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경의 영화만평] 말문을 막는 카리스마, <소설가의 영화>
살던 집을 뼈대만 남기고 벗겼다. 그 전에 보관이사를 하고, 집 근처 원룸에 임시 둥지를 틀었다. 순조롭게 진행되는가 싶었는데, 마감에 해당하는 강마루공사가 2주 미뤄졌다. 방통(집안 바닥 통미장)한 바닥이 마르지 않아서다. 뒤늦게 방통 양생기간에 대해 생각이 미쳤고, 시공업자의 공정이 건축주 위주가 아님을 깨달았다. 쉽게 의심의 줄을 놓았던 내게 혀를 차던 터라 소설가 준희(이혜영 분)의 카리스마에 꽂힌다.
<소설가의 영화>는 소설가 준희가 영화를 만드는 이야기다. 홍상수 감독은 나름 당기는 대로 사는 인물들을 준희의 동선에 우연한 만남으로 배치한다. 맘 편히 살겠다고 서울 근교에다 책방을 연 준희 후배 세원(서영화 분), 악착스레 영화에 매달렸던 삶에 거리를 두는 감독 효준(권해효 분), 연기를 그만두려는 배우 길수(김민희 분), 예나 지금이나 술을 마셔야 쓰는 시인 만수(기주봉 분) 등이다.
그들은 관계 단절의 가능성이 있는 삶을 자의로 영위한다. 홍 감독은 어우러지는 듯하면서 모름의 거리를 유지하는 그들 관계에 앵글을 맞춘다. ‘나’를 고집하는 누구나 겪어봤음직한, 유야무야 처리되는 갈등을 품은 이어짐이다. 그들에 비해 사회적으로 두드러지지 않는 책방일 도우미 현우(박미소 분)의 굽실거림은 준희를 코웃음 치게 한다. 저마다의 원자적 고독과 차별적 대우로 엮인 사회적 관계를 압축해 보인 셈이다.
그런 관계 속에서 준희는 우연을 영화 제작의 기회로 포착해 잠재욕망을 구현한다. 길수와의 우연한 만남은 “사람이 먼저 정해져야 쓸 수 있다”는 창작의 필수 조건을 위한 청신호다. 홍 감독은 그런 준희 캐릭터에 카리스마를 얹어준다. 영화계에서 잠적하듯 사는 길수에게 “아깝다”고 말하는 효준을 향해 분수를 모른다고 따따부따하던 준희는, “아무 말도 못하게 하는 카리스마가 있다”는 길수 말에는 웃으며 응한다.
자신의 글쓰기 재능에 대해 “과장하고 있다” 느껴 손 놓고 있는 준희와 이런저런 이유로 연기를 멀리하는 길수는 솔직한 점에서 통한다. 그러나 상대를 대하는 둘의 방식은 다르다. 길수는 준희의 제안에 대해 솔깃하면서도 끝까지 남편이 선택할 몫을 남기고, 세원의 부탁에 대해 유연하게 대처한다. 반면 준희는 효준 아내 양주(조윤희 분)가 기분 나빠져 가버려도 신경 쓰지 않는다. 관계의 연속성을 위한 배려가 부재한다.
준희는 “이야기가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그냥 사는 삶의 결을 진실하게 순간 포착하는 영화다. 일상에서 소재를 찾아 세밀하고 낯설게 재구성하는 홍 감독의 영화 속 아바타인 거다. 준희의 영화제작에 참여한 경우(하성국 분)는 준희가 열정적이며, 자기 생각이 확실하고, 영화인들보다 훨씬 치밀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혼자 영화를 보고 나온 길수를 기다린다던 자리에 준희는 없다.
준희 캐릭터를 규정하는 카리스마 관점에서, 이제 준희에게 길수의 관람평은 중요하지 않다. 어쩌면 둘은 다시는 만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도 준희의 흑백영화에서 길수의 바람을 들어준 장면이 있다. 컬러로 드러난 꽃이다. 길수의 흐뭇한 미소를 클로즈업한 후 계단을 올라 어딘가를 향하는 뒷모습을 롱샷한 마지막 장면은, 준희가 수화(手話)로써 반복 강조한 메타포를 떠올리게 한다.
“날은 밝고 좋지만, 날은 곧 저문다. 날이 좋을 때, 실컷 다녀보자.”
어느 날이든 음양은 섞여 있다. 준희의 카리스마를 베끼려던 나는 길수의 꽃 같은 웃음을 닮기로 한다. 어쨌거나 집은 완공될 것이고, 내뿜는 화는 어떻게든 부메랑이 되어 내게 돌아올 테니까. 아직은 다닐 수 있는 좋은 날이니까 다니다보면 생채기는 아물 테니까. 상영관을 나서다 문득 배우 이혜영이 카리스마에서 놓여난 연기를 했었는지 궁금하다. 날이 저물기 전에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