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책감
세상은 자꾸만 귀하디 귀한 내 아이를 가엽다고 말하고 나는 행여 그게 사실이 될까 두려워 더 나를 갈아 넣는다.
놀이터에서 마주친 윗집 할머니는 엄마가 집에 있으니 애가 옷 입고 다니는 때깔부터 다르다며 한마디 툭 던지고 가신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시댁에 아이를 맡긴 날, "애미랑 떨어져 자라와서 그런지 애미 찾지도 않고 노는 모습이 딱하다"며 시어른은 손주를 가여워하신다.
아이 친구 엄마의 말 끝에 '어떤 아이가 문제가 많은데, 그 집 엄마가 알고 보니 워킹맘이라 그럴 수밖에 없다'는 인과관계가 붙는다.
사람들은 일하는 엄마의 아이에게 결핍이라는 꼬리표를 너무 쉽게 붙이고 자기식대로 평가하고 판단한다. 그리고 그 어려움을 엄마의 욕심 탓으로 돌리는 말들을 종종 내 던지기도 한다.
지친 몸과 마음으로 여기저기 죄송하다는 말을 달고 사는 상태로 이기적인 엄마 프레임까지 씌워지니 그야말로 버티고 설 자리가 없어진다.
그래서 결국..
"벌 만큼 벌었을 것 같은데 이제 그만할 때도 되지 않았어? "
라는 아이 친구 엄마의 말에..
반격도 화도 내지 못하고 그저 어색한 미소와 침묵으로 응한다.
우리 집에는 어여쁜 아이가 있다. 그 아이는 매일 아침 엄마가 차려 낸 따뜻한 밥을 먹고, 비싸지 않지만 정갈한 옷을 입는다. 엄마는 유치원 행사에도 매번 참석했고, 업무보다 아이 준비물을 더 챙긴 덕에 단 한 번도 준비물을 빠트리고 등원한 적 없었다.
엄마는 다른 엄마들과 교류를 통해 얻는 정보는 절대적으로 부족했지만, 출퇴근 길 2시간을 교육서와 유튜브 강의로 채워가며 공부했다. 처음 해보는 엄마 노릇을 더 잘하고 싶어서 퇴근 후 부모 교육 워크숍에 참여하고, 때때로 회사 심리상담소에 찾아가 아이 마음과 엄마 마음을 마주하며 좀 더 나은 엄마가 되고자 무던히 애썼다.
내 몸과 마음은 엄마 역할로 온통 가득 채워져서 회사에 미안할 지경인데, 남들은 그와 반대로 내게 엄마 자격이 부족한 것 마냥 아픈 곳을 송곳처럼 찌른다.
정말 그런 걸까?
내가 내 사랑하는 아이를 가엽게 만드는 걸까?
아이와 우리 가족이 더 안정적으로 생활할 수 있게 하고 싶어서 최선을 다하는 중인데, 주변 사람의 말로 난 나를 의심한다.
오지라퍼 이웃과 손주가 안쓰러운 할머니와 시답지 않은 옆집 엄마 말을 흘리지 못하고 담아내는 건
어쩌면 내가 나 스스로에게 자꾸만 던지고 있는 불편한 마음이 건드려졌기 때문 아닐까?
세상은 자꾸만 귀하디 귀한 내 아이를 가엽다고 말하고 나는 행여 그게 사실이 될까 두려워 더 나를 갈아 넣는다.
정해진 유치원 행사 참여만으로도 휴가 내는 일이 잦아졌다. 성당에서 운영하는 유치원이라 사랑과 감사 위주로 교육하는 만큼 부모들을 위한 교육의 시간도 많았기 때문이다. 단 한 번도 빠짐없이 휴가를 내고 교육 참여를 했다. 돌이켜보면 워킹맘이 많지 않았는데, 내가 무리해서 휴가를 낸 게 맞았다. 종강 미사에는 부모님 참여가 가능했는데, 아이들이 미사를 보는 동안 부모는 뒤에 있어서 사실 존재감이 크지 않았다. 미사가 끝나고 퇴장하는 그 순간에 혹시 내 엄마가 있나 두리번거릴 아이에게 잠깐 손인사해 주기 위해 점심밥을 굶고 유치원을 오갔다. 아이가 소풍 가는 날은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 재주 없는 손으로 재주 있어 보이는 도시락을 만들었다.
참 유난스러웠다. 참으로 욕심쟁이었다.
이토록 유난을 떨었던 그 시간을 돌이켜보니...
그건 강박과 인정욕구였다.
아이에게 엄마 빈자리를 느끼지 못하게 하겠다는 강박과
가엽게 보는 이들에 대한 해명형 인정 욕구..
안타깝게도 나의 죄책감은 그것들을 더욱 키워만 갔다.
소풍 가는 날, 불과 30분 전에 헤어진 아이 이름을 애달프게 부르며 인사하는 마중이라는 관례가 있음을 뒤늦게 알았다. 아이들이 버스에 오르면 몇몇 엄마들이 버스를 향해 손을 흔들며 인사하는 것이다. 소풍 다녀온 아이가 속상해하며 다른 엄마들은 잘 다녀오라고 손 흔들어줘서 부럽다는 말을 듣고 그것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내가 놓친 게 있어 아이에게 엄마 빈자리를 알게 했구나 싶어 마음이 불안해졌다.) 그래서 다음 소풍에 오전 반차를 내고 떠나는 버스에 손을 흔들려고 갔다.
하지만, 결국 난 뒤에 숨어서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조용히 돌아왔다.
몇 명 되지 않은 엄마들이 모여서 손을 흔들며 요란하게 인사하고 있었는데, 다수의 아이들이 속상한 표정으로 버스에 오르고 있던 게 눈에 거슬렸기 때문이다. 엄마가 올 거라는 생각에 신난 우리 아이도 두리번거리다가 실망하고 버스에 올랐다.
그날 난 내가 해야 하는 일이 이 일이 아님을 깨달았다.
아이에게 느끼게 해줘야 하는 건 빈자리 없는 엄마가 아닌, 세상 사는 법을 배울 수 있게 도와주는 엄마임을...
퇴근하고 집에 와 실망한 아이를 붙들고 말해주었다.
엄마가 너를 향해 손을 흔들 때 다른 아이가 느낄 마음의 공허함에 대해..
앞으로는 버스 앞에서 잘 가라고 인사하는 대신 아침에 집에서 격하게 안아주고, 돌아와서 또한 격하게 반겨주겠다고 약속했다.
엄마와 너는 떨어져 있는 시간에도 보이지 않은 끈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그러니 보이는 거에 속상해하지 말고, 외로워하지 말라고...
난 그 끈으로 언제나 니 뒤에서 널 응원 중이라고..
사실 그땐 다섯 살짜리 애가 이걸 알겠어 싶어 하며 주절거렸다.
아이에게 말하며, 내가 배워가는 모양새였다.
시간이 지나고 11살이 된 애가 문득 이 이야기를 꺼냈다.
"엄마와 내 끈 있잖아~ 나 그거 진짜 믿었어
그래서 문 닫을 때, 끈이 끊어지면 어쩌나 걱정했어.
엄마랑 나는 늘 같이 있었잖아~~"
아이는 외롭지 않았던 것 같다.
그 끈을 든든한 방패 삼아 세상을 조금씩 깨우쳐가고 있었다.
유난히도 마음 저리는 날이 있었다.
사랑의 무게만큼 미안함이 가득 채워지는 날...
그런 날이 오면 어김없이 퇴사 욕구로 온 마음이 채워지는 걸 피하기 어려웠다.
커가는 아이가 아픈 것도, 엄마에게 짜증 내는 것도, 맑은 날 함께 산책하지 못하는 것도, 비바람이 몰아치는 날 등원을 시키는 것도, 함박눈이 펑펑 오는 날 당장 뛰쳐나가 눈을 만지게 해주지 못하는 것도.
모두 모두 내가 일하기 때문인 것만 같아, 인과관계를 쓸데없이 그곳에 엮어놓고 나를 아프게 했다.
게다가 회사를 다니는 이유에 나의 기쁨이 조금이라도 더해지는 날, 난 그것을 이기심으로 나를 의심한다.
죄책감의 스위치가 켜져 제동 불가였다.
사실 워킹맘의 죄책감은 복직하던 순간부터 매일 나를 괴롭히던 가장 어려운 감정이었다. 이 마음 때문에 가장 많이 울고 퇴사를 수없이 상상하곤 했다. 난 그래서 이 주제에 대해 술술 글이 써질 것이라고 생각했다.(그 당시 끄적거려 뒀던 글들이 있을 텐데...) 시간을 되짚어서 글을 쓰려니, 의외로 이것을 적어가기 힘들다. 초4 아이 엄마가 된 지금 내게 죄책감의 감정이 희미해졌기 때문이다. 앞으로 써내려 갈 나의 두 번째 휴직의 시간이 그 죄책감의 늪에서 나를 구원했는지 모르겠다.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내가 달라졌음을 다시금 느낀다.
일하며 아이를 돌보고 살림을 해가는 엄마의 역할은 과중하다.
지치고 힘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언젠가 상담실에 가서 심리 검사를 했는데, 과도한 책임감과 곤두박질친 자기 효능감의 수치를 마주하고 왔다. 상담 선생님은 이게 보편적인 워킹맘의 데이터라고 위로해 주셨다. 나와 같이 힘든 사람들이 곳곳에 있음이 위로가 되었다.
이 고단함에 죄책감까지 얹어서 아파하지 않았어야 했다.
주변이 어떤 눈으로 보든, 우리 가족의 단단함은 나와 아이와 남편이 알고 있으니...
많은 시간을 아이 옆에 붙어 있을 수 있냐는 물리적인 관점에서 보면 난 턱 없이 부족한 엄마이다.
하지만 뒤에서 지켜봐 주고 넘어졌을 때 적절하게 도와주기 위해 매 순간 아이와 함께하는 보이지 않은 시간은 꽉 채워져 있다고 자신한다. 그래서 난 보이는 것들로만 평가받는 게 그토록 억울했나 보다. 굳이 인정받을 필요 없는 사람들에게까지 내 노고를 해명하려 시간 낭비했다.
강박과 인정 욕구에 짓눌린 마음을 나누며, 나도... 누군가도... 가벼운 마음이 되길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