에게 의식을 선선히 맡기게 하는 내력 밝힘도 그렇다. 그런데도 유니아 수녀의 거친 캐릭터와 미카엘라 수녀의 뜻밖의 언행(사탕 빨기와 타로점) 등은 잔재미를 안기며 오컬트의 클리셰 같은 음산함에 변곡점이 된다. 물론 문우진의 열연도 볼만하다.
나는 지금도 12·3계엄 때 국회 앞으로 달려간 국민들이 고맙다. 그 깨어있는 민주시민의 힘이 민주공화국을 건재하게 하듯, 그런 맑은 정신은 결코 부마자가 될 수 없다. 그런 관점에서도 정치와 종교는 분리할 수 없다. 인간의 사회 활동이 정치의 그물망에서 행해지고, 인간의 유한성이 종교적 속성을 배태하니까. 그렇기에 더더욱 민주공화정과 상식적인 종교 활동은, ‘나’를 살리면서도 ‘너’를 존중하는 ‘우리’이기를 희망한다는 점에서 서로 통한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