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유경 Mar 18. 2021

나는 나를 실험한다

[김유경의 오늘] 살 힘을 추스르며 자뻑하다

약 2주간 날 실험 중이다. 밤새 치통에 시달린 날부터다. 레진 둘이 떨어져 나간 잇몸 쪽 이들이 시린 증상을 보이더니 기어코 아우성친 거다. 겁먹은 이튿날 아침에 치과 예약을 서두르다가 그 패인 부위에서 뭘 보게 됐는데…… 새살이 돋아난다? 긴가민가해서 두 번 세 번 들여다봐도 다른 잇몸 부위 같은 생김새로 차오르는 게 미약하나 분명하다. 그렇다면 간밤 치통은 새살을 돋아내는 몸의 재생 과정인 거다, 탈이 아니라.   

  

생전 처음 대하는 사실이 놀라워 난 모험(실험관찰)을 선택한다. 다시 치통 겪을 걸 생각하니 몸서리나지만, 신경 치료와 레진 시술로 몸의 자연치유력을 막아설 수는 없다. 물론 걱정이 끼어든다. 치과의사가 아닌 내 소견이 틀릴 수 있기에, 치료시기를 놓쳐 치주염에 걸리거나 임플란트 시술에 목매달 수도 있으니까. 그래도 나를 실험할 절호의 기회를 움켜잡기로 한다. 가끔 이렇게 나는 무식해서 용감하다.    

 

몸과 마음의 합체인 인간의 통각은 통각(痛覺)과 통각(統覺)의 어우러짐이다. 즉, 알게 모르게 자극과 반응에 의지가 포함된다. 그걸 따진 내 실험조건은 간단하다. 첫째, 평소대로 오일풀링을 한다. 둘째, 강한 통각을 느낄 때만 일반적인 치통용 진통제를 먹는다. 셋째, 잇몸이 패인 쪽으로는 치즈나 삶은 채소처럼 무른 것을 씹지만, 신 과일이나 갖은 양념을 친 음식 앞에서 주저하지는 않는다. 넷째, 늘 통각(統覺)으로 통각(痛覺)을 다스리려 시도한다. 다섯째, 염증을 고려해 하관(下顴)을 수시로 만져서 아프면 치과로 향한다.  

   

맘먹던 차에 전화한 후배가 얘길 듣고 치과 가기를 독촉한다. 실험 둘째 날, 자다 벌떡 일어난다. 잇몸이 맹렬히 저며지며 욱신거려 몸을 뒹굴다 주방으로 냅다 뛴다. 생수 한 모금 머금으면 잠시 진정 되던 낮 경험을 떠올리며. 생수 두 병을 비우고도 가라앉지 않아 급기야 염불로 맞장뜬다. 언제 헤어나 잤는지 모르지만 깨어나니 두어 시간 지나 있다. 그렇게 특별한 밤을 이후 한차례 더 겪는다.  

 

지금 나는 씹는 데 지장이 없다. 이따금씩 약하게 욱신거리는 곳이 있어도 먹을 땐 불편하지 않다. 사과를 껍질째 먹고, 김치나 딱딱한 주전부리를 서슴없이 씹고, 찬 음식과 뜨거운 국물을 무리 없이 번갈아들인다. 진통제는 이미 내 곁에 없다. 패인 두 잇몸은 3/5 정도 찬 상태다. 함께 난동 부리던 다른 치아 부위들도 얌전하다. 통각은 거의 없고, 뭐든 맘 편히 씹을 수 있으니 고비는 넘긴 듯하다.


재직 시절 스트레스 수치를 측정하던 정신과 의사가 호기심을 보인 적이 있다. 직장동료들과 비교가 안 되게 낮다며. 할 말을 제때 해야 성이 차는 습관적 언행이 한몫했을 거다. 예스나 노가 분명해서 종종 사람들을 섭섭하게 만들지만, 내 삶의 전적인 책임은 내게 있으니 어쩌겠는가. 미지의 세계에 대한 궁금증을 못 참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자연치유력을 살피려 내 선입관과 편견과 통념마저 훑어야 했던 이번 결정처럼.  

    

선택할 여지가 있는 내 삶에 대해 감사하다. 하여 부정적 결과에 직면해도 내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 삶에 불가항력적인 요인이 끼어드는 건 어쩔 수 없으니까. 그래서 이번 치통 사건은 좋은 결말을 향해 나아가고 있어 참 다행이다. 치열하게 부대낀 시간들을 돌아보니 꿈같다. 살 힘을 추스르며 자뻑한다.           

작가의 이전글 세상에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내 삶이 달라진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