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Mommy Hear Me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화 May 03. 2016

Can you celebrate?

마음만으로 충분하면 좋겠어


다른 사람의 생일을 챙기고 기념일을 맞이하는 것이 어려웠다. 내가 생각해도 이상하리만큼 그랬다. 남들 다하듯 즐기고 지나가면 되는 것을 날짜를 기억했다가 선물을 고르고 축하인사를 건네는 일을 잘할 수가 없었다. 


나를 지나쳐갔고 지금도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느낄 서운함을 잠시 들여다보다 일부러 알면서도 모르는 척한다기 보단 갖지 못한 능력의 범위라고 변명해본다.

  

결혼을 하고 보니 양가 부모님 생신에 어버이날까지, 아무것도 못 챙겨도 그것만 다섯 번이었다. 일 년에 반, 두 달에 한 번 꼴로 식사 장소를 물색해 모여야 했고 제사는 둘째 치고라도 설 명절, 추석명절까지 나는 그것만으로 벅찼다.  


연락도 장소 물색도 모두 남편이 하고 실어다 주면 그저 참석하기만 하면 되는 일인데도 그런 작은 수고로움 들을 옆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왠지 힘이 들었다. 

  

살면서 챙길 것도 많은데 무슨 데이는 당연히 빼고 크리스마스도 각자의 생일도 챙기지 말고 지나가자고 했다. 알았다고는 하면서도 혼자서 내 생일을 챙겨주고 결혼기념일을 챙겨주는 남편에게 고맙다만 겨우 할 뿐 선물은커녕 축하카드 한 장 전하지 않고 무심히 지났다.   

   

그래도 생일날 미역국은 끓여주겠지 내심 기대했던 걸까? 미역국 없이 한 해가 가고 두 해가 가자 남편은 이제야 내 고집을 받아들였고 생일 아침 전화해 미역국 먹었냐는 장인께 잘 먹었다고 말할 만큼 이런 상황에 익숙해졌다.


아빠에게 작은 거짓말을 해주는 남편에게 배려에 대한 감사도 없이 착한 딸로 오해하지 않게 진실을 말해주란 충고도 빼먹지 않고 보탰다.


“평상시에 잘 먹고 잘 쓸게. 걱정 마.” 몇 년간 되풀이된 설명에 올해는 생일 축하해 한마디를 담백하게 건넨다. 그래도 케이크라도 해야 하는데,라고 말끝을 흐리지만 나는 정말 그것으로 충분했다.  

    

그런데 나의 충분과는 상관없이 무작정 모른 척할 수만 없는 것이 당장 코앞에 닥친 아이의 생일이었다. 태어난 지 3개월이 지날 무렵 아이는 열이 들끓어올랐다. 백일은 병실 차가운 베드에서 둘이 보냈다. 어쩌면 그 밤들에 내 마음도 함께 차가워졌는지도 모르겠다. 


'기념이고 형식이고 그게 다 뭐람. 아프지만 마 제발.'


돌잔치도 안 해줬고 작년 두 돌엔 케이크가 뭔지도 잘 몰라 넘길 수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갑작스러운 선물에 기뻐하고 다른 사람의 생일 케이크를 불어보며 축하받는 게 뭔지를 아는 나이가 되었다.  


'엄마는 평상시 네 모든 물건을 심혈을 기울여 고르기 때문에 새 물건 전부가 선물이고, 모든 날이 축하라서 어린이날도 크리스마스 날도 따로 선물을 사주지 않을 거야.' 다짐하던 시간들이었다. 


그러니 넘어가는 건 당연한 건데 어쩐 연유인지 아이의 생일만은 그냥 지나치기가 머뭇거려졌다.     

  

그런 머뭇거림은 내가 너무 형식을 무시하고 될 대로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 고민하게 만들었다. 귀찮은 것을 감수하고서라도 할 수 있는 것들은 좀 하면서 살아야 하지 않나 하는 고민. 그러나 결혼식도 단출하게 해 치워버린 마당에 매년 돌아오는 생일이 그 무슨 대수란 말인가란 결론에 다다랐다. 그리고 내 식대로 아이의 '세 번째' 생일을 맞이했다.

     

아이 자체보다도 아이의 생일을 기억해주시는 어른들이 맘에 걸렸던 것 같다. 그래서 아이의 탄생부터 지금까지 매주 성장을 지켜봐주시는 교회 분들에게 약소하게 식사 대접을 하기로 했다. 


직접 만들 엄두는 못 내고 평상시 제공되던 교회 식사를 대신해 준비를 부탁드리자 솜씨 좋은 분들이 나서 주셨다. 돈으로 때운 것이지만 아이의 생일을 핑계로 함께 먹고 즐기며 말로는 못 할 감사함을 전하고 싶었다. 

     

남편은 아이에게 케이크만은 꼭 사주고 싶다고 고집을 부렸다. 생각해보면 아이가 태어난 날은 남편에게 두 사람을 두고 의미가 있는 날이었다. 그래서 촛불 끄기에 한창 재미가 들린 아들이 자기 생일 케이크는 불 수 있게 해주었다. 


맛있게 한쪽씩 갈라 먹고 반은 그대로 옆집으로 보냈다. 냉장고에 들어가 맛없어질 게 뻔한 케이크를 쟁여두고 싶은 생각은 없었던 건데 "아, 생일이구나." 딱 그 한마디가 너무 따뜻했다.   

   

그리고는 마지막으로 자기 생일에 노래를 부를 줄 알게 된 아이의 대견스러운 모습을 동영상으로 찍어 양쪽 부모님께 전송해드렸다. 이젠 여러 번 반복해 시키지 않아도 아이도 나도 원하는 컷을 얻어낼 만큼 능숙해졌다. 이만큼 컸어요. 요란스럽지도 않고 엄마도 피곤하지 않은 고요하게 평상시와 다름없는 날이었다.    

 

마크 샤갈, Birthday (The Museum of Modern Art, New York)


앞으로도 되도록 이 이상으로는 하고 싶지 않지만 아이가 또래 친구들이 생기고 생일잔치에 초대를 받는 경험을 통해 또 학교에서 만난 친구들과 생일을 기념하는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할 때 잠시 망설일지도 모르겠다. 

     

그땐 어떻게 할지 생각을 좀 해봐야 할 문제지만 나 또한 그런 시간이 있었고 그런 바람에 응답받아 보는 경험은 소중하다는 걸 잘 알고 있기에 모른 척하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아이가 무작정 선물을 요구하기보다는 자기 생일은 어떻게 보내고 싶은지 스스로 정해서 요청할 수 있는 아이로 컸으면 하는 바람이다.      


오늘 하루를 살아가기도 바쁜데 그래서 챙기지 못하는 이유를 이렇게 길게 써놓고는 아직 오지도 않은 몇 년 뒤를 생각해 보느라 엄마는 혼자 부산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상상하는 내가 내 아이의 부모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