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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화 Aug 17. 2016

실패도 결국 행복인 이유

조금 더 빛나는 추억의 장면 하나가 만들어졌다


해가 뜨거웁던 작년 여름 나는 마스크를 쓰고 JLPT(일본어능력시험) 시험장에 앉아 있었다. 교통사고로 상한 몸을 치료받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메르스 여파로 전국이 어수선하고 감염이 염려되던 터라 조심스러워 병원 진료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던 였다. 하필 그 시기에 단체시험을 보러 사람들이 잔뜩 모이는 공공장소에 내 발로 걸어 들어가야 하다니 정말이지 내키지 않는 발걸음이었다.


무엇보다 시험을 치르고 싶지 않은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었다. 이른 시간은 아니지만 오전부터 준비해 낮 동안 몇 시간을 집중해야 하는 시험이 달갑지만은 았고 도망칠 수 있다면 그러고 싶은 게 솔직한 그때의 심정이었다. 이상하게도 가끔 시험 보는 꿈을 꾸었다. 소스라치게 놀라 깨고나면 꿈이었다는 사실에 안도가 되면서도 긴장한 마음이 한동안 가시질 않았다.


그런 내가 자발적으로 그렇게도 싫어하는 시험을 보러 가다니 뭔가 아이러니하다는 생각 들었다. 원하지 않으면 굳이 시험을 보지 않고도 먹고 사는데 지장이 없어진 나는 이제 신청한 시험마저도 피할 수 있는 '호흡기 감염병'이라는 아주 좋은 핑곗거리가 생겼으니 시험장에 가지 않아도 큰 문제가 되지 않을 터였다. 정말이지 눈 질끈 감고 수험료만 포기하면 큰 문제는 없어보였다.


그런데 그런 '허울 좋은' 이유로 도망칠 구실을 주기에는 석연치 않은 마음이 들었다. 아이도 생각해야 하니 병을 옮겨 올 수도 있는 장소에 함부로 갈 수 없다는 변명보다는 나와의 약속을 지키고 싶었다. 갑자기 나는 왜 이런 약속을 해 버린 걸까. 억지로 시킨 사람도 없고 하라고 강제한 사람도 없는데 '스스로' 일본어 공부를 하겠다 약속하고 '알아서' 시험일까지 지정하고는 '제 멋대로' 고민에 빠져 버렸다.  


특별한 이유는 없다. 하기 싫은 공부를 하겠다고 마음 먹고 시험을 신청한 건 순전히 내가 '엄마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아이를 키우며 내 자투리 시간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고 나를 찾고 증명해 내기 위해 무엇이라도 하지 않으면 나를 잃어버릴 것 같은 알 수 없는 두려움에 사로 잡히는 기분 뭐라도 답해주고 싶었다. 나름의 절실함으로 시작한 일이면서 무얼 믿고 제대로 공부 하지 않은 건지 약속을 '열공'이 아니라 '시험에 참석하는 것'으로 지킨 꼴이라 내 모습이 참으로 우스꽝스러워 보였다.


기술의 발달로 학습 자료의 휴대성이 좋아진 요즘 동영상을 틀어놓고 듣다가 잠이 들기도 할 만큼 잠시 '열성 모드'인 적도 있었지만 기기의 힘을 빌리지 못하던 때보다 더 효과적이지도 않고 학습자로서의 집중도는 오히려 낮아져서 시험의 겉만 핥고 공부하는 시늉만 내고 있는 듯 했다.      

시험은 어렵지 않았다(고 분명 느꼈다). 그러나 나는 합격하지 못했다. 합격점에서 2점인가 3점이 모자랐다. 한 문제가 몇 점인지도 모를 만큼 준비가 부족했기에 딱 한 문제 때문에 탈락했다는 변명 같은 건 하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합격선이 높지도 않기에 그 점수를 받아 붙었다한들 스스로 떳떳하지 했을 것이 분명했다.


만큼 공부를 안 한 사실이 부끄러워 합격하지 못한 것이 오히려 잘됐다고 여겨질 정도였다. 그래서 떨어졌지만 좋은 경험이었어.라고 포장하고 싶은 마음조차도 들지 않았다. 그냥 나는 '시험에 조금의 압박을 느꼈고 이상하게 시험은 쉬웠지만 보기 좋게 떨어진 것'만이 변치 않는 사실일 뿐이었다.      


그 날은 무척이지 더운 날이었다. 스크까지 하고 있으니 답답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러나 나는 고집스럽게 끝까지 마스크를 벗지 않그렇게 괜시리 폼만 잡다 나. 대중교통을 이용한 오전과 달리 돌아오는 길은 남편이 아이를 데리고 시험을 치른 학교 앞으로 마중을 나와 주었다.


무척 더웠던 그 날, 눈을 찡그리게 할 만큼 강한 햇빛을 받으며 교문 앞에 서있던 남편과 아이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엄마!"하고 달려오던 아이는 내가 무얼 하고 나온 지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엄마 폼 잡고 시험 망치고 왔어.' 그 날은 알 수 없었지만 혹시 알았다 한들 우리는 같은 의미를 공유할 수는 없었으리라. 그저 낯선 곳에서 엄마를 만 보통의 하루였을 것이다. 혹여라도 내 어린 날, 인적이 드문 언덕길을 따라 주행 연습을 하고 면허시험장에서 시험을 보고 나오며 보여주었던 엄마의 상기된 얼굴같은 모습쯤으로 어쩌면 나를 기억해줄지도 모를 일이다.


내 존재를 확인하는데 덧붙여 아이에게 일본어를 직접 가르쳐주고 싶은 작은 소망으로 벌인 일이지만 올 한해 동안 내 일본어 실력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고 조금도 진전하지도 못했다. 일본에서의 자유여행을 꿈꾸지만 여행 책자나 블로그의 정보 없이는 무엇 하나 제대로 해낼  있다 자신있게 말할 수가 없다.


그저 '끊임없이 시도를 했던 엄마'라는 모습을 남겼을 뿐이라면 조금 괜찮은 변명일까. 뜨거운 햇살 아래서 우리 세 식구가 조우하던 장면, 바로 그 장면 하나때문에 불합격이 남긴 의미를 되새길 수 있다면 유난스럽게 긍정적인 것일까. 먼 훗날 내가 나이 들어 기억에 의존해 게 될 때쯤 나는 시험성적보다 조금 더 빛나는 추억의 장면 하나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당연히 합격증까지 취득한다면 금상첨화겠지만 조금만 더 게으름을 피우고 싶다. 글쓰고 다시 제대로 공부해야지. 또 한 번의 다짐이 맴도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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