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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화 Jun 14. 2016

순수한 감정이 아름답다

애니메이션<언어의 정원>


초록의 싱그러움을 화면 가득 담은 채 시작하는 영화는 보자마자 탄성을 자아냈다. '무슨 화면이 이래?' 자연스러운 젖어듬을 방해하기도 하는 탓에 영화 리뷰를 당분간 하지 않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머릿속은 벌써 쓸 말들을 줄줄이 읊어내고 있었다. 


러닝 타임 46분. 아이를 재우고 무언가 하다 잠들기 딱 좋은 시간이다.


일부 장면은 사진을 가지고 작업을 하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실사와 닮아 있었다. 좋은 장면을 찍어 작화에 밑그림으로 사용하는 정도가 아니라 무언가 새로운 기법을 도입한 것만 같았다. 잘 알지 못하고 쉽게 설명할 수도 없지만 뭔가 눈에서는 낯선 그런 장면들이 계속해서 연출되었다. '와, 예쁘다.' 


주인공 '다카오'는 비오는 날 우연히 찾은 공원 벤치에서 초콜렛을 안주삼아 맥주를 마시는 '유키노'를 만난다. 수업 땡땡이 치는 건 '비오는 날의 오전으로만' 정한 다카오는 왠지 모르게 그녀에게 눈길이 향하고 자꾸만 궁금해지는 자신을 발견한다.  


장마가 시작되었고, 둘은 계속해서 만난다.


구두 만드는 일을 하고 싶다고, 하고 싶은 일을 자기도 모르는 사이 고백하고 마는 다카오를 보며 사람들은 어떤 시점에 저런 말을 하게 되는 걸까, 15살 학생과 직장을 갖고 어른으로 살아가는 여자 사이에선 어떤 교감이 오갈 수 있는 걸까, 계속 궁금해졌다. 

마카오에게서 어른의 성숙함이 묻어난다고 느낀 건 하고 싶은 일을 일찍 찾은 때문인지도 모른다

우연한 만남은 설레임과 기대를 지나 이젠 비가 오면 꼭 가야하는 의무처럼 되어버렸다. 행복한 의무, 그리고 기다려지는 의무, 은밀하고 아름답다. 서로에게 필요가 되어 주었고 그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지금이 가장 행복한 시간인 거 같아.' 짠한 고백이 이어졌다.


어쩌면 행복을 느끼는 그 순간이 가장 불안한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은 행복이 아닐 수도 있는 것이기에.


'어느샌가 제대로 나아갈 수 없게 되었어.' 유키노도 마음을 열었다.


그냥 툭툭 던지는 말들로 스스로 위안을 받고 있는 건 아닐까? 해결해주지 않아도 그저 들어주는 사람이 필요한 걸지도 모른다. 


이 영화를 보는데 문득 '더 리더' 라는 영화가 떠올랐다.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고 늘 다시 보고 싶은 영화다. 순수한 여주인공들과 현실적인 남자주인공의 조합이라는 사실도 닮았다. 


너무 슬퍼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던 눈빛이 떠오르는 순간 유키노가 소리 쳤다. 그리고 둘은 울었다. '더 리더' 를 보았을 때의 비슷한 전율을 느꼈다. 나이, 혹은 그게 무엇이든 누굴가를 규정할 수 있는 것 따위로 두 사이를 판단하려고 한다면, 그건 안되는 일이란 걸 다시 한 번 느꼈다. 그리고 이 장면은 정말 성우 목소리가 다했다. 

비가 내리는 가장 아름다운 장면을 볼 수 있을 거라고 감히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제목만 보고는 생각지도 못한 전개였다. 그저 시간을 때우기 위해 그 짧은 시간을 활용하고자 한 것 뿐이었는데 나는 그 자리에 주저 앉을 것 같은 기분이 되어 한동안 자리를 떠날 수가 없었다.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고 너무나 큰 사랑을 하는 사람들. 세상을, 사람을, 삶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는 나이에 봐서 다행인 영화인 것 같다. 여름이 끝났다. 어떤 것도 알 수 없지만 세상은 돌아가고, 사람은 살아가고, 삶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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