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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화 Aug 22. 2016

(서평)믿는 만큼 자라는 아이들

2014년 10월 기록


‘이적’이란 가수가 있다. 데뷔곡 ‘아무도’를 발표하며 번개머리패닉이란 그룹명으로 유명세를 탔다. 이후 ‘달팽이’, ‘왼손잡이’ 등의 노래로 더 알려졌지만 당시 노래보다 더 큰 이슈는 그가 서울대 출신이라는 사실이었다. 실험적인 형식과 사회문제를 다룬 그의 가사들은 소위 ‘서울대 출신’이었기에 먹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그의 학력은 대단한 화제를 모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이후 이적의 행보는 사실 나에게 큰 관심사는 아니었다. 다만 그가 결혼 이후 발표한 ‘다행이다’라는 곡이 너무 아름다웠기에 그를 다시 본 계기가 되었을 뿐이었다. 막연히 똑똑한 사람이 따뜻하기까지 하구나 싶었는데 아이를 출산한 지 얼마 안 된 시점에 눈에 띈 신간을 살펴보니 저자가 '이적의 어머니'라는 소개가 있었다. 이적의 어머니? 순간 참 많은 생각이 오갔다. 역시 누군가의 성공은 어머니를 빼놓고 얘기할 수가 없구나.

     

이미 20년 전 삼 형제 모두를 서울대에 보내고 유명할 대로 유명해져 책까지 냈던 그녀는 이제 여섯 손주를 키우며 <다시 아이를 키운다면>이란 신간을 냈다. 할머니의 마음으로 쓴 책 제목은 여러 면에서 마음을 끌었는데 가정법 표현이 특히 그랬다. 초보 엄마들의 조급증과 서툴음이 맞물려 가뜩이나 힘든 육아가 더 힘들어진다는 일견에 동의한다. 그래서 조금 여유롭고 넉넉한 마음으로 아이를 키워야겠다고 다짐하면서도 그게 잘 안된다고 느껴지기에 자, 조부모의 마음을 배우고 두루뭉술하게 아이를 키워보자 싶었다.     


하지만 나는 지금 당장의 신간보다는 20년 전에 발간되었던 그 책이 더 궁금했다. 읽더라도 <믿는 만큼 자라는 아이들>을 먼저 읽고 신간을 보겠다는 나름의 순서를 정한 것이다. 할머니의 마음보다는 엄마의 역할을 아는 게 우선이라고 할까. 그런데 엄마의 역할이라 하기엔 이 분 뭔가 좀 독특하시다. 삼 형제에게 누누이 너희 인생은 너희가 사는 것이라며 아이들을 스스로 크게 했다 하니 뭔가 좀 얻을까 싶었던 엄마들 다들 놀라지 않았을까? 지금의 나처럼 말이다.  

    

초등학교 입학 전 한글을 떼 주지 않은 건 기본이고 촌지를 바라는 선생님에게 고집스러울 정도로 찾아가지 않았다고 한다. 모르는 건 모른다고 말해라 가르쳤더니 수업에 방해된다고 엄마한테 가서 물으라 했다며 아이는 서러워 울었다. 그런 아이에게 하나를 더 외우게 하기보단 그 상황을 설명하고 이해시켰다고 한다. 아무리 신념이 있더라도 내 아이가 호되게 시련을 겪게 되면 숙이고 들어갈 법도 한데 그 단단함과 내공이 대단하다 싶었다.

      

너무 훈훈해서 계속 읽고 싶고, 읽는 내내 더 많은 에피소드를 듣고 싶은 생각이 절로 들었다. 다음 장이 궁금할 정도로 글 솜씨가 좋은 저자는 당연히 다음 책도 기대하게 만든다. 20년 만에 나온 후속 작을 기다림 없이 읽을 수 있다니 정말 행운이 아닐 수 없다.


이적이 중3 때 엄마 생일에 써준 <엄마의 하루>라는 시가 있다. 이 시는 전에도 어디에선가 본 적이 있는데 다시 읽어도 동급의 놀라움을 선사한다. 아들에게서 공감받는 여성의 삶. 이 정도면 과하게 훌륭한 삶 아닌가. 나도 아들에게서 엄마로서 존중받는 삶을 살고 싶다.      





엄마의 하루              

                                                             이동준 (이적)     

습한 얼굴로 am 6:00이면

시계같이 일어나

쌀을 씻고 밥을 지어

호돌이 보온 도시락 통에 정성껏 싸

장대한 아들과 남편을 보내놓고

조용히 허무하다      


따르릉 전화 소리에

제 2의 아침이 시작되고

줄곧 바삐 책상머리에 앉아

고요의 시간은 읽고 쓰는데

또 읽고 쓰는데 바쳐

오른쪽 눈이 빠져라

세라믹펜이 무거워라  

    

지친 듯 무거운 얼굴이

돌아온 아들의 짜증과 함께

다시 싱크대 앞에 섰다

밥을 짓다

설거지를 하다

방바닥을 닦다

두부 사오라 거절하는

아들의 말에

이게 뭐냐고 무심히 말하는

남편의 말에

주저앉아 흘리는 고통의 눈물에

언 동태가 되고

아들의 찬 손이 녹고      


정작 하루가 지나면

정작 당신은

또 엄마를 잘못 만나서를 되뇌이시며

슬퍼하는


슬며시 실리는

당신의 글을 부끄러워하며

따끈히 끓이는

된장찌개의 맛을 부끄러워하며    

  

오늘 또

엄마를 잘못 만나서를

무심한 아들들에게

되뇌이는     


'강철 여인'이 아닌

'사랑 여인'에게

다시 하루가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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