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화 Sep 12. 2016

엄마를 일으켜 세우는 너란 존재

룸(Room, 2015)

 

최근 리뷰 하는 작품의 대부분은 ‘엄마’가 주요 키워드다. 일부러 찾아보고 써야겠다고 마음먹은 건 아닌데 관심이 가고 내 안에 머물러 글을 쓰게 하는 대부분이 그러했다. 심지어는 크게 관련이 없어 보이거나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작품에서도 엄마와 아이, 혹은 가족을 주요하게 끄집어내고 있는 나는 이제 ‘엄마’가 아니고서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마저 든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영화는 오롯이 같은 마음이 되어 집중할 수 있는 영화였다. 사전 정보 없이 영화가 시작되고 낡고 허름한 공간에서 아이와 하루를 시작하는 주인공을 보며 어디에 숨어 사는 건지, 둘만 피해있어야 할 이유가 있는 것인지를 우선 살필 정도로 ‘가난’과 ‘결핍’만 눈에 보였다.      


그래서 아이의 양육에 있어 경제력이라는 것이 차지하는 부분에 대해 한참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질 좋은 음식과 쾌적한 잠자리를 제공하는 것은 모든 엄마의 당연한 바람일 테지만 그것을 해줄 만한 여력이 되지 않을 때 무척이나 괴로울 수 있을 것이란 생각에 미쳤다. 그래서 고단하고 때론 피하고 싶어도 일을 할 수 있는 현실에 감사함을 느끼기도 하는 것인지 모른다.      

어떻게 보면 일이라는 것, 좀 더 안정적이고 괜찮은 직업을 갖는다는 것은 대부분이 자신의 능력일 수도 있지만 일부분은 우연과 운이 모여 나에게 찾아온 선물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영화 속 엄마의 가난이 개인의 탓만은 아닐 것이란 이해의 문턱을 넘어설 무렵 이 모든 원인이 ‘납치’와 ‘감금’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고 숨이 턱 막힐 것 같은 기분에 사로 잡혔다.   

   

아, 저런 상황 속에서 아이를 키워야 했다니. 정신을 놓아버리지 않고 버틴 7년이라는 시간을 가늠하려면 내게 좀 더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 그런데 어떻게 그 좁은 공간에서 아이에게 체력단련을 시킬 생각을 했을까, 겨우 끼니를 때우는 수준에 머물다 보면 아이의 비타민 같은 것은 챙길 여력이 없을 텐데 어떻게 그런 걸 요구할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엄마를 일으켜 세운 건 절대적으로 아이의 힘이 아니었을까 싶다. 엄마는 밖에서와 다르지 않다고, 우리 아이는 그런 대접을 받을 가치가 있다고 자기 최면을 걸어야만 했을 것이다. 그렇게 처한 상황에 매몰되지 않고 스스로를 끌어올릴 수 있는 ‘긍정의 힘’이란 것이 아이를 양육하는데 갖춰야 할 모든 요소를 대신해주었다고 본다.   

물론 강압적인 데다 원치 않는 임신이었고 준비 없이 자신도 모르게 엄마가 된 ‘조이’였지만 그녀의 행동 하나하나를 보면서 어렸을 적 부모로부터 사랑을 많이 받았겠구나 하는 생각을 해봤다. 그녀에게 아로새겨진 부모의 사랑이 배우지 않고도 그녀에게 양육의 기쁨을 알려주었을 것이다. 범죄에 초점이 맞춰진 것이 아닌 연출 덕분에 이미 삶은 시작되었음을 인지하고 누구보다 열렬히 살아가기 위해 버티고 아이에게 더 넓은 세상을 보여주기 위해 애쓰는 엄마의 노력만이 보였다.   

  

아이를 키우다 보니 아이는 절대 어리고 연약하기만 한 존재가 아님을 깨닫는다. 여러 번 반복적으로 알려주고 지도해주면 아이는 누구보다 강한 힘을 발휘한다. 그래서 엄마의 말대로 실행에 옮긴 ‘잭’의 용기는 엄마의 사랑이자 믿음 그 자체였다고 생각한다.      


신파적이지 않아서 좋았다. 한국에서였다면 아이가 탈출한 이후에 전혀 다른 장르의 영화가 되었을 것이라고 섣부른 판단을 해본다. 범죄자는 동네 경찰과 결탁되어 있고 둘은 다시 되돌아 나올 수 없는 굴레에 빠지게 될 것 같은 불안한 예감. 그 슬픈 예감은 크게 틀리지 않았을 것이다. 두 모자의 계획이 가능하고 과정이 자연스러웠던 것은 동네 주민만 만나게 된다면, 경찰에 신고만 할 수 있다면, 살 수 있을 거란 확고한 믿음이 전제되었기 때문이다. 그런 당연함이 너무나 부러워지는 순간이었다.


엄마를 두 번 살린 아이의 힘에 집중해야 할 영화이다. 엄마인 우리는 가끔 너무 지치고 힘들 때 아이를 보며 살아갈 힘을 얻기도 하지 않는가. 힘든 성장 과정 속에서 희망을 전해주는 아이의 모습은 엄마에게서 받은 영향이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는 엄마인 내가 긍정적이어야 하고 삶을 똑바로 마주해야 할 이유를 다시 한번 상기시켜준다.     

이 영화의 제작이 가능하게 한 일등공신으로 ‘잭’을 연기한 ‘제이콥 트램펄린’에 대해 언급하지 않고 지나칠 수가 없을 것 같다. 우리는 그동안 식스센스의 ‘콜’, 아이 엠 샘의 ‘루시’ 등 엄청난 배역을 소화해낸 아역배우들을 여럿 만나왔다. ‘잭’을 연기한 제이콥도 그런 배우로 기억될 것이다.       


“난 좋은 엄마가 아닌가 봐.” “괜찮아. 그래도 엄마잖아.”   

  

나는 엄마여서, 지금의 나여서 그리고 내 아들의 엄마여서 너무 행복하다는 감정을 느끼게 해 준 이 영화가 너무 감사하다. 네 살을 지나 영화에서처럼 다섯 살이 될 아이를 만난다면 나는 대단한 예술작품으로써의 이 영화를 생각하고 또 생각하게 될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비운의 여인, 엄마로 마주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