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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화 Sep 22. 2016

상관없는 듯 서로 이어진 소소한 일상들

어쩌면 사는 건 즐거운 일이라고 말하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다


친구한테서 문자가 왔다. 추석 때 애들 옷 정리하다가 '그때 그 주소'로 몇 개 보냈으니 잘 받으라고. 작년 이맘때쯤 불러주었던 주소를 메모해두었다가 말없이 또 한 번 챙겨준 듯했다. 감동이다. 사실 옷이라는 것이 그렇다. 살 때는 비싼 돈 주고 고심해서 고른 옷이지만 사정이야 어떻든 결국은 중고물품이 되어버려 남 주기도 버리기도 애매한 물건이 되어버린다.


그래서 이럴 때 간택되는 옷들은 대부분 사이즈가 미스 나서 입히지 못한, 거의 새 옷이나 다름없는 옷들이거나 특정 계절과 시기에만 활용할 수 있는 것들을 포함하고는 한다. 제 아무리 잘 활용하려 해도 늘 내 아이에게 몇 번 제대로 입히지 못한 옷들이 생기기 마련이고, 그걸 꼭 내 가까운 지인의 아이에게 챙겨 입히고 싶은 마음. 그게 작아진 아이 옷을 바라보는 엄마의 마음인지 모른다. 그럼에도 아이의 연령이나 만날 시기가 쉽게 맞지 않아 친한 지인들을 챙기지는 못하고 전혀 예상치 못한 사람에게 순번이 돌아갈 때도 있곤 하다.


혹여 주거나 받게 되더라도 엄마들 취향이 안 맞아 종국에는 입히지 않게 되는 경우도 생긴다. 매일 보던 내 눈에는 나름 괜찮고 쓸모 있게 보이지만 처음 보는 사람에게는 낡음이 한눈에 보이는 그런 옷들, 고를 때의 마음이나 아이에게 정성을 쏟던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지던 옷들도 남들 보기엔 그저 그런 물건이 되어 버리고 마는 현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친구가 준 아이 옷도 체형 차이나 계절 변화로 못 입히고 작아진 것도 있었지만 나는 그 살뜰한 챙김이 좋았고, 무심한 듯 연락 없이 보낸 마음이 참 고마웠다.


그런데 무척 고맙긴 한데 이걸 어쩌나. 친구가 메모한 그 주소는 회사 주소였고, 회사는 두 달 전 또 한 번 이전을 했다. 친구랑 잠시 정적 속에 웃음 표시만 날리다가 먼 길 아니니 찾아가거나 연락해서 받겠다고 하고는 가볍게 마무리를 지었다. 택배회사에 연락이 가능하다 말한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는데 생각이 길어지기도 전에 그렇게 택배는 잊은 채로 그 날 저녁 아이를 업고 뛰어오다 발 끝이 접질려 네 번째 발가락을 삐끗하고 말았다. 뚝-하는 소리가 났던 것도 같았으나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려는데 어쩐 일인지 멍은 시커멓게 진해지고 점점 부어오르며 욱신거리기 시작했다.


병원 가는 걸 그 어떤 것보다 싫어하는 내가 정형외과 치료를 받아야겠다고 마음먹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인터넷 검색을 몇 번 해보지도 않고 빠르게 그런 결정이 가능했던 건 아주 미세하게라도 뼈가 조각나 제대로 붙지 않으면 걷는데 불편을 겪을 수도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그 말이 나를 움직였다. 나중에 아이가 크면 학교 체육대회의 '학부모 달리기'에 참석해 일등을 하고 'V자'를 그려 보이는 것이 엄마의 로망이었으니, 발의 문제로 전력상에 이상이 생겨서는 안 될 일이었다.(아직도 달리기를 하긴 할까?)


그래서 병원에 가야겠다고, 오전 중에 진료를 봐야겠다고 생각은 했지만 아쉽게도 그럴 수가 없었다. 다음 날 즉, 오늘은 오전과 오후에 걸쳐 업무상 일 년에 한 번 개최하는 간담회가 잡혀있었다. 준비도 미리 다 끝냈고, 회의 주재를 대신해줄 사람도 있었지만 그 자리를 비우고, 분위기나 안건의 결과를 다른 사람으로부터 듣고 싶지가 않았다. 그래서 옷차림과 어울리지 않는 슬리퍼를 질질 끌고 회사에 출근해 회의가 끝나면 병원에 가야겠다고 허락을 맡아놓고 우선 할 일부터 해치웠다.


그렇게 회의가 마무리될 무렵 전화 한 통화가 걸려왔다. "어디시죠?" "저 모르세요? 택배가 여기로 왔어요. 이사 가셨잖아요." 먼저 연락하기도 전에 알아서 연락을 주셨구나. 왠지 그럴 것 같은 생각이 들었는데 정말로 그렇게 되니 기분이 좋아졌다. 택배를 일층 안내데스크에 맡겨달라고 했다. 일층 로비에는 아이 어린이집을 등하원 시키며 항상 인사하는 안내요원분이 계셨기 때문에 보관을 부탁하는 것은 그리 부담스러운 일이 아니었고 착불요금은 계좌 이체하기로 했다.


이 택배 기사분으로 말하자면 또 할 말이 길다. 바로 회사가 입주해 있던 건물과 그 주변 일대를 담당하던 분이자, 그 택배사 차기 사장님다. 그 사실을 다른 사람들은 모른다. 택배를 사무실 입구 쪽에 툭툭 던져놓고 가시던 분들과 달리 항상 직원들 자리까지 와서 챙겨주시고 유독 친절한 이 분께 나는 사장님 아들인지 몰랐을 때부터 참 열심히 사신다 싶은 마음에 음료수도 챙겨드리고 말도 걸어드리고 했었다.


그런데 택배를 수령하던 때와 달리 택배를 다른 사람에게 부치면서 이 분이 회사 규칙보다 더 싼 값에 내 택배를 보내주시고 계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어느 날 보낼 택배를 이 분 대신에 수령하러 오신 나이 드신 분께서 내가 내민 금액보다 더 많은 금액을 요구하셨고, 결국 그분은 아가씨 때문에 택배기사가 월급에서 손해를 본다는 말을 하며 무척이나 화를 내셨다.


생각지도 못한 갑작스러운 그 말을 전해 듣고 그분은 왜 그렇게까지 하셨는가 의구심과 함께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내가 큰 덕 보자고 그런 할인을 요청한 것도 아니고, 그 어르신의 요구방식도 문제는 있었기에 더 따지고 싶은 마음이 컸지만 그 전의 일들이 마음에 걸려 우선은 돈을 드리고 가시게 해드렸다. 그러다 오후에 걸려 온 전화 한 통을 받았다.


낮에 나와 실랑이를 벌인 그분이었다. '나는 이 회사의 사장이오'라고 밝히시며 사실 그 건물 전담직원은 아들이고, 잠시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대타로 오신 것이었는데 아가씨한테 몇 천 원 더 받고 덜 받고의 문제가 아니라 아들의 태도가 맘에 안 들어 화가 났다는 것이었다. 며칠 대신해서 맡은 곳을 돌아보니 그동안 아들의 업무 처리가 무르고 약지 못해 혹여라도 손해를 보고 살진 않을까 싶기도 하고 사업을 물려주는데 이런저런 걱정된 마음이 하필 나에게 일방적으로 터진 것이었기에 사과의 말을 전하시는 전화였다.


역시 아버지기에 가능한 생각이셨다. 더 큰 그림을 보고 계신다는 생각이 들어 먼저 전화해주셔서 감사하다고 인사를 드렸다. 다음번 완치 후 만났을 때 그 '사장님 아들'은 별 일 아니라는 듯 웃어 보이셨다. 어쩐지 그 뒤로 나는 회사로 택배를 주문하거나 회사에서 택배를 부치는 일이 조금 미안하고 마음이 편치가 않아졌다. 그리고 그분은 왜 택배 안 시키시냐고 한 번씩 안부를 물어주며 그렇게 지나치던 일상이었다.    


어쨌든 그 인연 깊은 '사장님 아드님'께서 택배는 회사 일층에 맡겨주시기로 했고, 일도 하나 마무리되어 가벼운 마음으로 병원으로 향했다. 엑스레이를 찍고 의사 선생님의 면담을 기다리는데 골절 일지 아닐지 걱정되는 마음이 들면서도 이런 상황이 괜스레 재미있다고 느껴졌다.


의사 선생님은 담백하게 친절하셨고, 골절은 아니지만 인대가 늘어나 멍이 심하니 처방받은 소염제를 잘 챙겨 먹고, 일주일간 반깁스를 해야겠다고 말씀하셨다. 처음 하는 깁스가 발 모양에 맞춰 굳어지는 시간을 기다리며 아픔도 잊힐 만큼 괜히 신이 났다. 예전 같으면 왜 하필 이런 일이 나에게 생기는 것인지 속상하고 원망의 마음이 들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실수가 적어지고, 삶에 무던해진 나는 이제 이런 소소한 사건이 너무나 재미있고 새롭다는 생각이 들기까지 했다.  


깁스를 하면 운전을 못하는 줄로만 알았다. 저녁에 장례식에 가야 하는 신랑이 차를 내게 맡겼는데, 다시 차를 가져가라고 해야 하나 고민이 되면서도 아는 길이니 슬슬 몰아보자 싶어 시도해보니 다행히 큰 어려움은 없었다. 회사에 도착해 깁스를 보고 발의 상태를 가늠하게 된 팀원들은 병가 내고 들어가라고 다들 걱정을 보였다. 깁스라는 것이 실제보다 시각적인 요소가 쎄고, 아픔이 부풀지게 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냥 오늘은 주시는 휴식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집으로 돌아갈 채비를 하면서 미리 병원에서 기다리는 동안 아이 픽업을 요청한 사모님이 아이를 만나기 위해 거의 도착하셨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래서 아이 옷이 일층 로비에 도착해 있고 오늘 아이를 데려가면 다음 주까지 어린이집에 들릴 일이 없는 데다 어차피 사모님 댁에도 입힐 여분의 옷이 필요하니 가져가 달라고 부탁을 드렸다.


알았으니 푹 쉬라는 메시지와 함께 모든 것이 마무리되는 듯했고 조심스럽게 발을 내딛으며 주차장으로 향하는데 다시 연락이 왔다. 맡겨진 택배가 없다고. 뭐지 싶어 바로 택배 기사분께 전화를 걸어 확인을 하니 낮에는 이름을 보자마자 확인 차원에서 전화를 준 것이었고, 실제로 배달을 하러 가는 건 지금 시간이라며 5분 뒤에 놓고 가겠다고 하셨다. 순간 좌절이었다. 게다가 사모님은 내 연락을 기다리다 이미 출발하신 뒤였다.


약간의 짜증 섞인 말투를 그분이 알아챘을까 미안한 마음에 다음 주까지 그 물건을 들고 계셔달라는 말이 차마 나오지 않았다. 어쨌든 집으로 가는 길에 잠시 들리는 게 나을 것 같아 15분 뒤에 만나기로 하고 차를 몰았다. 퇴근 시간을 피해서인지 한적한 도로를 조심스럽게 운전해 주차를 하고 기다렸다. 잠시 뒤 깁스를 한 내 발을 보고 살짝 당황스러움이 섞인 반가움으로 인사를 해주시던 택배 기사분은 이렇게 불편하시면 미리 말씀하시지, 어차피 말해도 달라질 건 없지만, 이라면서 껄껄 웃었다. 그리곤 택배를 전해주시며 잔돈이 없다는 핑계로 또 돈을 덜 받으셨다. 내가 웃으니 돈은 또 벌면 된다고 같이 웃으셨고, 내가 드린 커피음료를 보고 또 한 번 웃으셨다. 이거면 됐지, 사는 게 참 별 거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가 택배를 보낸 타이밍도, 발을 다쳐 깁스를 한 타이밍도, 일 년에 한 번 있는 업무 타이밍도, 직원 아버님이 돌아가셨다는 알림 타이밍도, 아이를 돌봐주시는 분의 픽업 타이밍도, 그리고 택배를 수령하는 타이밍도 모든 게 영향을 끼치며, 고작 하루 동안에 '희로애락'의 모든 인생을 담아 놓은 듯 한 일상이 스쳐갔다.


택배를 받아 들고 주차장으로 걸어가는데 마음이 그렇게 상쾌할 수가 없었다. 저녁으로 기울며 마지막까지 강한 빛을 내뿜는 태양에 눈을 찡그려도 마냥 기분이 좋았다. 기다렸다는 듯 친구에게서 문자가 왔다. 택배 잘 받았냐고. 내 손에 들려 있는 택배가 친구 눈에도 보이는 걸까. 다음 주쯤 인천에 올 일이 있을 것 같다는데, 얼굴 보자는 친구에게 바로 메세지를 남겼다. 우리 꼭 만나자고. 그리고 맛있는 거 먹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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