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추리작가 히가시노 게이고는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우리나라에서는 추리소설의 대부로 자리매김했을 정도로 아주 유명한 작가이다. 대부분의 소설이 드라마나 영화화되어 그 작품성 또한 인정받았으며, 가장 유명한 작품 중 하나인 동명 소설 ‘용의자 X의 헌신’도 마찬가지로 영화화되었다.
인상 깊게 읽은 책이었기에 한국에서 개봉 당시 일본 영화(용의자 X의 헌신, 2008년)는 바로 보았고, 한국의 리메이크 작품(용의자 X, 2012년)은 최근 보게 되었다. 비슷하지만 다르기도 한 두 영화 사이의 차이점이 매우 흥미로움을 준다.
소설을 기준으로 줄거리를 요약해보자면, 모녀(야스코와 딸)가 살고 있는 한 연립주택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나게 된다. ‘야스코’가 이혼한 자신에게 찾아와 돈을 갈취하는 전 남편을 살해한 것인데, 사실 우발적이었다. 그렇다고 딱히 실수라고 할 수 도 없었다. 게다가 살인을 ‘없었던 것’으로는 더더욱 할 수도 없다. 어쩐단 말인가?
갑자기 어려움에 처한 모녀에게 평소 눈인사 정도만 나누던 고등학교 수학교사 ‘이시가미’가 찾아와 사건에 관여하게 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겉으로 보기에 평범하고 소심해 보이기까지 한 그는 사실 두 사람을 지켜보며 엄마 ‘야스코’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키우고 있었다.
이를 전혀 알지 못하고 있던 모녀에게는 그의 도움도 지시도 모든 것이 어리둥절하고 혼란스러울 뿐이었다. 그러나 지금 당장 그를 믿고 따르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표면적으로 이 책은 추리소설의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만약 사랑의 다른 이름이 ‘희생’이라 말할 수 있다면 그의 놀라운 사랑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책으로, 실제로는 분류가 조금 달라져야 한다는 생각도 든다.
'이시가미'가 끝까지 지켜주고 싶었던 옆집 모녀, 딸아이의 웃는 모습이 예쁘다.
일본 영화가 개봉했을 당시를 돌이켜보니 꽤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초반 모녀에게 닥친 시련을 극화하고 몰아치듯 진행되는 묘사가 아직도 생생히 기억될 만큼 무척 인상적이었다.
글로 읽는 것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는데 내가 상상한 것이 바로 저 장면 그대로인 것 같기도 하고, 그 장면을 영화관에서 다시 글로 읽는 것 같기도 한 오묘한 기분이 들었다. 크게 가공하지 않는 촬영 덕에 그 장면을 시각화해 보는 것만으로도 영화관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로 먼저 읽은 작품을 영화화된 작품으로 보고 나서 만족한 작품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이 정도면 참 잘 살렸다 싶기도 했다. 게다가 주인공 역할을 맡은 ‘후쿠야마 마사하루’와 ‘시바사키 코우’는 드라마의 성공에 힘입어 다시 만난 콤비로 그 조화로움이 자연스러웠고 배역 소화에는 무리가 없어 보였다.
다만, 이 작품에서 도드라지고 주목받아야 할 사람은 사건을 해결하는 물리학자(일본 영화의 주인공)가 아니라 모녀에게 헌신하는 ‘용의자’ 자체인데 뭔가 주인공이 바뀐 것 같은 느낌이 들어 그 부분이 못내 아쉬운 점으로 남았었다.
그렇게 몇 년이 흘러 영화가 한국에서 리메이크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소설이 또 한 번 인정받는구나.' 싶어 내심 기쁜 마음이면서도 이미 너무 많은 노출이 된 상태라 새로운 작품으로서의 큰 매력이 없어 보였다.
그러다 내가 원한 부분. 바로 ‘용의자 X’가 주인공이란 사실이 끌렸고, 그 역할을 맡은 류승범의 연기가 궁금해서 결국 찾아보게 되었다. 다 아는 줄거리에 핵심 장치까지 노출된 상태에서 감독이 가질 수 있는 선택지는 몇 개나 되었을까?
아주 어려운 결정이고 과정이었을 거란 생각이 든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감독이 선택한 카드는 바로 '인물의 감정선 유지'가 아니었을까 하고 조심스레 예상해본다. 그렇게 영화는 어둡고 우울한 분위기 속에서 매우 느리고 정성스럽게 배우의 감정 선을 따라가 준다.
용의자 X를 연기한 배우 류승범, 어울리는 배역이었다기보단 소화를 잘한 배역이었다.
용의자와 모녀가 사는 아파트 입구 앞, 비가 내리고 두 사람이 아무 말 없이 지나치는 장면은 소설을 읽었을 때 느꼈던 슬픔을 기억나게 만들었다. 류승범이 다분히 캐릭터적이고 극단적인 배역뿐 아니라 이렇게 차분하고 몰입하게 만드는 배역도 충분히 소화할 능력이 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듯했다.
두 영화 중 어느 작품이 더 낫다 아니다를 논하는 것은 의미가 없을 것이다. 일본 영화는 자국 작품을 영화화하는 데 있어 이미 공감이 된 부분은 배제한 채 스토리를 풀어나가는 전개 방식에 중점을 두었을 것이고, 한국에서의 개봉작은 한국 관객이 원하는 부분을 만족시키기 위해 감독의 의도를 좀 더 가미하여 같은 소재를 가지고 전혀 다른 작품을 탄생시켰기 때문이다.
한 권의 소설이 다른 문화를 가진 양국에서 개봉된 재미를 느끼는 복잡 미묘한 감동은 쉽게 오지 않을 것 같다. 쉽게오지 않을 기회에서 세 번 모두 각각의 감동마저 즐길 수 있었으니 더할 나위가 없는 경험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두 영화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두 작품 모두에 관심이 가고 볼 기회가 있다면 꼭 일본판을 먼저 보라고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