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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화 Aug 09. 2016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우린 늘 고민이 많고 때론 누군가 필요하다


미루고 미루던 책을 드디어 읽었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백야행, 화차, 용의자 X의 헌신, 비밀 등 몇 권의 책으로 스스로를 팬이라고 자청하게 만들었으나 최근 몇 년 간 크나큰 실망을 안겨주기도 했다. 그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그의 작품을 섭렵하는 것이 의무인양 그의 이름이 붙은 책이라면 우선 사고 보는 것, 그리고 맘에 들지 않아도 끝가지 읽고 보는 것이 나름의 의리라면 의리였는데 나도 모르는 사이에 피로가 쌓인 것도 사실이었다.      


이 책이 나왔을 무렵 나는 '그저 그런 책'이 또 한 권 나왔나 싶었고 모르는 사람 대하듯 참 부지런한 작가네라고 평하며 읽지 않고 그냥 지나쳤다. 아니 그러려고 했고, 정말 그러고 싶었다. 아끼고 아껴서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니라 피해서 여기까지 온 것이 맞는 말이었다. 그런데 서점에 들러보면 도무지 베스트셀러 코너에서 내려오질 않고 있는 이 책이 자꾸만 거슬렸다. 시선을 피해도 책은 유유히 그 자리에 머물며 읽지 않고 배길 수 있는지 나와 씨름을 하는 듯했다.        


고민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나미야'라는 잡화점을 운영하는 할아버지는 그들의 고민을 읽고 그 고민에 대해 답신을 해준다. 아무리 시시하고 별 것 아닌 질문에도 성심껏 응해주시는 할아버지는 입소문을 타고 유명인사가 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남들에게는 쉽게 말 못 할 고민거리를 안고 할아버지를 찾는다. 소설은 몇 가지 고민거리와 그 해결 과정으로 진행되고 그 고민들이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어떻게 영향을 끼치고 미치는지 밝혀지며 쉽고 재미있게 풀려간다.

      

나도 고민이 있다고 말해볼까. 소원이 있다면 무엇을 말해볼까. 이 지긋지긋한 돈벌이에서 벗어나게 해주라고?(이 질문은 순전히 '하루미'의 행운에서 시작된다.) 다행히 나는 일해야 하는 수고스러움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고 기본적으로 하고 있는 일도 꽤 만족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어떤 고민이 있고 어떤 바람이 있으며 과거의 나는 어떠한 생각들을 가지고 살아왔는가에 대해 찬찬히 음미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옮긴이 또한 '옮긴이의 말'에서 '누구에게나 자신 있게 추천할 수 있는, 대중적이면서도 깊이를 잃지 않는 명작을 ‘드디어!’ 써냈다는 느낌이다'라는 말로 내 마음을 대변했다. 정확히 그런 느낌이다. 많이 써서 소모적인 것이 아니라 많이 쓰면 그만큼 노련해지고 단단해진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닫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마음속 움츠리고 있는 기억을 떠올려 불편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언젠가 진심을 담아 마음을 다해 전한 조언이 상대에게 제대로 닿지 못하고 괜한 오지랖으로 변질되어 되려 나를 아프게 한 경험이 있다. 그래서 입 닫고, 글 쓰는 것조차 조심스러워하며 그렇게 지낸 시간이었다.


하지만 '나미야'의 할아버지를 보며 다른 사람을 진심으로 대하고 작은 것에도 정성을 기울여주면 누군가에게는 반드시 기적이 되어 스며든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알게 되었다. 그것이 조금 시간이 걸리고 내가 알지 못하는 순간이더라도 그 사람 인생에는 없어서는 안 될 기억으로 남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내가 해준 것을 기억해 스스로의 공을 드높이고 싶은 생각은 없었지만 내가 해준 과거의 말들이 그 사람들에게 미쳤을 영향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어 좋았고 다시 그때로 돌아가더라도 내 선택은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에 위로를 받았다.


기억하고 싶은 구절로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까지 믿어야 합니다.’를 꼽고 싶다. 내가 선택한 것, 내가 행하려는 모든 것에 대해 심사숙고한 뒤 내린 결정에 대해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믿음, 그 믿음 없이는 어떤 것에도 도달할 수 없다. 인생은 그 숨겨진 의미를 하나씩 발견해나가는 여정이자 발견의 즐거움을 누리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내 뒤로 펼쳐진 내 지난 발자취들에 대해 짚어보게 해 주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다시 한 번 점검할 수 있게 해주었다는 점에서 의미 있다. 대단할 것도 없다. 지금처럼 소박하게 인생의 진리들을 놓치지 않고 하나하나 실천하며 살아가면 될 일이다.

  

이 책의 에피소드들을 완성시켜주고 '잡화점''환광원'의 연결고리로 대변되는 두 사람의 크고 지고지순한 사랑이 녹아있는 것이 제일 좋았다. 사랑의 힘을 믿고 싶다, 고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관련글. 매거진 [독특할 것 없는 리뷰리뷰] 그는 나에게 사랑을 알려주었다.  https://brunch.co.kr/@newdream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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