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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유경 Feb 13. 2022

고통을 가치 있게 변화시키는 노크 소리

[김유경의 책씻이] 주홍 샘의 줄탁동시(啐啄同時),<나는 파괴되지 않아>

등기우편으로 감사히 받은 책, <나는 파괴되지 않아>를 한동안 내버려두었다. 성장소설 특유의 결기(決起)가 느껴지는 제목 때문이었다. 박하령 작가의 다른 책 <발버둥치다>에서 마주했던, 주인공의 심리묘사에 빨려들어 가슴 저몄던 기억이 떠올라서였다. 잠시라도 이런저런 아픔에서 놓여나고 싶었다. 그러다 들췄는데, 내걸린 문장 하나가 프롤로그 진입을 방해했다.


“한 사회가 아이들을 다루는 방식보다 더 정확하게 그 사회의 영혼을 드러내 보여 주는 것은 없다.” _넬슨 만델라 (5쪽)


“사회의 영혼”마저 들먹이는 폼이 골치 아플 게 뻔했다. 그래도 내친김에 들어서니 어느덧 휙휙 책장을 넘기고 있었다. 주홍 샘, 루 오빠, 살기 위해 탈출했지만 죽은 금붕어, 노크 소리, 얼굴 붉어짐, 따돌림 등 일련의 얘기들이 통통 튀며 맛깔스럽게 다가왔다. 주인공 나연이에게 작가가 빙의한 듯, 구구절절한 상처들이 칙칙하지 않아 돋보이는 독백 메들리였다. 


나연이는 그루밍(grooming) 성범죄 피해자다. <나는 파괴되지 않아>는 나연이가 그걸 알아가는 과정을 무례함‧두려움‧친밀함‧구원 등에 관한 파동에 실어 현장감 있게 전달한다. 나연이가 결기를 드러내는 건 에필로그에서다. 그 긴 독백 끝에 찾은 파수꾼이 그 누구도 아닌 ‘나’라는 가리킴에서 작가가 살고 있는 “사회의 영혼”은 문제적이다.  


“정말 잘못된 일은 같은 일을 반복하면서 나를 방치하는 행위다. 그러니 잘못된 일을 하나하나 바로잡고자 한다.

  내 삶의 주인은 나고, 나는 나를 지키는 파수꾼이니까.” (223쪽)


인간세계가 고해(苦海)라 해도, 어떤 고통이든 피해자에겐 별것이다. 고통을 가치 있게 변화시켜 애벌레 나연이가 나비 나연이로 성숙한다 할지라도. 작가는 나연이류의 나비를 꿈꾸는 캐릭터로 가출 소녀 시아를 소개한다. 아울러 시아에게 2차 피해를 가하는 판사, 검사, 심지어 부모형제, SNS 댓글 등의 통념도 예시한다.


나연이는 시아를 걱정하면서도 자기에게 노크해 줘서 고마운 주홍 샘을 기다린다. 주홍 샘의 노크는 나비가 되게 하려는 줄탁동시라 할 수 있다. 작가는 파수꾼이 되려는 나연의 마중물로서 긍정적인 경험치들을 삽입한다. 일테면, “내가 모르는 나”, “나도 꽃이 될 수 있구나”,  “엄마 아빠가 ‘그들’일 수 있다”는 삼인칭의 힘, “한번 움터 본 희망의 씨앗” 등을. 


에필로그에서 나연이는 “살기 위해 꽃병 밖으로 튀어나온 금붕어” 격이다. 최소한 살 수는 있는 “물 밖으로 몸을 날린 용기와 자신을 드러낸 의사표현까지” 닮아 있다. 비록 금붕어는 비극적인 최후를 맞았지만, 장차 나연이가 감내해야 할 상황은 열려 있다. 독자들의 성원은, 잠재하는 그루밍 성범죄에 대한 경고메시지가 되어, 주홍 샘의 사회적 힘을 확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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