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화 Sep 13. 2016

다른 사람의 행복에 시선이 머물 때

일드 아름다운 이웃 & 사키 2015년 5월 기록


일본어 공부를 하며 듣기에 도움을 받아볼까 싶어 보게 된 드라마가 있다. 정말 우연히 알게 된 <아름다운 이웃>이란 드라마를 통해 오랜만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일드를 몰아봤다. 대화 자체로 이어가는 드라마라기보다는 상황과 분위기로 묘사되어 집중도를 높였고, 짧은 단답형 일본어들이 주를 이뤄 학습에 도움이 되었다. 


<사키>라는 제목으로 시즌2도 만들어졌는데 사키는 바로 <아름다운 이웃>의 주인공 이름이다. 그 이름 하나를 온전히 타이틀로 한 편의 드라마가 만들어졌다는 사실이 놀랍고 기대가 되어 함께 몰아보게 되었다.  


아름다운 이웃 (총 10화) 

: 2011년 1분기 드라마, 후지 TV 방영


아들을 잃은 '사키'라는 여성이 자신과 비슷한 조건의 한 여성에게 계획적으로 접근하여 그 가정을 통째로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싶어 하는 서스펜스물이다. 소재가 소재니만큼 한국 아침드라마의 '고급화 버전'이라고 폄하되기도 하는데 그러기엔 조금 안타까운 마음이 들 정도로 흡입력 있게 잘 만든 드라마라고 생각된다. 무엇보다 드라마 축이 되는 세 남녀 배우의 감정연기가 대단하다 싶었다.   


행복을 가꾸며 사는 여자, ‘에리코’가 있다. 행복은 그냥 주어지는 것도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다만 남과 비교하지 않고 내가 가진 것 안에서 오롯이 그 자체에 집중할 때 자연스레 내 곁에 머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만족과는 다를 수 있다. 많은 것이 충족되어도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소명감처럼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최선을 다하던 여자의 행복이 다른 누군가의 시선에 들어왔다. 자신이 갖지 못한 것, 아니 예전엔 자신도 누렸으나 사고로 모든 것을 잃게 된 후 행복해 보이는 그 여자의 것을 그대로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싶다. 남편도 아이도 가정이라는 울타리까지 통째로. (아, 이건 무슨 놀부 심보란 말인가?)


‘사키’는 아이를 잃었다. 겪지 않아도 될 고통과 불행을 겪었다고 해서 남의 행복을 통째로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자 하는 그런 사악함이 면죄가 될 수 있는 건 아니다. 동정은 할 수 있으려나. 하지만 어느 순간에도 사키를 욕하지 않고서는 드라마를 볼 수 없을 정도로 사키는 사람의 마음을 잡고 뒤흔들며 가지고 논다. 


돈을 빼앗기고 몇 대 얻어맞았다 한들 이렇게 분하지는 않을 것 같다. 유약해 보이는 가정주부의 모습에서 ‘사키’의 장난질에 분노하고 오열하며 변화되는 ‘에리코’의 모습은 정말이지 공감을 넘어서 보는 사람 누구라도 그 자체에 몰입할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난 연기 내공을 보여주고 있다.


총 10화인 드라마는 9회까지도 긴장감을 늦추지 않고 진행되다 대부분 드라마가 그렇듯 최종회의 역할을 충실히 하며 그 간의 상황을 대화로써 정리하고 숨겨두었던 장치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단순한 부러움을 넘어서는, 그럴만한 이유와 사정이 사키에게 있었다고 나름 반전을 제공하지만 그래도 9회까지 치밀었던 화가 쉽게 가라앉지는 않는다.  


사키 (총 11화) 

: 2013년도 1분기 드라마, 후지 TV 방영


 <아름다운 이웃>의 후속편인 <사키>는 <아름다운 이웃>에서 ‘나카마 유키에’가 연기한 ‘사키’와 동일한 인물로 종합병원의 소아과 간호사로 일하면서 환우 아동들에게는 천사처럼, 주변 남성들에게는 이상형으로 그려지는 여성이다. 


어렸을 적 가난으로 버려졌던 기억의 영향일까. 실제로 그녀는 자신이 겪게 된 불행을 그 몇십 배로 갚아버리는 무서운 여자다. 시기적으로는 아름다운 이웃이 먼저 나왔지만 스토리상으로는 ‘사키’가 그녀의 과거를 그리고 있어 순서는 바꿔보아도 될 듯하다. 개인적으로는 아름다운 이웃을 먼저 본 것이 임팩트가 컸다.


5회까지는 밑밥을 뿌리며 조금 지루하게 시작되지만 사키를 의심하는 주변 인물이 생기면서 좀 더 집중도를 높인다. 아름다운 이웃에서는 대놓고 밉상이었다면 여기서는 조금씩 옥죄어가는 양상으로 진행된다. 두 남자가 자살을 선택하게 된 경위를 짚어가며 '타인으로부터 영향을 받아 특정 행동을 하게 된 상황'을 드라마에서는 '누군가 스위치를 눌렀다고 표현'하는데, 이는 참으로 일본다운 발상이란 생각이 든다.

 

사키가 저녁마다 앉아있는 방은 서재로 꾸며져 있고 여기에 꽂혀있는 책들은 심리학, 요리 관련 책 등 다양한 분야로 채워져 있다. 이런 책들이 뭔가 그녀의 계획에 하나 둘 이용되었을 거란 생각을 하니 소름이 끼쳤다. 책은 누군가에게 격려가 되어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누군가에겐 무기가 되어 해가 되기도 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2명의 남자들이 죽어나가고 한 명은 살인미수로 잡혀가도록 드라마 7회까지 사키가 왜 그들을 사지로 내모는 것인지 어떤 이유나 설명이 없다. 주인공의 독백도 크게 없으니 그저 연출자의 의도에 따라 묵묵히 따라갈 뿐이다. 실마리 정도는 제공되었다고 봐야 할까. 도대체 왜? 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으며, 이유가 밝혀질 때쯤이면 난 사키를 이해하는 쪽으로 설득당하고 말지 아니면 이 불쾌한 감정을 유지한 채 지금처럼 그녀를 같은 잣대로 평가할 수 있을지 갈등이 지속되었다.


드라마에는 반복되는 설정이 몇 개 있는데, 그중 하나가 사키 혼자서 식사를 하는 장면이다.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를 떠나 먹는 모습을 집중시키는 클로즈업 장면이 굉장히 부담스럽게 다가온다. 하지만 식사 때마다 곁들이는 와인을 보고 있노라면 본격 와인 홍보 드라마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구미를 당기기도 한다. 또 하나는 매회 시작되는 내레이션, 마지막으로 사람이 죽어나갈 때마다 사키가 먹어 해치우는 질 좋아 보이는 스테이크이다. 마음에서 오는 공허함을 배를 채워 극복하는 것일까? 이상한 방향으로 상상하게도 만드는 이 설정은 무언가 지독한 면이 없지 않아 있어 보인다.


‘사키’가 조금 지루하긴 해도 호기심을 끌만한 소재로 본 걸 후회하지는 않지만 솔직히 재미는 ‘아름다운 이웃’ 쪽이 더 있다. 얻은 게 있다면 니쿠자가(일본식 감자조림) 정도가 아닐런지. 사키와 남동생을 이어주는 연결고리이기도 한 이 요리는 정말 내가 좋아하는 식재료로만 만들어진 음식이어서 바로 시도를 해보았다. 딴소리지만 뭐라도 자극을 받아야 반찬 한 가지를 겨우 해내는 ‘나’라서 다음엔 의무적으로라도 요리 드라마를 챙겨봐야 할 것 같은 생각까지 든다.     


두 드라마를 통해 알 수 있듯 ‘사키’는 악녀다. 상대를 홀릴만한 매력이 있고 머리까지 좋아 평범한 사람들은 당해낼 재간이 없다. 매력과 능력을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방도로 남을 파괴하는데 쓴다면 악녀말고 다른 말로 쉽게 설명할 수 있을까. 악녀라는 캐릭터 하면 나에겐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 <화차>에서 ‘미후유’가 동급 최강이었는데 거의 10년 만에 비슷한 수준의 악녀를 만난 기분이다.


캐릭터와 완벽한 일체감을 보이는 배우 ‘나카마 유키에’는 보통의 일본 배우와는 달리 흑발에 곧은 긴 머리를 하고 한국 여성과 비슷한 외모를 하고 있는데 이는 굉장히 친숙함을 느끼게 하는 반면 유난히 예쁘고 참한 모습으로 악녀 연기를 완벽하게 해내서 조금 더 오싹하게 느껴졌다.

 

드라마를 보며 한 가지 재미난 사실을 하나 알게 되었다. 바로 두 드라마 모두에서 ‘동방신기’의 곡이 주제가로 사용되었다는 점이다. 좋아하는 그룹이라서가 아니라 한국어 버전으로 먼저 들었던 Why? (Keep your head down) 란 곡이 전혀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들려온 것이 무척 신선했다. 


이 곡은 ‘아름다운 이웃’에서 한 회의 엔딩과 다음 회 예고에 삽입되어 음산한 분위기를 돋우는데, 의구심을 불러일으키고 긴장감을 고조시키는데 제대로 한몫을 한다. 또한, 동방신기의 싱글 Catch me -If you wanna는 ‘사키’에 삽입된 주제가로 ‘나카마 유키에’와는 2년 만에 같은 드라마서 만난 것이라고 한다. 그 인연에 답례라도 하듯 마지막 회에 카메오로 출연까지 하는 그들을 보니 참으로 뜻깊은 인연이 아닐 수 없다. 여러모로 많은 생각이 들게 한 드라마는 꽤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듯 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엄마를 일으켜 세우는 너란 존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