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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유경 Feb 28. 2021

세상에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내 삶이 달라진다

[김유경의 오늘] '드라마 정주행'에 꽂히다

요 며칠 드라마시청에 푹 빠져 있다. 내 일과에는 몰빵 수위여서 일 마무리가 늦어져 새벽 3시쯤에 눕는다. 물론 해당 채널의 본방사수는 아니다. 유튜브를 이용하다 검색어 ‘드라마 정주행’이 눈에 띄어 시작한 거다. 즉물적이고 즉각적인 언행이 판치는 <팬트하우스> 같은 영상물은 건너뛰면서. 물질적 정신적 폭력성이 노골화 된 작품들도. 그래도 <나의 아저씨>처럼 폭력에 포위된 일상에서 돋아난 철든 대사들이 내 감성을 건드릴 때는 예외다.    

   

뜻밖에 행복하다. 반가운 캐릭터에 꽂힐 수 있어서다. 드라마의 방향성이 주효한 것이리라. 어쨌거나 앎이나 생각을 제때 행동(위)으로 옮기는 인물은 현실에서 귀하다. 통념과 다르게 반응하여 세상 변화의 물꼬를 트는 경우는 더더욱. 대개 그 캐릭터들은 갈등이나 불만에 끌려 다니지 않고, 남의 잘못을 탓하기에 익숙하지도 않다. 이길 가능성보다는 자기가 바라는 바를 향해 페어플레이 정신을 발휘한다. 그런 그들을 통해 나는 모처럼 대리만족한 거다.   

     

세상(자연 포함)과 동떨어져 삶을 꾸릴 수 없기에 인간은 완전 독립체가 아니다. 누구의 자아정체성이든 생래적 고유성이라기보다 물리적 정신적 환경에 영향 받은 조건부 산물인 거다. 드라마 캐릭터도 마찬가지다. 그러니까 드라마의 묘미는 낯선 캐릭터가 느닷없는 외부 자극에 대해 어떻게 느끼고 반응하며 변화하는가를 먹히게끔 연출한 공감대 형성에 있다. 팬데믹 상황에서 코로나19에 대한 국가의 총체적 대응능력이 우월하게 드러난 K-방역으로 인해 선진국에 산다는 유래 없는 자부심에 닿은 참신함 같은.    

   

그 과정에서 드라마는 대개 만인에게 먹히기 쉬운 러브라인(짝사랑, 연애, 결혼)을 동력으로 활용한다. <www>(이하 ‘W’)와 <굿와이프>(이하 ‘굿’)의 러브라인이 눈에 띄는 이유다. 두 드라마는 사랑을 맛깔스런 양념으로 하여 사회적으로 뜨거운 감자, 즉 포털의 실검 순위 조작이나 스타검사 고발을 조리하는 캐릭터의 안팎이 같음을 선보인다. 그리하여 사적 영역의 잔재미와 공적 이슈의 흥미가 어우러져 줄거리 위주의 훑기보다 캐릭터의 심리변화와 의사결정을 대변하는 말(투)과 표정 하나하나에 집중하게 한다.   

   

지난 25일부터 국내 최대 포털업체 네이버가 ‘실시간 급상승 검색어’(실검) 서비스를 16년 만에 중단했다. 포털 다음은 지난해 2월 실검을 폐지했다. ‘W’의 캐릭터가 반대편과 맞서며 주창했던 바와 동궤의 결과다. 자아정체성의 변화를 알아채며 혼인 유지 조건부 외도를 방편으로 수용하는 ‘굿’의 캐릭터는 스타검사의 민낯과 눈가림을 통쾌하게 까발린다. 검찰 개혁을 다각도로 검토하면서 완수하려는 현실 정치판에 눈 돌리게 하는 법정 연출이 압권이다.  

    

드라마 캐릭터가 그렇듯 내가 보는 현실 세상도 조건부 산물이다. 드라마 정주행으로 마주한 캐릭터들의 공통점은 세상에 대한 반응을 달리해 원하는 세상에 한 발짝씩 다가선다는 거다. 그와 함께 허기 같고, 하품 같고, 장난 같은 거친 말들이 속살을 채운 실다운 말들로 거듭나며 껍데기에서 놓여난다. 투박한 첫 입말을 떼어 업그레이드해 가는 캐릭터의 내면세계를 밝혀 내 일상어를 돌아보게 한 드라마작가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세상에 대한 드라마의 낯선 반응이 내 삶마저 달라지게 하는 거다.  

    

이래저래 드라마 시청이 시간 죽이기가 아님을 알게 되어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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