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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화 May 11. 2016

편리와 편먹은 게으름

악마의 유혹, 물티슈


걸레를 빠는 일은 왜 이렇게 귀찮고 싫은 걸까. 에둘러 질문을 해보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걸레고 뭐고 그냥 청소 자체가 싫긴 하다. 그래도 주부이고 엄마인 나는 늘 필요와 의무감에 끌려 어쩔 수 없이 뭐라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고 만다.


어쩌다 쓸고 닦고 시늉이라도 할라치면 어디서 먼지가 들어와 이렇게 쌓이는지 보통 걸레 하나로는 해결이 안될 때가 많 주변정리에서  대청소가 되어버린다.


청소를  하고 나면 순간적으로 말끔해진 방이 만족스러워 시작하길 잘했다 싶다가도 크기도 모양도 다양한 먼지들이 머리카락과 뒤엉킨 걸레를 보면 금세 한숨이 지어졌다.


'아 이걸 또 언제 빨아. 귀찮아.'

     

결혼 전 있는 대로 늘어놓고 필요한 물건만 쏙쏙 찾아다 쓰고, 내 개인 공간 외에는 일절 치울 생각조차 안 하는 딸을 바라보며 체념과 걱정이 담긴 목소리로 엄마는 물었다. “너, 밖에서 이러는 거 모르지? 나중에 니 집에서도 그러고 살래?”

      

그럴 때면 한 순간의 주저와 망설임도 없이 자신 있게 말했었다. “응, 모르지. 그리고 결혼은 청소 잘하는 사람하고 할 거야.” 다행히도 그 철없는 말이 이뤄지긴 했지만 아이와 붙어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나 몰라라 온전히 맡기기만 한 채 지낼 수 없을 때가 계속 생겨났다.

     

게다가 친정엄마의 바지런함으로 청량한 환경에 익숙해졌던 감각들은 기억에 끌려 무언가 텁텁한 공기를 자기도 모르게 견딜 수 없어했다. 어설프게라도 흉내를 내게 만드는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리고, 결국 또 승질이 팔자가 되어 억지로 시작은 하지만 더러워진 걸레를 보면 한숨이 나는 무한 도돌이표 상태였다.

   

그러다 청소가 힘들어 자꾸 미루게 된다고 푸념하는 내게 누군가 넌지시 팁을 주었다. 물티슈로 대강 보이는 걸 밀어내듯 청소를 하면 된다고. "물티슈요?"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는 “세상에. 안 하고 말지.” “물티슈에 약품 많지 않나?” “깨끗하지도 않을 텐데 저걸 온 집안에 묻혀.” “아우, 쓰레기만 많아지고 그게 머야.” 그 집 청소 도와줄 것도 아니면서 못된 잔소리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었다.       


그런데 어느 날인가부터 그 잔소리들과 타협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시작은 아이가 흘린 음식을 조금 닦고, 닦은 김에 그 면적을 조금 넓혀가면서부터 였다. 세상에 먼지도 잘 밀리는데, 그냥 버리기만 하면 되는데 참 좋네. 걸레를 빨지 않아도 된다니. 먼지와 머리카락이 덕지덕지 붙은 걸레를 바라보지 않아도 된다니 오! 신세계, 그분은 청소계에 진정 선구자였다.  

     

'그래, 맘에 걸리면 조금 좋은 물티슈 사면되지! 물티슈로 몇 번 하다 걸레 빨아서 깨끗하게 싹 한 번 닦아내면 되지 않을까?' '아, 청소포도 잘 되어 있던데. 맞아! 전에 한 번 봤었어. 그냥 지나치지 말고 사 올 걸. 일반 물티슈보다 더 효과가 있으려나. 다음에는 그걸 사볼까?'    

 

게으름이 편리를 만나 악마의 속삭임에 정신을 못 차리다 심지어 영혼이 뺏기기 직전이었다. 그때 원인 모를 죄책감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누가 뭐라 한 것도 아닌데 마음이 불편했다.  

    

실제로 지금 당장 편하고 좋은 것이 결국 해가 되고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알고 있는 것과 실천의 차이가 클 때, 그 갭에서 오는 괴로움, 그 간극을 메꾸고자 발버둥이 치는, 그 가련함이 나를 초라하게 만들었다.  

    

심지어 아이를 돌봐주시는 분도 야외에서 급할 때 빼고는 아이에게 거의 물티슈를 사용하지 않으셨다. 비싸고 면수건만 못하단 이유에서였다. 그런데 난 그걸로 청소를 하겠다니.. 내 아이를 생각한다면서 나는 허울만 엄마였지, 그저 내 불편에 못 견뎌하는 보통 인간이었다. 그렇게 자꾸만 편리함에 노예가 되어가고 있었다.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아. 진짜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아. by 뼛속까지 게으름뱅이, 게다가 집순이


어찌 물티슈뿐 이랴. 화학약품을 걱정하면서 공장에서 어떻게 만드는 지도 모르는 이유식을 사 먹였다. 그래 놓고는 직접 해주는 걸 잘 먹지 않아서, 믿을 만한 회사니까, 그리고 버리고 남겨지는 거 등 따지고 보면 비싸지도 않다고, 심지어 다양한 재료를 골로루 먹일 수 있다고 갖은 변명으로 방어태세를 갖췄다. 


자기변명 늘어날수록 나는 점점   괴로움 휩싸였다. 늦되어도 제대로 커라, 돌아가도   찾아라, 그런 마음으로  싶다고 생각하면서, 행동 생각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아이가 마의 이중 알아채는  시간문제였다. 겁이 났다. 물티슈를 쓴다고 당장  일이 나는 것도 아니고 대신  투를 벌인다고 누가 상주는 것도 아닌데 그냥 그런 마음 들었다.  아이를 키우며 앞으로 얼마나 많은 타협을  될까?


아무리 깨닫고 각성해도 한동안 물티슈에서 찾은 그 편리함을 당장 끊지는 못했다. 성능이 좋고 휴대가 간편한 핸디형 청소기를 새로 장만하고, 가볍고 건조가 잘 되는 기능성 걸레를 찾아내어 청소의 효율을 높여보고자 조금씩 노력을 하고 있지만 아직도 급할 때면 물티슈부터 찾고 만다. 연히 친정엄마처럼   아직 꿈도 못 꾼다.


,  각성들이 하나 둘 모여 불편하더라도 원하는 대로   있는 용기에 닿길. 떨어질 기미라도 보이는 날엔 구입 즉시 보물이라도 되는 양 모셔  관성에서 자유롭길. 이런 바람들 모으고 모아 가엾은 발버둥에도 나름 의미가 있길 기도 뿐이다. 


언젠가 물티슈가 '쟁여두는 물품 1위'에서 내려서는 날이 오긴 올까? 그 날이 멀지 않은 미래이길 진정으로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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