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경의 오늘] 일상을 재부팅하다
일어설 수가 없다. 세상이 팽이처럼 돈다. 화장실 갈 일이 엄두가 나지 않는다. 기듯 변기에 앉았다가 바닥에 주저앉는다. 토할 것 같다. 구역질로 꺼억 대며 끌어낸 건 위액뿐이다. 입가를 닦는데 흘러내리는 긴 머리가 거추장스럽다. 짧게 잘라야지. 그 생각도 잠시 어지럼증에 휘둘려 침대로 향한다. 순간 절감한다. 몸에 난 여러 구멍 때문에 참 구차스럽구나. 누워 있다 목을 축이는 것도 기를 써야 할 만큼 힘들다.
영화 <화장>이 떠오른다{내가 쓴 관련 기사: 욕망을 화장(火葬)하면서 인생을 화장(化粧)한다 http://star.ohmynews.com/NWS_Web/OhmyStar/at_pg.aspx?CNTN_CD=A0002353320}.
서로에게 누더기 꼴인 부부 사이에 남편의 대소변 시중을 받아야 하는 아내의 심정이. 옆에 누가 없어도, 정신 놓기 직전 상태에서 용쓰는 일은 필사적인 자존 행위다. 간신히 침대에 몸을 눕히는데 머리 옆에서 폰이 울린다. 받는 건 언감생심이다. 고독사가 남 일이 아니다.
전조가 있긴 했다. 점심 무렵 뒷머리가 둔중함을 알아챘다. 틈틈이 숨고르기를 한다고 했는데도 몸에 무리가 따른 거다. 그러나 두 친구가 집으로 오는 중이었다. 외출이 어려운 나를 배려해 먼 길을 달려오는 공들인 만남이다. 얼마 후 반색하며 맞았고, 땡볕 아래 몇 미터를 걸어간 밥집에서 맛나게 점심을 먹었다. 집에서 벌인 얘기판 중 남편과 동시에 폐종양이 생기는 바람에 불화가 해소됐다는 근황 보고에 깔깔댔다.
그 속에서 난 몸을 잊었다. 몸의 신호가 부지불식간에 차단된 거다. 친구들이 떠나고, 낮에 못한 108배를 하고, 책상에 앉는데 어지럼증이 쓰나미처럼 밀려온다. 비몽사몽간에 소리가 들린다. 과일조차 구분 못하게 된 엄마가 나름 씩씩하게 오간다. 비상사태에 놀라 성한 모성이 작동한 거다. 가까스로 부엌을 향하니 엄마는 압력밥솥 다루는 걸 까먹어 반찬을 꺼내놓고도 밥을 못 먹고 있다. 벌써 다음 날 대낮인 건데.
배고프지 않다는 엄마 말에 눈물이 터진다. 자식들 때문에 험한 순간들을 견뎠다는 부모들의 심정에 동병상련하게 될 줄이야. 그런데 몸이 도통 내 맘대로 되지 않는다. 몸은 내가 아닌 거다. 누구나의 이미지에는 자연스레 몸이 포함되는데... 버젓한 삶을 위해 애쓴 시간들이 대개 허상들을 향한 것이었는가. 좌불안석하는 엄마를 생각해 당근즙을 삼켰다가 고생길로 내닫는다.
이틀 내리 비운 속에 구운 쑥소금을 생수와 함께 넣는다. 낼 아침에도 못 일어날까 걱정하며 자다 깨다를 반복한다. 어둑어둑 무렵 따뜻한 호박죽을 입에 댄다. 나흘째가 되는 아침, 충전된 듯 몸이 재부팅된다. 나는 일상을 재부팅한다. 깡마른 몸에 과부하가 걸리지 않도록 마음부터 조율하며. 스스로 움직일 수 있고, 해야 할 바를 할 수 있으니 당장은 더 바랄 게 없다. 누워 작심했던 유서도 써 둬야지.
암튼 나는 다시 살아났다. 천천히 가지와 콩나물을 무치고, 호박찌게를 끓이고, 쌈장을 꺼낸다. 식탁 맞은편 컴으로 뉴스도 훑는다. 일본군 피해자 위안부는 없었다며 ‘반일 종족주의’를 주장한 이영훈(이승만학당 교장) 관련 기사가 목에 걸린 가시 같다. 아베에게 사죄한다는 엄마부대 주옥순과 막상막하다. 민심을 어지럽히는 가짜뉴스의 온상이다. 어떤 아픔으로 재부팅돼야 저들은 맑아질까.
낼은 우선 영화 <김복동>을 봐야겠다. 상영시간 배정이 인색한 걸 보아 극장에선 곧 못 볼 수도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