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군분투 일상
이런저런 잡념을 차단하고 약병과 함께 아이를 등원시킬 때, 늘 차단되지 않은 생각 하나가 함께 했다.
"다 부질없다. 나 그냥 여기서 그만둘까?"
예상하지 못한 일을 대처해 내는 능력이 내겐 한없이 부족했다. 그 덕에 미리 준비하고 Plan B를 만드는 삶의 태도를 가질 수 있었다. 그것은 어느 정도 유용했고 사전 준비를 통해 문제가 해결되어 갈 때 나의 성실함에 뿌듯해했다.
하지만...
회사일과 육아를 병행하면서 예상치 못한 변수들이 쏟아져 나오니 속수무책이었다. 사전 준비를 무색하게 하거나 준비할 틈을 허락지 않고 랜덤 하게 등장하는 퀘스트가 다반사였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상황들에 지쳐 점점 무기력을 학습하고 번아웃에 빠져들곤 했다.
유독 빠르게 흘러가는 아침 시간에 아이와 함께 출근하려면 전쟁이 따로 없다. 아이의 기상 시간 변수, 반찬 투정 변수, 떼쓰기 변수, 대소변 변수 등 default 값으로 세팅된 다양한 변수를 맞이한다. 처음에는 이것들로만으로도 당황스럽고 벅찼다.
10년이 지나도 유쾌하지 않은 출근길에 엄마 노릇이 더해지니 버거움이 밀려왔다. 강박적으로 시계와 아이를 번갈아 살피며 출근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그건 맛보기였다.
진짜 실전은 아이가 아픈 날들이었다. 처음에는 가벼운 감기 증상에도 전전긍긍하며 등원시키기를 망설였는데, 그런 이유로 등원하지 않으면 일 년에 등원할 수 있는 날이 며칠 없을 것 같다는 것을 얼마가지 않아 깨달았다. 38도의 나름의 기준을 정해 해열제를 먹이고 등원시키는 날들이 이어졌다. 남들에게 피해 주는 걸 못 견뎌하는 성격이, 바뀌어 가고 있었다. 법적 전염병이 아니니 등원시키면 되지라는 합리화가 강하게 밀려왔다. 이런저런 잡념을 차단하고 약병과 함께 아이를 등원시킬 때, 늘 차단되지 않은 생각 하나가 함께 했다.
"다 부질없다. 나 그냥 여기서 그만둘까?"
그만두지 말고 쉬어 가라는 신호였는지 이번엔 내 몸이 안녕하지 못했다. 암세포를 지니고 사는 게 거슬리긴 했으나 거북이처럼 느린 암이라는 이유로 작은 혹을 방치하고 있었다. 그 작은 암세포는 내가 치열하게 하루하루 버티던 그 시간에 존재감을 키워갔다. 임파선에 전이된 상태였고, 목소리 신경에 바짝 붙어 있어 시간이 좀 더 지나면 목소리 신경을 끊어야 할지 모른다며 주치의가 경고했다. 결국 3개월의 휴직으로 수술과 방사선 치료를 하며 쉼표를 찍었다. 이런 쉼이 부러운 다른 워킹맘 동료는 암 걸려 휴직한다는 말에 부럽다고 화답했다.
뭐가 부러운 걸까?
휴직이?
암이?
복귀 후 다시 변함없는 등하원 일상을 이어갔다. 그나마 회사가 집에서 자차 15분 거리에 있는 게 다행스러웠는데 한 시간 거리로 회사가 사옥 이전을 하게 되었다. 또 한 번의 큰 변수였다. 아이와 함께 왕복 두 시간 등하원을 하며 실감했다. 잃고 나서 소중하다는 말을...
아이 등하원을 해야 하는 난 우리 팀에서 가장 늦은 출근과 가장 이른 퇴근을 하는 직원이었다. 때문에 못다 한 일을 저녁에 아이 재우고 하거나 주말에 채워 넣어야 했다. 그런 상황 때문에 여전히 내 시간은 없었고, 일은 잘 돌아갔다. 하지만 사무실이 아닌 집에서 일하는 건 익명의 기부와 같은 것이었다. 난 기부천사가 아니었고 나의 리더는 그 가치를 알아주지 못했다. 늘 최하위 평가였고 평가 근거로 남들보다 적은 근무시간이 언급됐다. 또, 아픈 내가 부담스럽다고 했다. (리더 입장에서는 어쩌면 당연한 말이지만 마음이 저렸다.) 실력을 증명해 내든지 나가든지 하라며 냉정하게 말하던 리더의 가시를 연말 회식 자리에서 결국 난 토해냈다. 남 눈치 더럽게 많이 보는 내가... 그 훈훈한 송년회를 악으로 차올라 망쳐버렸다.
회사 생활 12년 만에 처음으로 누군가를 들이받았다!!
나의 리더를...
그리고 그 후로 난 내 실력을 증명하기 위해 본사가 아닌 원거리 프로젝트에 투입 됐다. 본사 어린이집을 보내는 상황이라 아이를 데려다주고 출퇴근하며 하루 4시간을 길에서 소비했다. 그 해 겨울은 유독 더 시렸다.
크고 작은 이벤트들이 끝도 없을 것처럼 매일 쏟아져 나왔다. 주변을 둘러보다 나보다 더 힘든 상황을 겪어 내는 다른 엄마들을 보며 위안 삼고, 주변 도움을 받는 엄마들을 보며 신세 한탄을 하는 성숙하지 못한 어른의 자세와 요동치는 멘털로 지냈다. 버팀에 지친 날은 나와 비슷한 상황의 친구에게 위로받고, 서로 격려하며 환갑이 지나면 꼭 꽃놀이 다니자는 말로 서로의 미래를 응원했다.
사연 없는 워킹맘이 없을 거다. 저마다의 애씀으로 하루하루를 버텨가고 있을 것임을 알기에 애잔하다.
지금도 쏟아지는 변수를 처리해 가는 이 시대의 엄마들에게 응원과 위로를 보낸다.
사진 출처 : 딸 바보가 그렸어. 엄마의 일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