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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화 Oct 18. 2016

작은 행복을 기억하세요

결혼하지 않아도 괜찮을까(2012)


발가락 부상으로 병가를 얻게 되어 갑자기 뒹굴거릴 여유가 생겼다. 영화채널에서 무료 영화 한 편을 큰 고민 없이 골랐다. 여자들 얘기, 그리고 소소한 일상에 집중하는 일본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인지라 여자들에 대한 소소한 이야기(원제가 수짱의 하루이다)라는 사실이 처음 보는 영화 제목임에도 불구하고 그저 좋아 선택했다.


세 여자가 있다. 잔소리를 들었다고 그만두고 싶어 하는 알바를 보며 한심한 마음이지만 토닥임조차 업무의 연장이라 믿는 배려 깊은 수짱, 영업실적과 구조조정을 신경 쓰고 은밀한 연애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조금은 욕심 많은 마이짱, 할머니의 병시중을 드는 엄마를 보며 탈출을 꿈꾸지만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우유부단한 프리랜서 사와코상이 그들이다. 

영화의 시작은 '일'과 '연애'가 주된 키워드다. 결혼에 관한 이야기보다는 워킹우먼의 일상에 대해서 보여주는 듯하다. 그중에서도 자기 기준이 있고 조금 까다롭게 보일 수도 있는 일명 '일을 좀 한다 싶은 여자들' 말이다.


어떤 여자에게 일은 결혼 전 잠시 스쳐가는 단순히 좋은 경험일 수도 있고 본인이 그렇게 느끼지 않더라고 사회에서 바라보는 시선이 그걸 강요하기도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밥벌이를 넘어선 사명감일 수 있다.


그래서 10년 이상 직장 생활을 해 온 '한 명의 여자'로서 주인공들이 일을 하며 겪는 작은 갈등에 매우 공감이 가고 시선이 꽂혔다. '여자'라는 성별을 가지고 직장을 생활을 하다 보면 우선 나이를 묻고, 신경 쓰는 사람이 굉장히 많다는 걸 발견한다. 본인들이 생각하는 결혼 적령기가 지났다 싶을 경우 무슨 큰일이 난 것처럼 왜 결혼을 하지 않으냐고 묻는다.


직원들 사이에서 남녀 구분하지 않고 지속되는 징징거림과 무책임을 핸들링해도 결국 나는 여자로 남는다. '업무'보다는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엄하게 대하면 일은 깔끔이 마무리될지 몰라도 깐깐하고 빳빳한 여자로 평가되기도 한다. 스스로 제어가 안될 만큼의 분노가 끓어오르면 변죽을 맞춰가며 업무를 진척시키기 위해 정말 그 사람들을 좋아할 수 있다고 자기 최면을 걸기도 한다.


여자의 삶에 또 하나 연애를 빼놓을 수가 없다. 좋은 사람을 만나 마음을 나누고 작은 추억들을 겹겹이 쌓아가며 시간을 공유하는 것은 한 사람이 인생을 살아가는데 매우 소중한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혼하지 않아도 좋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정말 그렇게 살고 싶었다.

집에서 빈둥거리고, 책 보고, 드라마나 다운로드하여 보며 밖에 나가고 싶을 때 나갈 수 있는 자유로움. 마사지받고, 목욕탕 가고, 서점 가면서 그렇게 살고 싶은 대로 사는 여유로움. 그 두 가지만이 온전히 내가 원하는 삶이었다. 사람이 많은 곳이라면 그 어디에도 가는 걸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아이를 위해 놀이동산을 가게 되고 이웃과 어울려 살아가야 하는 것은 생각만으로도 피곤이 몰려오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결혼을 했기 때문에 아이를 위해 산책이라도 나가고 놀이동산이 재밌다고 느끼며, 몸을 일으켜 뭐라도 배우려고 한다는 걸 안다. 내가 오래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이를 위해 건강해져야 한다고 의무감처럼 여기는 나 자신을 보며 어떤 일도 생각만큼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다는 생각을 해본다. 


다만, 짚고 넘어가야 할 한 가지는 결혼을 탈출구로 생각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결혼을 한다고 해서 최악의 나락으로 떨어지게 되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드라마틱한 변화가 기다리고 있다가 예전의 나와 전혀 다른 나를 만들어 주지는 않는다. 그저 내 삶이 나의 노력과 힘으로 지속될 뿐이다.


"한 가지 정도는 포기하고 살아요"


욕심 많은 마이 짱은 이 말을 듣고 결국 울었다. 젊은 날 내가 특별하지 않고 그저 그런 사람이 될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까. 나만은 다를 거란 생각에 누구보다도 강하게 사로잡혀 있던 나는 평범해지고자 했을 때 오히려 행복해졌다. 이 영화를 결혼 전에 봤다면 나 또한 울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엄마로선 별로예요. 그래도 여자로선 괜찮다고 생각해요"


카페 매니저인 '수짱'의 고용주, 즉 사장님의 따님이 수짱에게 엄마를 평하며 건넨 말이다. 난 이 말이 인간으로 할 도리는 하고 산다는 말로 들렸다. 엄마로서 내 자식과 가정을  챙기기 위해 이기적이기보다는 해야 할 일을 하고 산다는 말. 딸의 통찰력이 보통이 아니다. 그리고 나는 그 카페 주인은 엄마로서도 여자로서도 성공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지나온 시간에 대한 이야기라 그런지 담담하게 마주할 뿐 솔직히 큰 울림은 없었다. 그래서 나쁘지 않았다고 딱 여기까지, 하고 마음을 접으려던 순간 마지막 수짱의 편지 속 추신 글을 듣고(수짱이 직접 읽어준다) 역시나 잘 선택했다 싶었다. 내 마음을 대변한 듯한 글을 여기 그대로 옮겨 적고 싶지만 그 부분만을 위해서라도 이 영화를 직접 보면 좋을 것 같다.


영화를 보기 전 '결혼하지 않아도 괜찮을까'란 제목에 대한 나의 대답을 찾아야 할 것만 같은 생각에 잠시 사로잡혔다. 그러나 그럴 필요가 없다. 각자의 위치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이면 된다고 생각한다. 우리 이제는 위로와 자기 위안에서 벗어나 평화로운 안정과 다행스러움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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