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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화 Jul 27. 2016

생각보다 더 엉성한 계획

겨울 제주의 바람은 충격 그 자체였다


올 초 이루고픈 작은 소망이 한 가지 있었다. 육아서 한 권을 읽고 마음에 담아 두고 있던 계획을 실천하는 것이었는데 아이가 세 돌이 될 무렵에 꼭  둘이 여행을 떠나고 싶었다. 헌데 아이와 함께려면 짐도 많고, 혹여라도 잠들거나 걷기 힘들어하면 혼자 안고 이동하는 것이 여간 곤역스러운 게 아니라서 아이 혼자 어느 정도라도 보로 소화할 수 있어야 하거나 유모차를 챙겨야 한다는 조건이 붙었다.


그래서 한 가지 꾀를 냈다. 작년 한 해 아이를 돌봐 주시느라 수고해주신 사모님께 아이의 두 엄마로서 함께 여행을 하자고 제안을 했고 그렇게 감사의 마음 조금, 내 로망의 성취라는 욕심 조금, 그리고 아이에게는 첫 비행이라는 의미를 담아 2박 3일짜리 제주도 여행을 시작할 수 있었다.

여행의 콘셉트는 단순했다. 아이의 컨디션에 맞추고 사모님을 기분 좋게 해드리는 것. 나는 기사이자 가이드이자 돈줄이 되어 두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자는 것. 그거면 될 것 같았다. 하지만 제주도는 이런 나의 바람을 그냥 두고 보지 않았다.


출발하기 며칠 전부터 몸살 기운이 있으시던 사모님은 일정을 바꾸거나 취소하자는 말씀을 못하시고 도착한 첫날밤부터 끙끙 앓기 시작하셨다. 쉽게 훈훈해지지 않는 호텔방은 하필 히터가 내 머리 위에 위치해 건조하고 더운 공기를 싫어해 무척 괴로움에도 불구하고 이불을 뒤집어쓰면서까지 참는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다행히 오전에는 몸 컨디션이 조금 호전되셨는데 식사가 또 문제였다. 늦은 아침과 저녁, 혹은 이른 점심과 저녁으로 평소 두 끼만 드시던 사모님은 아침 7시부터 배가 고프다고 하셨고 나는 생각보다 이른 조식을 먹으면서 당장 점심을 걱정해야 했다. 현지에서 고생하지 않게 이동거리와 시간까지 파악해 둔 것이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차라리 어슬렁거리거나 헤매는 게 나을 뻔했다. 식사와 식사 사이에 준비시간이 필요치 않고 따로 집안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두 명의 주부는 여유롭다기보다는 남아도는 시간이 주체가 안되고 감당을 못하는데 이르렀다.

겨울 제주는 처음이었다. 봄 제주도 기억하고, 여름 제주도 좋았고, 가을에도 육지와는 다른 기온이었기에 당연히 겨울이라도 온후한 날씨일 줄 알았다. 세상에 어찌나 바람이 세게 부는지 오름 하나는 백 미터도 못가 포기했고, 월정리 쪽 해변가에는 아들과 사모님만 잠시 내려 칼바람과 사투를 벌이다 들어왔다. 나는 차에서 내리기는커녕 창문 한 번 제대로 열지 않았다. 기대했던 섭지코지도 투어차량을 통해 겨우 발도장만 찍고 예정했던 거의 모든 목적지를 제대로 소화하지 못했다.


계획한 장소에 대한 제대로 된 투어를 할 수 없으니 중간에 시간이 붕붕 떴다.

중문단지 쪽은 내가 가고 싶지 않아서 관람코스를 동쪽 방향으로만 모색한 것이었는데 밖에서의 이동에 제약이 생기니 이젠 어쩔 수 없이 박물관과 따뜻한 기운이 있는 카페 등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아이에게 맞춰 주자시던 사모님은 역시나 시시하다는 반응을 숨기지 않으셨다.


나는 정말 어떻게든 남겨진 시간들을 채워야만 한다는 의무감에 시달렸다. 마지막 카드를 내밀었다. 그건 바로 '마사지'. 따뜻한 곳에서 피로를 풀며 시간을 때울 수 있는 최적의 장소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지에서 마사지 샵을 컨택해 바로 이동했다. 그 주변을 몇 바퀴 돌고 헤매고 나서야 겨우 찾아낸 곳은 매우 친절했지만 마사지 실력이 아주 좋지는 않았다.


관광지에서의 갑작스러운 일정이 돈 값어치만큼은 안될 거라는 예상은 했었기에 마사지를 받는 동안 아이가 동영상을 보며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자리를 내어준 것이 고마워 그럭저럭 넘어가려는데 사모님의 별 거 없다는 반응에 힘이 쭉 빠졌다. 쉽게 쓰인 돈 이십만 원이 공중에 흩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맘이 잘 맞고 서로를 이해하던 아이의 엄마들이었지만 그 자리에서 하필 그 반응은 아무리 나를 위한 것이었다 해도 조금씩 속이 상하기 시작했다. 생각만 많고 핀트가 어긋난 결정들은 결국 하나도 도움이 되지 못했다.

심지어 아이마저도 그곳에서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호텔방은 깔끔했지만 아이가 이동하고 놀기엔 좁았고 제주 풍물을 즐기게 해주려던 엄마 마음과는 상관없이 아이가 가장 좋아한 건 집 근처 쇼핑센터에서도 얼마든지 먹을 수 있는 구슬아이스크림이었다. 물고기 보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를 위해 방문한 아시아에서 가장 큰 수족관은 유명한 쇼를 앞두고 더워서 짜증을 내는 아이 때문에 관람을 포기하고 서둘러 나와야만 했다.


나는 처음으로 사람들 많은 데서 아이에게 불같이 화를 냈다. 왜 모든 것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인지 스스로에게 물어야 할 답을 애먼 아이에게 화풀이를 함으로써 구하고 있었다. 두 번의 저녁이 참으로 길었다.


그렇게 여행을 망친 것 같은 기분으로 모든 일정이 끝나갈 때쯤 아슬아슬하게 우리 여행의 죽어가던 불씨를 살려준 일이 생겼다. 회사 배로 만나 몇 년간 함께 지내다 제주도로 내려온 동생의 등장이었다. 그는 비행 출발 시간 2시간을 앞두고 나타나 렌터카를 반납함과 동시에 우리를 낚아채듯 태우고 제주 시내의 한 맛집으로 데려갔다. 정말 등장부터 잠시 동안의 교통체증, 사람들로 꽉 차 발 디딜 없던 곳의 열는 지금 생각해도 꿈만 같다.

그리고 그 식당에서 3일 동안 본 적 없었던 사모님의 환한 얼굴을 처음으로 마주할 수 있었다. 그 사이 불편하게 구겨졌던 내 마음도 다시 펴졌다. 순간 그분 또한 이 여행이 편하고 좋지만은 않으셨겠다는 생각에 미쳤다. 나는 그저 잠깐의 서운함으로 그쳤지만 사모님은 나에게 모든 걸 내어주고 오신 여행이었다. 그래서 더 혼란스러우셨을 수도 있었을 거란 깨달음과 마주하며 사모님의 입장이 헤아려졌다.


여행은 몇 가지를 남겼다. 아주 잘 맞던 사람, 서로를 잘 이해한다고 생각하던 사람과의 여행이 즐겁지만은 않을 수도 있다는 것. 그래서 선포했다. 다시는 사모님과 둘이서만 여행하는 일은 없을 거라고, 따로 여행 가시도록 돈으로 드리겠다고, 건방지게 어설픈 계획으로 고생시켜드려 죄송했다고. 그리고 작은 인연이라도 나도 모르는 시점에 언젠간 큰 힘으로 나타난다는 것. 그래서 나는 그에게 그 고마움을 갚으러 3월 다시 제주도를 찾았다. 


그리고 내가 남을 위한 여행을 혼자 계획하고 주도적으로 이끌만한 주제가 못된다는 것알아버렸다. 그래서 이번 제주도 여행에서는 숨만 쉬며 남편을 따라다녔다. 마지막으로 소망이었던 아이와 둘만의 여행을 할 만한 깜냥이 안된다는 것을 받아들였다. 만약 아들과 둘이 여행을 한다면 그건 아들이 나를 데리고 다닐 수 있을 때가 아닐까. 보다 더 좋을 순 없을 것 같았던 여행은 내 인생 최악의 여행이 되었고 생각지도 못하게 나를 성장시켰다. 



관련글. 매거진 [Mommy Hear Me] 아이를 맡긴다는 것 https://brunch.co.kr/@newdream0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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