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 휴직 서론
육아도, 회사도, 살림도 모두 해내야 하는 삶 속에 내 시간 따위는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었다.
그런 내게 드디어 시간이 생겼다.
육. 아. 휴. 직
그 감지덕지한 1년의 쉼을 휴직이라 쓰고 퇴직이라 읽기로 했다.
사직서 품은 직장인으로 15년을 살아냈다.
마음속 퇴사버튼은 활성화 상태였는데 그 버튼을 누르지 못한 채 주저했다. 주저했지만 늘 갈망했다.
가보지 못한 그 길은 앞서 퇴사한 선배들의 흔적을 통해 간접 경험되곤 했다. 귀동냥한 퇴사는 장점과 단점으로 명확히 선 그어져 있는 흑백 세상이었다. 퇴사의 장점이 유독 커 보이던 어느 날은 출근길 발걸음이 더 무거웠고, 단점에 꽂힌 또 다른 날은 ‘그래도 출근하는 거에 감사하자’하며 지친 마음을 다독이곤 했다.
이런 날 저런 날들이 모여 회사에 머무르는 시간이 쌓여갔고, 시간과 비례하여 그 회사의 이름이 내 안에 더 커져만 갔다. 마치 내 회사인 것 마냥...
내 것인 것 같은 그 회사는 매주, 매분기, 매해 보고를 통해 내가 일 하는지 안 하는지 가늠하며 평가하고 있었다.
나는 리더에게, 나의 리더는 그의 리더에게, 그의 리더는 그 위 리더에게 보고하기 위해
금주 주간보고는 화요일 오전까지 완료되어야 했고
내년도 사업 계획은 빠른 예산 수립을 위해 연말이 아닌 뜨거운 여름부터 머리를 쥐어짜도록 했다.
회사의 시간은 2배속으로 흐르고 있었고, 그렇게 빨리 지나가는 시간 속에 내 시간을 담을 여유는 허락되지 않았다. 내 시간이 줄어들수록 점점 내가 뭘 좋아하고 뭘 하고 싶은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떠올리는 게 어려운 일이 되었다.
월급의 대가로 내 시간을 바치고 나면 나의 꿈도 함께 소진되어 버리곤 했다.
마음 한 구석에서 올라오는 바람을 새해 소망으로 다짐해 보았으나 이미 고갈된 에너지 탓에 그 계획은 작심삼일로 흐지부지 되곤 했다. 계획을 실천하지 못하는 나의 의지를 탓하고 나의 부족함에 실망하기를 매해 거듭했다.
육아도, 회사도, 살림도 모두 해내야 하는 삶 속에 내 시간 따위는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었다.
그런 내게 드디어 시간이 생겼다.
육. 아. 휴. 직
그 감지덕지한 1년의 쉼을 휴직이라 쓰고 퇴직이라 읽기로 했다.
업무도 중단 됐고 급여도 중단되니 이만하면 퇴사 후와 비슷한 환경이다. 다만, 소속감을 주는 명함과 돌아갈 곳이 있는 안정감은 유효했다. 통제되지 못한 변인은 남겨져 있으나 일단 이만하면 내 마음은 퇴직자다.
오늘부터 난 더 이상 워킹맘이 아니다.
애써 새벽 기상하지 않아도 됐다.
휴직 시작일이 방학과 겹쳐, 시작부터 아이와 나의 늦은 아침잠이 허용되었다.
자는 얼굴 보고 출근하는 게 늘 가슴 저렸는데, 늦잠 자고 있는 아이의 얼굴을 보니 세상 평화가 모두 이곳 침실에 있는 것 같았다. 잠든 아이가 깰까 싶어 방문을 조심스레 닫고 나와 여유로운 아침 밥상을 차렸다. 한 가지 단품 메뉴 차리기도 버겁던 시간에 쫓기는 아침이었는데, 오늘 아침상은 다르다. 정성스레 만든 전복죽과 느긋한 마음으로 볼품 있게 깎은 사과에서 여유가 느껴진다. 밥을 차려두고 아이 옆에 다시 누워 동화책을 읽어주며 아이를 깨워본다.
어서 일어나야지!!! 늦는다.!! 하는 협박이 아닌
책 읽는 엄마의 목소리가 모닝콜을 대신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회사 업무 꿈을 꾸는 날도 줄었고 늘 무거웠던 머리가 가벼워졌다.
마음이 가벼워지니 덩달아 몸도 달라졌다. 양쪽 어깨를 짓누르던 곰 두 마리도 내 어깨에서 슬그머니 내려왔다.
점차 회사 독이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하지만 회사원의 고질병 탓인지, 매년 하는 목표 수립처럼 휴직 목표 수립을 하고 있었다.
새벽까지 TV 보고 혼자 있는 낮시간에 뒹굴뒹굴 침대와 한 몸이 되는 상황은 지양하나 일상의 여유를 지향하겠다는 두리뭉실한 목표를 세웠다. 정량적인 KPI와 달리, 굉장히 추상적인 목표여서 더 마음에 흡족했다. (회사 냄새가 안 나서...)
사실 목표 수립 욕망은 휴직 3개월 전부터 발동되어 있었다. 휴직 기간 1년을 알차게 보내고 싶다는 생각에 이것저것 하고 싶은 욕심이 더해져 조바심도 났다.
아이 챙기고, 건강도 챙기고, 제2의 직업을 위한 꿈도 찾고,... 우선순위 없이 마구잡이로 떠올리며 욕심만 내는 내 버릇이 여전했다. 1월에는 이것부터 하고, 2월은... 5월쯤에서 막혀 있던 계획서를 들고 이래저래 지친 마음에 회사 심리상담소를 찾았다.
나를 나만큼 잘 아는 상담 선생님께서는 "아무것도 안 하기에 도전해 보시는 건 어떠세요? 이게 책임님께 가장 어려운 숙제일 거고 이렇게 마음먹어도 뭔가를 할 테니 걱정 마세요."라고 말씀하셨다. 상담실에서 그리하겠다 결심하고 그 방문을 나오면서 나는 바로 생각했다. "아무것도 안 하기 위해서 난 무엇부터 실천해 볼까?"
쳇바퀴 속에서 계획 세우고 이행하는 task에 갇혀 있던 회사원에게 계획 세우기를 멈추게 하는 건 상담사님 말처럼 어려운 숙제였다.
아무것도 안 하기를 목표로 세웠어야 했으나, 결국 그게 더 괴로워 모든 것을 가지치기하고 "건강" 하나만을 타이틀로 정했다. "운동"이라는 나를 위한 소주제와 "다양한 집밥 먹기"라는 가족을 위한 소주제가 생겨났다.
시시각각 올라오는 마음을 누르고 딱 하나 이것만 붙잡자 다짐하고 퇴사자의 마음으로 그렇게 일상이 시작되었다.
"집에 있으면 심심하고 무료할 거야"
"돈 벌 때가 좋아서 회사 나오고 싶을걸"
"애들도 집에 있는 엄마 싫어해"
주변에서 퇴사를 말릴 때 주로 사용하는 말들이 맴돌았다.
나 역시 이 말들에 현혹되어 퇴사를 두려워했다.
이제부터 이 세 가지 명제에 대한 경험을 해보고자 한다.
휴직 한 달 차...
무료함보다는 자유로움이 가득 채워진다.
지난달 근무로 인해 통장에 월급도 채워졌다.
엄마가 집에 있어 좋다며 아이도 행복해한다.
따라서 (아직은...) 이 명제는 거짓이다.
이런 세상도 있구나...
이런 삶도 있구나...
다른 삶을 선물 받은 감사한 나날이다.
나 이렇게 계속 집에 있고 싶다.....
(과연 이 마음이 지속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