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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화 Jul 07. 2016

그 여자의 운전

초보시절을 잘 보내야 하는 이유


누가 그랬을까. 그렇게도 당당히. 운전면허 시험이 어렵지 않다고. 문제집 한 권을 다 풀고도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한 채 시험을 보고 필기를 겨우 붙었다. 한 번에 붙었고 심지어  합격이 보장된 사람만 시킨다는 답안지 수거를 위해 맨 앞자리로 불려 나가기도 했지만 너무 쉬운 시험이라고 알려진 터라 그 아슬함을 크게 내색도 못했다.


학교에서 어울려 다니는 친한 남자 동기들 대부분이 보통 1종 면허를 따길래 그걸 따는 게 당연한 줄 알고 등록을 했었다. 그래도 이론보단 운동신경이 그나마 좀 나았는지 한 명이라도 빨리 합격시켜 내보내야 하는 효율성이 강조되는 시스템 속에서 난 강사 눈에 띄어 3번 연수받고 4일째 면허시험장으로 실려갔다.


앞에 차, 앞에 앞에 차가 언덕을 넘지 못하고 코스 밖으로 밀려나가는 걸 바라보면서 혼자서 유유히 코스를 돌아 합격했을 때 몸이 기억한다는 건 이런 거구나족집게 강사의 위대함을 새삼 깨달았다. 아홉 명 정도가 대기실에 함께 있었는데 결국 혼자만 붙었던 걸로 기억한다. 떨어진 사람들이 펜스에 매달려 열렬하게 질문을 퍼붓던 그때 그분들의 강렬한 외침이 아직도 선명하다. "저기서 어떻게 했어요?"


그리고 2주 뒤 이어진 주행시험. 경찰관의 간단한 안내를 듣고 지시에 따라 차에 올랐다. 휴가 나온 군인과 함께 시험을 치렀는데 경찰관의 말 그대로를 흉내내며 타이어 체크한다고 정석인 양 바퀴도 발로 차보고 나름 진지하게 시험을 치러 결국 또 붙었다. 떨어진 군인에게는 괜스레 미안한 마음이 든 채로 면허 취득의 관문을 쉽게 통과하는 듯했다.  


운전면허 시험에 합격했다는 소리를 듣고 아빠는 트럭을 몰 줄 아니 배추장사를 시켜야겠다며 껄껄 웃으셨고 동기들은 떨어졌어도 솔직히 말하는 건 창피한 게 아니라고, 거짓말이 더 나쁜 거라며 처음엔 믿기는 커녕 나를 위로한답시고 낄낄거렸다.


그렇게 신동의 모습으로 운전을 시작한 나는 현재 고속도로도 제대로 못 타고 장거리 운전은 꿈도 못 꾼다. 한 달 동안 차분히 연습시켜주는 곳에 매일 출근 도장을 찍으며 기초부터 차근히 밟고 최대한 천천히 배우지 않은 것이 못내 아쉬움으로 남는 이유다.


그 뒤로도 내가 운전을 못하는 이유는 계속해서 추가되었다. 초중고를 모두 장거리로만 다녀서 버스노선을 다 꾀고 있는 탓에 아는 길로만 다니는 버릇도 문제지만 차 안에서 전화만 와도 기겁을 할 정도로 운전만 하면 예민해졌으니 네비를 본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게다가 연애시절 카풀 해 준 것에 대한 보답인지는 몰라도 함께 있을 땐 남편도 운전을 맡기지 않고 제일 친한 동생은 날더러 언니에게 없는 센스가 바로 운전 센스라며 자기 차로만 날 태우고 다녀 운전이 늘지를 않았다. 그나마 주차는 참 잘했는데 이제 후방카메라가 생겨 그 감마저 잃어가고 있다.


그렇지만 생각만큼 남에게 피해를 줄 정도의 운전실력은 아니다. 특이한 기억으로는 10여 년 전 제주도에서 운전했던 경험이 그나마 지금 정도의 수준을 갖게 해주는 계기가 되었다. 회사 워크숍으로 함께 간 곳에서 대부분의 직원이 면허가 없어 갑작스레 이동에 대한 막중한 책임이 주어졌고, 모르는 길이니 네비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었으며, 변덕스러운 날씨에 두 눈 부릅뜨고 빗길 운전을 해야만 했으며, 막히지 않고 다른 차의 방해가 없는 곳에서 속도감에 대해 익힐 수 있었다.


그나마 초보시절을 제대로 밟지 않고 건너뛰어버린 부족분을 우연한 기회로 벌충한 기분이었다. 운전을 할 줄 알면 정말 편리한 점이 많다. 게다가 아직 면허가 없는 젊은 여성이라면 엄마로서 여자로서 본인을 위해 운전이 필수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 다만 속성은 폐해를 남긴다는 점, 잘한다고 인정받을 때가 가장 위험해서 그 자리에 멈춰버릴 수도 있단 교훈을 공유하고 싶다. 만약 장거리 운전이 가능했다면 내 인생이 달라졌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드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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