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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화 Aug 23. 2016

그에게 나는 어떤 여인인가요?

오베라는 남자(2015)


좋은 영화 한 편을 만났다. 인생을 파노라마처럼 보여주는 영화는 '좋다'라는 말 이외에 다른 말로 크게 수식할 게 없을 정도로 마냥 좋았다. 그리고 영화를 보고 잠들기 전에도, 그다음 날에도 한 장면 한 장면 곱씹으며 그 의미를 다시 반추해보는 즐거운 시간을 내게 선사다. 그래서 장면 장면마다 이 영화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너무나 많지만 나는 무엇보다 '오베'라는 남자가 이 영화의 주인공일 수 있도록 만든 그의 와이프 '소냐'의 존재 대해 말하고 싶다.


깐깐하고 꼼꼼한 오베의 성격을 보여주는 듯한 장면으로 시작하는 영화를 보며 무방비상태로 깔깔거리는  모습에  영화를 사랑하겠구나 싶었다. 그의 행동 하나하나가 이해되고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라고 고백하는 것은 조금 창피한 일이지만- 그의 그런 까다로움이 싫지만은 않았다. 어느 정도의 규율과 규칙을 잘 준수하고 따박따박 따져가며 살아가는 일은 최소한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줄 만큼의 나쁜 행동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의 까칠함이 다른 사람에게는 가끔 불편하게는 느껴질 몰라도.


그런데 오베의 과거를 회상하건대 결코 처음부터 이렇게 괴팍하기만 사람은 아니었다. 순하고 조심스럽기만 하던 남자는 왜 이렇게 변했을까?

주인공의 모습은 사랑하는 아내와 충실하게 가정을 일구는데만 온 힘을 쏟은 한 남자가 모든 것을 잃었을 때 세상을 향해 어떻게 삐뚤어질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듯하다. 그는 왜 그토록, 그것도 죽은 아내를 따라 자신을 저버리고 싶을 만큼, 와이프를 사랑했을까.


"그녀를 만나기 전 난 결코 살아있던 게 아니었소."


그의 말이 모든 것을 말해준다. 처음으로 자신을 온전히 믿어주고 자신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어준 여인을 사랑하지 않을 남자가 또 있을까. 그런 면에서 남자들의 순도 높은 순정을 칭송해마지 않는다. 그런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건 여자에게 있어 '최고의 사치'라고 했던 책의 한 구절도 떠올랐다.


사실 들여다보면 둘의 결혼이 가능했던 건 오베의 선택보다는 그녀의 선택이 더 우선한다. 착하고 성실한 남자, 오베를 선택한 건 바로 그런 남자를 알아볼 수 있는 '그녀의 안목'이었다.  그녀의 안목이란 어떤 것들로 채워졌을까. 오베와 소피가 처음 만나는 장면에 주목하면 답이 나온다.


소피는 기차에서 곤하게 잠든 오베를 깨우지 않고(배려), 표 검수 때는 곤란한 그를 위해 돈을 내어 준다(연민). 자연스레 책을 읽고 있었고(자기계발) 경계심 없는 밝은 표정 웃는 얼굴로(긍정) 자연스레 대화를 이끌어갔다(포용). 3주 뒤 돈을 갚기 위해 나타났을 때 그녀는 오베가 하루 이틀 기다린 게 아니라는 걸 바로 알아차린다(헤아림). 레스토랑에서 오베의 대답에 키스를 하던(공감) 그녀의 행동에서 상대방의 용기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순)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의 겉모습을 보고 그를 판단했다면 쉽게 나올 수 없을 행동이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투자를 한 것이 아니다. 머리 쓰지 않고 보여준 선심이자 진심이었다.  아, 세상에 진심이 통하는 순간만큼 완벽한 전율이 또 있을 수 있을까?그런 마음 자신에게 내어  것을  오베는  특유의 성실함으로 그답게 사랑 보답한다.

죽은 아내가 그리워 꽃을 사들고 그녀의 묘비 옆에서 자신의 일과를 읊조리며 쉬었가는 오베의 모습은 그리 아름다운 광경은 아닐 모른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자연스러웠을 그런 충실한 결혼생활을 해왔다는 사실이 내게는 이루 말할 수 없이 아름다운 모습으로 다가왔다. 내가 하나를 주면 하나를 되돌려 받는 사랑이 아닌 서로가 서로에게 속한 삶에 녹아 흐르는 사랑이라서 가슴이 찡했다.


소피와 오베가 손을 잡는 장면이 여러 번 나온다. 소피가 검지 손가락을 내밀면 오베가 그걸 감싸 쥐고 서로의 손은 바로 단단하게 얽힌다. 흡사 엄마와 아기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다른 점은 아이가 엄마의 손가락을 잡고 일방적으로 의지하는 게 아니라 둘은 서로에게 의지하고 의지가 되어주는 존재였다는 사실이다.

한 번 사는 인생, 소피처럼 자기주도적이고 내 남자를 빛나게 완성시켜주는 그런 멋진 여성이 되어보는 건 어떨까. 우연한 선택으로 내 인생의 손꼽을 만한 행운으로 여겨지는 '스톡홀름 여행'을 기억나게하는 스웨덴 작품이라는 사실에 왠지 모를 더한 공감이 일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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