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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유경 Oct 03. 2022

무엇이 나를 춤추게 하는가

[김유경의 영화만평] ‘하얀 밤’에서 ‘한밤의 태양’으로, <백야>

영화 <백야>의 첫 장면은 발레리노 니콜라이(미하일 바리시니코프 분)의 공연 모습이다. 내면을 표현할 줄 아는 몸이 아름다워 절로 탄성이 터진다. 그 다음 장면부터는 공연 여행 중 비행기 사고로 소련 공군기지에 불시착하면서 전개된다. 실제 미국으로 망명한 소련의 유명한 무용수를 본뜬 1985년 냉전시대 작품이다. 영화에는 니콜라이 외에 또 한 명의 변절자가 있다. 미국에서 소련으로 망명한 탭 댄서 레이몬드(그레고리 하인즈 분)다.  


    

명불허전의 명화여서일까. 두 춤꾼에 대해 감정이입이 잘 된다. 변절했다는 정치적 사실보다 변절하게 된 실존적 이유가 더 부각되어 그럴 게다. 주체적 언행을 편드는 주제가 ‘Say You Say Me’의 가사도 스토리라인을 따라 파고든다. 니콜라이에게는 옛 애인 갈리나(헬렌 미렌 분)가, 그리고 레이몬드에게는 아내 다리아(이사벨라 로셀리니 분)가 생애를 건 “돕는 손”이 되어 두 남성의 “가면무도회” 탈출을 돕는다. 두 춤꾼을 기껍게 춤출 수 있게 하는 건, 세상이 아니라 그들 자신임을 이해하기에. 

    

그 울림 탓에, 무엇이 나를 춤추게 하는지 자문한다. 영화는 니콜라이의 몸짓이 짓는 놀라운 근육 파동을 낱낱이 비추어 눈 호강을 시키면서 넌지시 일깨운다. 몸과 마음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또한 레이몬드의 술주정에 앵글을 맞추어 인종차별적 편견이 감시체제 못지않게 자기 계발을 옭죌 수 있음에 공감하게 한다. 진정한 예술가의 길을 걸으려는 니콜라이나 태어날 자식을 위해 아버지의 길을 가려는 레이몬드가 자기 인생의 주인공이 되려고 맘먹은 걸 내 일처럼 응원하게 한다. 

     

인간의 존엄성을 전제한다면, 니콜라이가 원하는 표현의 자유와 레이몬드가 갈구하는 기회의 평등은 같은 범주의 욕망이다. 그러나 정치적 차원에서는 변절자로서 동일하지만, 이상과 동떨어진 현실의 사회적 차원에서 두 탈출자가 받을 대우는 분명 다르다. 나는 지명도가 낮은 탭 댄서 레이몬드 부부가 안쓰러워져 뒷이야기를 나름 상상해 이렇게 저렇게 각색하고 만다. 픽션에 논픽션을 끌어대는 감상을 하며 과거 관람 때와 달리 말랑해진 나를 알아챈다.   

   

‘백야(하얀 밤)’는 위도 48.55° 이상인 지역에서 여름 동안 밤하늘이 밝아지는 현상을 일컫는 러시아의 표현이다. 같은 현상을 겪는 노르웨이 등 다른 지역에서는 ‘한밤의 태양’으로 부른다. 두 뉘앙스의 분위기가 다르다는 관점에서, <백야>에서 낮밤 구별 없는 현상을 배경 삼은 건, 언제든 어떻게든 사생활이 환하게 노출되어 잠시도 긴장감을 늦출 수 없는 감시체제를 비유한 것일 수 있다. 영화에 잔재미를 더한 소련 KGB의 차이코 대령(예지 스콜리몹스키 분)의 언행이 시사하듯.  


    

그런 ‘하얀 밤’을 강렬하게 연출한 엔딩장면의 반전이 인상적이다. 차이코 대령의 손아귀에서 놓여난 레이몬드가 눈이 부신 하얀 빛을 손으로 가리면서 긴가민가하며 한밤 속을 내딛는다. 저쪽 국경 분계선에서 목소리로 존재하던 다리아가 레이몬드를 부둥켜안고 웃는 얼굴이 하얀 빛을 뚫고 클로즈업된다. 가슴을 졸이던 ‘하얀 밤’이 가슴을 쓸어내리는 ‘한밤의 태양’으로 바뀐다. 다리아가 망명지에서 한 여성이자 아내로서, 그리고 어머니로서 주체적 삶을 이어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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