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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화 May 12. 2016

속마음과 다른 글이 써지는 이유

나도 엄마를 하고 있네요


아이를 키우는 일이 너무 지치고 힘에 부쳐서 “나는 엄마가 되지 말았어야 해.”라고 한탄한 적이 한두 번 이 아니다. 또 “나는 모성애가 결핍된 인간인가 봐.”라고 낙담했던 적도 한두 번이 아니지만 아이를 키우다 보니 다행히 모성애는 선천적으로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 아님은 알게 되었다.     


회사나 밖에서 사람들을 만나도 되도록 아이 얘기를 많이 하지 않으려고 한다. 나는 일상이고 예뻐서 하는 말이지만 남들에게는 지겨운 말일 수도 있고 ‘네 눈에만 예쁠 뿐’이란 거부의 느낌을 받고 싶지 않아서이다.   

   

“아이 있는 사람 같지가 않아요.” 어쩌다 가끔 듣는 이 말도 실제 칭찬인 걸 알지만 말한 사람의 의도와 전혀 상관없이 내게는 가시가 되기도 했다. 엄마의 포근함도 없고 내 관리한다고 아이에게 다정하지 못했던 과거의 나를 소환해내어 또다시 자책하는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 역시 난 엄마가 되지 말았어야 해.’     


그러나 허울뿐인 엄마라도 가끔 아이에 대해 먼저 궁금해해주고 안부를 물어봐주는 지인들에게는 소소한 에피소드들을 신이나 전하기도 한다. 어쩔 땐 지나치게 싱글벙글 흥을 주체하지 못해 말해 놓고는 민망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너무 웃기지 않아요? 걔는 대체 왜 그런데요. 하하하.”    

 

그럴 때마다 미혼에게든 아이를 갖고 싶어 하는 예비 부모에게든 아이 키우는 맛에 대한 부러움을 받기도 하는데 이건 어디까지나 단면에 대한 감상이자 환상이라 나는 상대방이 당황할 정도로 단호하게 말하곤 한다. “결혼은 해도 아이는 낳지 마요. 결혼도 안 할 수 있으면 혼자 살고요.” 상대방의 뜨악스러운 표정엔 상황에 따라 적절한 답으로 부연 설명하기도 한다.  

    

그러나 상대방들도 만만치 않다. 가진 자의 여유라는 둥, 그래도 있는 게 낫지. 얼마나 예뻐, 좋으면서 그러는 거죠? 절대 내 말에 동조하지 않는다. 정말 몰라서 그러는 건지 알고 싶지 않은 건지 내 말을 제대로 들어주지 않는 사람들로 인해 갑자기 마음 한편이 갑갑해진다. 


왜냐하면 엄살도 투정도 아니고 마음속 깊이 우러난 진심이기 때문이다. 이런 엄마 마음을 나중에 아들이 알게 되면 서운할까? 이런 생각을 한 엄마가 미울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쓰는 글들은 어찌 보면 아들과 이렇게 복작복작 열심히 살아가고 있습니다로 비쳐 아이가 없는 사람들에게는 아이를 바라게 하고, 결혼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결혼을 한 번쯤 고려해볼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할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난 말과 행동이 다르고 글을 거짓되게 쓰는 사람일까? 말로만 힘들다 하면서 실제로는 너무 행복한 것일까? 행복하면서도 글로만 어렵다고 쓰고 있는 것일까? 어떤 게 맞는 것일지 나 자신도 헷갈리지만 차선의 답이 있지 않을까 싶었다.  

    

아이는 낳지 마세요, 그런데 낳을 거면 잘 키우세요. 가 가장 정확한 마음인 것 같다. 아이는 맨날 아프고 어른들에게 버릇없이 구는 모습을 제대로 꾸짖지도 못해 너무 부끄러운 말이지만 그게 나의 변치 않는 답임에는 틀림이 없다.

      

나는 결혼을 하지 않을 수 있다면 피하고 싶은 사람이었다. 혼자가 편하고 뚜렷한 계획도 없이 그냥 한 세상 잘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은 환상 속에서 뜬구름 위를 걷던 사람이었다. 

     

이별 노래에 몇 시간이고 취해있고 소설 속 이야기에 갇혀 흐느적 감성 글을 써 젖히던 감수성 최고조에 도달해 있던 사람이었다. 게다가 게으르고 이기적이었다. 자고 싶을 때 자고 먹고 싶은 것만 먹으며 내가 번 돈은 나한테 다 쓰는 게 미덕이라 믿었던 그런 사람.  

   

그래서 엄마가 되면 안 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때 맞춰 끼니 주고 쾌적함을 제공하고 마음 읽어주고 사랑주기가 너무 힘들고 괴로웠다. 그래서 그냥 편하고 자연스럽게 엄마가 되지 못하고 엄마 되기를 ‘직업 구하듯’ 노력으로 해내고 있다. 특정 직무를 수행하는 직업인이 되기 위해 자격증을 따고 관련 서적을 공부하듯이 말이다. 

     

육아서적을 읽고 좋은 부모라 여겨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웃거리며 배우고 닮고 흉내 내려고 애쓴 시간들이 나를 만들었다. 열 단계를 거쳐서 정성을 쏟는 일들을 모두 생략하고 세 단계 만에 끝내면서 내 식으로 풀어가긴 하지만 어쨌든 엄마로 살아가고 있다.  

    

한 때는 막연하게 아이는 셋 정도 있으면 좋겠다 싶었다. 조금 현실을 직시하고 나서는 남매나 형제도 좋을 것 같았지만 육아의 세계에 발을 디디고 보니 둘셋은 언감생심 꿈도 꿀 수 없는 일, 진짜 하나 키우기에게도 매일을 허덕이고 있다. 실제로 생각 없이 둘째는 안 낳느냐고 물었던 사람들에게는 심심한 사과의 말을 전하기도 했다. 


누군가를 위해 아이를 낳지 말라는 말이 혹은 아이를 낳아서 잘 키웠으면 좋겠다는 말이 어쩌면 너무 큰 오지랖이고 건방진 말일 수도 있겠다. 


다만 내가 고민했던 시간, 정보를 찾아 헤매던 그 시간에 나에게 한 줄기 빛 같았던 누군가의 소신에 기대었듯 누군가도 나의 오지랖에 기대어 한걸음 디딜 힘이 되길 진심으로 바란다. 그 바람으로 속마음과 조금 다를 수도 있는 글들을 열심히도 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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