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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유경 Nov 22. 2020

얜 얼마나 살 수 있을까

[김유경의 오늘] 낙엽을 쓸다가

그저께 비바람이 세찼다. 목련나뭇잎들이, 라일락나뭇잎들이 우수수 떨어졌다. 어제 50리터 일반쓰레기 봉투에 나뭇잎들을 쓸어 담았다. 그러다 보게 된 연둣빛 생명체. 지하실 창틀에 붙어 있는. 오늘 마당을 쓸다 또 본다.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먹은 것도 없을 텐데. 얜 얼마나 살 수 있을까. 생명이 떠나면 창에서 툭 떨어질까. 그 껍데기를 향해 난 차마 비질하지 못 하리라.   



문득 기억난다. 한 달 전에 상록 관목에 있던 걸. 보호색이 감쪽같아 못 볼 뻔했던 걸. 생기 가득했던 걸. 반가움에 가만히 물러났던 걸. 갑자기 참았던 눈물이 솟는다. 보름 전에 신문 부고란에서 그의 소식을 보고 멍했는데. 며칠을 ‘안녕히 잘 가시게’ 중얼거리기만 했는데. 울다가 쓸어 놓은 낙엽무더기를 본다. 낙엽은 가을 풍경으로 자연스레 받아들이면서, 그가 돌아간 건 왜 슬퍼하는가. 돌연사라 해도.  


    

엄마가 중얼거린다. 날 모르겠어. 엄마는 자기 이름도 모를 때가 많다. 세수할 때마다 이거면 되냐고 손에 챙긴 걸 내보인다. 일상 대화도 어렵다. 머릿속엔 들어 있는데 입으로 나오지는 않는 단어들이 내 입을 통해 나와도 빨리 알아듣지 못한다. 섬망증세도 있어 이미 내가 알던 엄마가 아니다. 지레 주눅 든 엄마에게 나는 갈수록 고분고분해진다. 속울음을 삼키며 세끼나마 정성껏 차린다.   

  

온몸이 진동하듯 통증범벅이 돼도 엄마는 매일 쓸고 닦는다. 움직여야 몸도 뇌도 계속 쓸 수 있다고 여겨서다. 병원에 가지 않고 집에서 죽을 수 있기를 바라서다. 침대 위에서 눈 감고 앉아 있는 엄마가 안쓰럽다. 청소 후에 파김치가 되어도 절대 눕지 않는다. 못 일어날까봐. 그런 엄마가 창을 열고 마당에 선 내게 묻는다. 춥지 않아? 재빨리 눈물을 감추고 명랑하게 대꾸한다. 내복 입어서 안 추워.  

   

요즘 엄마의 화장 시간이 더 길어진다. 움직임이 느려서도 그렇지만, 아이크림까지 꼼꼼하게 바르니까. 종종 얼굴을 돌려 묻곤 한다. 어때? 예뻐. 아주 예뻐. 난 엄마가 좋아하는 브랜드 화장품 세트를 백화점에서 사 안긴다. 엄마에게 드는 돈은 아깝지 않다. 평소 휴지 한 장이라도 허투루 쓰지 않는 엄마니까 더 그렇다. 그저 화장하는 엄마에게 흡족함이 더해지길 바랄 뿐이다.  

   

가끔 엄마가 꿈 얘기를 들려준다. 누군가가 데리러 왔다는. 어디까진가 갔던 풍경을. 그때마다 난 일부러 예사롭게 응수한다. 엄마 좋은 데 갈 건가봐. 그렇게 길이 넓고 환하니까. 다음 생에는 어떤 모습으로 살고 싶어? 곤히 잠든 엄마에게 다가가 숨소리를 듣는다. 모든 방어가 풀려 아기 같다. 이 시각 창틀에 붙어 있던 생명은 괜찮은가. 겨울비 내리는 새벽인데. 49재가 안 끝난 그는 어디쯤 가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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