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경의 오늘] 그림자 노동과 광풍을 응시하다
나갈 때면 1회용 비닐장갑을 두어 장 챙긴다. 다이소에 가든 슈퍼에 가든 손수 바코드를 입력시켜야 하니 그렇다. 자동출입문도 맨손가락으로 콕 찌르는 건 꺼림칙해서다. 판매대를 지키던 판매원을 대신하거나 셀프 주유기 앞에서 손수 계산하고 눌러야 하는 것도 그렇다. 늘어나는 이런저런 그림자 노동에 더해 웬만한 출입처마다 체온을 재고 방명록 기재를 해야 하니까 외피 감쌀 일이 많아져서다.
임금 없는 일을 ‘그림자 노동’이라 한다. 1981년 오스트리아의 철학자이자 사회비평가인 이반 일리치가 ‘그림자 노동 Shadow Work’에서 처음 쓴 말이다. 온라인 택배 신청에 많은 품을 들여야 하는 요즘 실감나는 용어다. 코로나19 위기가 지속되거나, 그러지 않길 바라지만, 기후 변화 탓에 예상 못한 또 다른 재난이 발생하면, 사방팔방에서 낯선 그림자 노동을 요구할 게다. 유한계층도 피해가긴 어려우리라.
그건 문화혁명과 진배없는 생활방식의 변화를 요구할 게다. 비대면활동이 강화되자 헐거워진 인간관계는 이미 우울증 호소를 일으키고, 사회경제적 불안이 가세하면서 소소한 세속적 재미들이 줄어들고 있다. 갈수록 팍팍해지는 일상에서 잡히지 않은 의사들의 집단 휴진 잔불이나 가짜뉴스 횡행은 사람들의 분노조절을 약화시킬 수 있다. 안치환의 노랫말 “누가 뭐래도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가 울려 퍼지던 세상이 그립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운 건 사랑 때문이다. 사랑을 제일로 삼은 사랑제일교회와 보수단체들이 팬데믹 상황에서 방역당국의 역학조사 추적을 방해하며 8・15광화문집회를 고집한 사건은 일회성으로 끝난 게 아니다. 정은경 중앙방역대책본부장을 살인죄로 고발하기도 한 보수단체들은 개천절을 벼르고 있다. 오는 12일부터 초대 질병관리청장으로 활동할 정 본부장을 시민들이 응원하는 건 남을 배려하는 사랑으로 연대하는 삶을 위함이리라.
대한민국은 팬데믹 와중에 전광훈과 최대집의 욕망을 닮은 가짜뉴스 광풍에 휩싸여 있다. 그 광풍의 반과학적 반지성적 태도를 부추기는 건 수면 아래 존재하는 정치 집단들이다. 물론 그 견인차는 프레임을 기획해 갈등 구도를 즐겨 잡는 언론이다. 건전한 시민의식을 고려한 언론의 상식적 행태가 아쉽다. 과거 나치즘의 득세도 반지성주의를 폭발시킨 대중주의(포퓰리즘) 작품이다. 그걸 반성하느라 독일은 여지껏 호된 값을 치르고 있다.
상식은 시민의 덕성에 기초한다. 대중주의에 낚이지 않는 덕성의 뿌리는 자기다움이다. 신라젠 사건에서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놓여날 수 있었던 것도 회유나 협박에 넘어가지 않은 증인의 자기다움 때문이다. 나를 사랑할 수 있어야 남도 사랑할 수 있다. 고유성 존중에 젖줄 댄 사랑은 타인을 배려하는 덕성으로 다져지며 사회적 공감대를 갖춘 상식적 사회를 지향한다.
그런 관점에서 자기다움에 충실한 방탄소년단(BTS)의 쾌거가 반갑다. 미국 빌보드 메인 싱글 차트인 ‘핫100’ 정상을 2주 연속 지킨 BTS의 <Dynamite>를 위로 삼아 들으며 모처럼 충전한다. 팬데믹 현실에 앗긴 평범하고 행복한 일상을 떠올리게 하는 레트로의 팀워크가 빛난다. 자기 안의 불꽃들로 밤하늘을 밝히는 BTS의 다이너마이트처럼 지금 여기의 광풍을 몰아낼 덕성의 확충을 꿈꾼다. 간절하게 내 시민의식부터 일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